길 위에서

라오스 수도에서의 첫인상

eunbee~ 2014. 12. 22. 08:27

인천공항에서 대여섯 시간을 날아 라오스 수도에 닿았다.

비엥티안 국제공항청사에서 벽에 쓰여있는 Welcome to Lao PDR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을

보는 순간, 공산주의국가 냄새가 확 풍겨온다.

 

무언가 한껏 경직된 분위기의 광경들, 검색대에 앉은 군인유니폼복장의 딱딱하고 무서운 얼굴,

열중쉬엇 자세로 무섭게 사방을 쏘아보는 젊은 안전요원의 눈초리...

'소문으로 듣던, 상상으로 그려보던, 그런 나라가 아닌가보다' 라며 은근히 긴장되는 내 기분.

 

baggage claim으로 가니 내 가방이 나오질 않는다. 어찌된 일이야?

가방이 수두룩 서 있는 곳이 눈에 뜨여 가보니, 그곳에 많은 가방들이 내려놓여져 있다.

아뿔싸, 이곳에서는 컨베이어벨트 위를 돌고 있는 가방을 누군가가 내려놓는구나. 이런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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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쌍 왕국>

라오스의 공식적인 역사는 란쌍 왕국에서부터 시작된다. 13세기 무옹스와 공국(지금의 루앙프라방)이 세워졌으며, 14세기 파응움 왕이 크메르 앙코르 왕의 도움으로 최초의 라오족 국가인 란쌍 왕국을 세웠다. 버마의 통치기간(1574∼1637)을 빼고 란상 왕국이 1713년까지 라오스를 다스렸다.

그 뒤 란상은 3개 왕국(비엔티안·참파싹·루앙프라방)으로 나뉘었다. 18세기중에 3개 라오스 왕국의 통치자들은 시암의 통치자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시암의 제후가 되었다.

19세기에 비엔티안의 왕이었던 차오 아누가 자기 왕국을 베트남과 합쳐 시암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아누는 패배했으며 비엔티안은 시암의 주(州)가 되었다.

 

<외세 침략기>

 

19세기말 프랑스가 메콩 강 동쪽에 있는 모든 시암 영토를 통치하게 되었으며 20세기초 라오스는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다

1945년 3월 일본이 프랑스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몰아내고 라오스 독립을 선언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가 다시 지배하기 시작했지만 1946년 프랑스는 루앙프라방 왕의 통치 아래 통일된 라오스를 승인하였다.

1949년 헌법이 공포되고 라오스는 프랑스 연방 안에서 제한된 자치권을 얻었다. 1950년대초 좌파인 파테트라오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남베트민과 힘을 합쳐 프랑스와 싸웠다. 전쟁이 끝날 무렵 파테트라오는 2개의 주를 통치하게 되었다.

제네바 협정(1945년)에서 공산주의자와 연합한 북베트남과 친서방주의 노선을 걷는 타이 사이에서 완충국가로 통일, 독립한 라오스가 세워졌다. 1950년대 파테트라오는 라오스의 통치권을 놓고 우파 및 중도파와 투쟁했다. 제2차 제네바 협정(1962년)으로 파테트라오를 포함한 중립 연립 정부가 생겨났으며, 그 후 60년대가 끝날 때까지 라오스는 베트남 전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파테트라오 군대는 북베트남과 연합하여 라오스의 지배권을 쟁취하기 위해 라오스 정부군과 싸웠다.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

 

197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며 다음해 파테트라오와 우파가 함께 전라오스 통일 임시 정부를 형성했다. 사이공프놈펜에서 반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1975년 파테트라오가 정권을 잡았고 지하에 숨어 있던 라오스 공산당이 모습을 드러내어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을 세웠다. 라오스는 베트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1980년대 베트남이 이끄는 인도차이나 동맹(라오스·베트남·캄보디아)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베트남의 영향력은 감소했다. 1989년 최초의 총선이 있었으며, 1991년 새 헌법이 공포되었다.

 

그러구러, 소문으로 듣던 라오스라는 나라의 수도 비엥티안의 아침을 걷게 된다.

 

남한의 세곱절 넘는 땅덩이에 인구 700만명

오랫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며, 베트남 전쟁 때는 많은 피해를 입은 라오스.

그때 매몰된 지뢰가 무시로 터지는 땅.

 

우리네 50-60년대의 모습과 흡사한

오늘의 그들의 모습.

때로는 어떤 향수로, 때로는 애잔한 연민으로,

더러는 안타까움 섞인 짜증으로 그들을 만나게 된다.

 

 

개들이 천지로 방황하는... 비엔티안의 거리

그나마 이 개는 주인은 있나본데, 없는 것보다 못해 보인다.

 

 

프랑스의 잔영.

거리 이름들.

 

 

 

불교 67%, 정령신앙 33%인 라오스

집집마다 그들의 작은 기도처가 마련돼 있다.

 

 

밖에서 식사를 하는 그들,

끼니를 위한 조리를 집에서 하지않고, 시장에서 파는 음식을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간다. 주로 쌀국수나 쌀을 쪄서 만든 밥.

그리고 강에서 잡은 작은 생선들, 들에서 채취한 풀잎들...

 

 

'사진 찍어도 될까요?'를 묻기도 전에

밥을 먹으란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아침식사를 권하는 그들.

 

내가 일곱살 때 우리네도 저랬을까?

자꾸만 내 어린시절의 내나라의 형편과 오버랩되는 분위기나 풍경들.

 

 

 

 

 

거리에는 천막이나 파라솔을 펴놓고, 무언가를 팔거나 대행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무척많다.

이 사람들은 컴퓨터와 복사기를 비치해 두고, 바로 건너편 태국대사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서류나 사진을 대필, 제공하나 보다.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사고를 당해, 경찰서에 가서 신고, 조서를 작성해도 돈을 줘야한다는 이나라이니

물론 저들은 돈을 받고 하는 장사렷다.

 

 

거리거리마다 진을 치고 있는 툭툭이들.

바가지나 행패가 많으니 조심 또 조심.

 

 

호텔이나 유명건물 등에는 국기와 공산당기가 게양되어 있다.

 

어두운 거리풍경,

순진스런 사람들의 미소,

나부끼는 붉은 깃발들,

무어라 표현키 어려운 답답증이 몰려오는....

 

이 부조화는 무엇일까.

 

라오스의 수도 비엥티안의 아침에 느낀 묘한 감상.

내가 듣고 상상하던 라오스가 아닌 것 같아.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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