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인연 3

eunbee~ 2014. 11. 19. 01:54

 

어제 아침 걸려온 전화,

내가 자주 거론하는 '향기로운 여인'의 목소리.

그녀의 시아버님 별세소식이었다.

오후에 아산병원엘 갔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녀의 낭군님이 나를 보자 눈물 그렁거리며 반가운 포옹을 한다.

25년여의 세월동안 친척보다도 더 깊은 살뜰한 정으로 지내온 그녀들의 가족과 나.

그녀의 낭군님도 이제는 어언 회갑나이가 되었구나.

 

그녀의 시아버님,

게이오대학을 나오셔서 일본에 계시다가 한국전쟁당시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가지못하시고

홀홀단신 남한으로 올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평생을 이북의 가족과 만나지 못하신 어른.

17년전 마나님을 하늘로 먼저 보내시고,

오늘 화장지에서 한줌 재가 되시어 17년전에 이별하신 사랑하는 아내와 부부납골당에서 재회를 하셨다.

 

어제,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가면서, '그곳에 가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동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겠지'

하던 기대는 전혀~ 내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매우 가까운 두어 사람에게만 연락을 했을 뿐, 기대했던

그 누구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현직에 있으면서도 학교직원에게마져 문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시아버님을 뵌적없는 분들까지 오시게 할 수 없어 그렇게 했다고.

참으로 그들다운 생각이다.

 

 

 묘원에서 바라보이는 하늘

 

 

오늘 새벽에 다시 아산병원으로 갔다.

발인 시간에 맞추어 가느라 해가 떠오르기 전에 집을 나선 것이다.

8시가 지나 장의차들이 도착했다.

롱바디의 검은색 캐딜락장의차, 관을 모시는 곳 바닥은 대리석 느낌의 재질로 덮여있고

머리부분에는 황금색 봉황이 대칭으로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입관할 적에도 관속에는 생화 국화꽃으로 향기롭게 장식했다고 한다.

가시는 길도 그렇게 아름다우니 보는 마음도 한결 나았다.

 

성남영생원으로 가셔서 한줌 재로 되신 아버님,

벽제에서 모셔오신 17년전의 어머님과 재회하시어, 한 곳에 봉안되셨다.

 

제설움에 겨워 운다고 하던가.

나는 왜 그리도 눈물이 흐르는지.

아산병원이며 성남영생원이며... 같은 장소에서 내아들 아버지도 그렇게 한줌 재가 되었지.

상주노릇을 참으로 잘해내던 내 아들 생각에, 내딸들 생각에 눈물이 그리도 흐르던가.

빛바랜 나뭇잎은 온산을 뒤덮고, 밝은 햇살을 쏟아내는 하늘은 무심하게도 푸르렀다.

 

인연,

우리서로 어쩌다 만나 남남끼리도 아름다운 인연으로 살아가고,

우리 어쩌다 선택의 여지없이 부모 자식으로 만나,

오던 것처럼 또 그렇게 선택하지 않은 이별을 하는가.

 

미에르자가 내 중년의 세월을 장식했다면,

'향기로운 여인'은 내 장년과 노년을 따사롭게 해주고 있다.

 

내게 너무도 소중한 인연,

그녀의 큰시누이님이 말했다.

우리가 '마치 자매같다'고.

 

 

 

어느해,부르타뉴 뽀흐블렁에서

 

 

 

11월 우울한 글만 올려 블방이 칙칙하다.

'망자의 날'이 끼인 이달도 반을 넘었으니,

이젠 하얀 눈처럼 포슬거리고 포근하고 맑은 이야기로 채워보자.

 

 

2014. 11. 18  일기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