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김유정金裕貞 생가

eunbee~ 2014. 3. 23. 02:38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즈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놓는다.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 나뭇지게도 벗어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막대기를 뻗치고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김유정의 <동백꽃> 중에서

 

 

..... 저에게 지금 단 하나의 원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려서 잃어버린 그 어머님이 보고싶사외다.

그리고 그 품에 안기어 저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한껏 울어보고 싶사외다.... -미완성 장편소설 <생의 반려>중에서

 

 

닙히 푸르러 가시든 님이

백설이 흔날려도 아니오시네

 

잘살고 못살긴 내분복이요

하이칼라 서방님만 어더주게유

 

닙히 푸르러 가시든님

백설이 흔날려도 안오시네   -수필 <닙히 푸르러 가시든 님이> 중에서

 

 

"글쎄 이자식아! 내가 그걸 말라고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사실 장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귓배기 하나가 작다)

-김유정의 <봄. 봄>에서 (조각상 옆에는 이렇게 소설의 일부를 새겨둔 푯말이 있다)

 

<봄 .봄>에서 배참봉댁 마름으로 나오는 김봉필은 실레마을에서 욕필이로 통했던 실존인물.

그는 그당시 딸만 여럿 낳아 데릴사위를 들여 부려먹기도 했다.

금병산 산림감시원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두루 인심을 잃었다.

한들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백두고개를 넘어오던 김유정이 점순이와 혼례를 시켜주지 않는다며

장인과 주인공이 싸우는 장면을 메모해 두었다가 <봄.봄>을 썼다.(기념관에 전시된 설명글 중)

 

 

 김유정 문학관

 

 

김유정은 1908년2월 12일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김춘식과 청송 심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로 출생.

유아기에 서울 종로구로 이사, 7세,9세에 어머니,아버지를 여의고 부모를 일찌기 잃은 결핍으로 한 때는 말더듬이었다.

재동공립보통학교, 휘문고를 졸업 1930년에 연희전문 문과 입학,

당대 명창이었던 기생 박록주에 빠져 결석이 잦아, 두 달만에 연희전문에서 除籍당함.

실연과 제적의 상처를 안고 귀향, 금병의숙을 세워 2년 간 야학 등 농촌계몽활동.

1933년 다시 상경.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37년 3월 29일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사망.

 

김유정이 사망을 하자 당대 함께 활동하던 문인 채만식은 이렇게 말했다지요.

"유정은 아깝게 그리고 불쌍하게 궂겼다.

나같은 명색없는 문단꾼이면 여남은 갖다주고 도로 물러오고 싶다."

 

 

* 작품 *

산골 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금 따는 콩밭. 금. 떡. 만무방. 산골. 솥. 홍길동전. 봄,봄. 안해. 심청.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音樂會. 동백꽃. 夜樓. 옥토끼. 생의 半侶. 슬픈 이야기. 따라지. 땡볕. 연기. 정분. 두포전. 兄. 애기

(발표 연대순)

 

 

 

 

생가 담장 아래에는 생강나무가 지금 막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김유정의 <동백꽃>이 동백기름 짜는 붉은 동백인줄만 알았는데,

소설 <동백꽃>의 동백이나 그의 아리랑에 등장하는 동박은 모두 사진에 보이는 생강나무라고 해요. 오호~? ^^

 

 

 

 

플랫폼에서 보이는 김유정驛舍

 

춘천 나들이를 하며, 근처에 있는 김유정 생가를 둘러 보았다우.

볼 것도 없지만 포스팅은 더 엉성.ㅠㅠ

근처에는 '실레이야기길'이라고 해서 산책로가 있어요.

금병산자락에 포근히 둘러싸인 마을이 마치 떡시루를 닮았다하여 '실레마을'이라 한답니다.

실레이야기길을 걸으며 김유정 소설 속의 장소를 만나보는 것도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