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그곳엔 그곳이 없었다

eunbee~ 2013. 11. 27. 22:19

사진 : 지난 월요일(11월 25일 오후 3시~ 5시 30분) 소래포구에서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없었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없었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김 훈의 [풍경과 상처] 에서 글을 옮깁니다.

 

 

 

 

 

 

매일 밤 수의를 입은

어머니 꿈을 꿉니다

그때마다 나는 꿈속에서

눈물을 한없이 흘립니다

그러나 정녕 마음이 아프고 슬픈 것은

나의 몸은 보이지 않는데

내가 울고 있는 일입니다.

 

<오이도6> 중에서

 

 

 

 

 

태생胎生은 곧 습생濕生인 것이어서, 슬픔과 기쁨과 욕망의

절정에는 늘 물이 흐르고 습기가 고이는 모양이다. 가을산과

가을의 물과 거기에 내리는 빛은 풍장風葬의 흰뼈를 생각게 했고,

습기 많은 나는 아직도 내 몸의 습기를 말리지 못한다.

가을 강가에서 나는 습기에 질퍽거리는 내 몸속의 물소리를 들었다.

 

<가을의 빛> 중에서

 

 

 

 

훌쩍 가보고 싶었다.

쉽게 읽어내고는 저만치 내던진 책을 다시 집어들고, 전철에 올랐다.

촛점 맞추고 겨냥한 곳도 아닌.. 서해 소래포구

그냥 가 보고 싶었다.

서너 가닥씩 후두둑 비를 뿌리는 하늘, 차디찬 늦가을 바람. 계절이나 나나 며칠째 사뭇 무겁다.

비릿한 갯내음으로 울울함이나 씻어보자.

이렇게 무작정나서도 좋을까, 아주 조금 망설임같은 것이 마음끝을 스친다.

 

서울메트로, 더러는 불유쾌하고, 더러는 매~우~ 유쾌하고, 넘치게 잘 사는 내나라. 군불도 넉넉히 지펴준다.

불유쾌한 찻간에서는 주머니속의 비매품 샘플향수를 꺼내 남몰래 칙칙~ 살짝 뿌려준다. 내 코가 실어증 걸리기 전에.

어디만큼 갔을까, 시간은 얼마만큼 흘렀을까, 읽고 있는 김훈 님 美文의 이랑 위로 하얀 햇살이 허락도 없이 올라와 앉는다.

어느 역인지, 기차는 잠시 머물렀고, 회색에 갇혔던 햇살들이 지금 막 열린 문으로 화르르 쏟아져 들어온 게다.

손에 든 우산, 저도 빙긋, 나도 멋적어.

 

소래포구.

아, 소래포구는 소래포구가 아니다.

내 알던 그곳이 아니구나. 옛모습은 어디로 간걸까.

멍하니 서서 고랑진 물길을, 겨우 흉내만 내며 널부러져 누워있는 갯벌같잖은 갯벌을, 바라본다.

괭이갈매기들은 내 마음 만큼이나 산만스럽다.

 

혼자서 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안주를, 술병을, 마주한다.

늙었구나. 뱃장도 좋다. 내가 생전처음으로 혼자 주막집 술병 앞에 앉는다. 하핫~ 스스로도 어이가 없나보다. 헛웃음이 나오니.

아들이랑 마실 때는 달큰하던 청하, 참으로 씁쓸하다. 쫄깃할 안주는 밍밍하고.

일어선다. 옆 테이블 젊은 아낙들이 내게 산낙지의 꿈틀거림을 선물하고, 나는 그대로 남은 안주와 술을 물물교환한다.

 

그것으로도 취했던가.

노을진 포구끄트머리에 펼쳐진 먼 하늘을 보니, 붉은 풍등 하나가 바람에 날아오른다.

가만, 가만있어 보자. 風燈, 아, 그래 저 풍등, 올가을 나는 뜨거운 꽃불 하나 안고 멀리 떠가고 싶은, 풍등이다.

꿈마다, 꿈마다, 풍등으로 날아오른다.

어디까지 날아가면 화르르 불붙어올라 까무룩 떨어지려는고.

아, 그곳이 바다였으면 좋겠다. 살뜰히도 사랑겨운 마음 한 닢.. 파도에 밀려 그대 앞에 이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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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 그곳엔 내가 찾아나선 그곳은 없고,

한 개 풍등처럼 허망스런 

길고 차가운밤 꿈만 떠가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