暮色
_ 이 영 도 -
지극히 그리운 이를 생각할 때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돌 듯,
나는 모색暮色 앞에 설 때마다 그러한 감정에 젖어들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순수해질 때는 아마도 모색과 같은 심색心色 일른지 모른다.
은은히 울리는 종소리 같은 빛, 모색은 참회의 표정이요 기도의 자세다.
하루 동안을 겪어낸 번잡한 과정 다음에 밀려드는 영육靈肉의 피로와 허황한 감회는
마치 한낮에 강렬했던 연소燃燒의 여운이 먼 멧등에 서리듯 외로움이 감겨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유명한 화가 밀레도 한 가족의 경건한 기도의 모습을 모색 앞에 세우고
그림의 제목을 만종晩鐘이라 붙였는지 모른다.
황혼이 기울 무렵, 산 그림자 내리는 들녘에 서면 슬프디 슬픈 보랏빛 향수에 싸여 신의 음성은 사랑하라고만 들려오고,
원수 같은 것, 미움 같은 것에 멍든 자국마저 밀물에 모래알 가셔지듯 곱게 씻겨 가는 빛깔..
어쩌면 내 인생의 고달픈 종언終焉도 이같이 고울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노을비낀 을왕리 바닷가
가끔 나는 해질 무렵에 경복궁 뒷담을 끼고 효자동 종점까지 혼자 거닐 때가 있다.
이 거리에 석양이 내릴 때 가로수에 서리는 빛깔을 보기 위해서다.
봄, 여름은 너울거리는 푸르름이 마음을 축여주어 조용한 생기를 얻을 수 있지만
만추晩秋에서 봄까지의 낙목落木일 경우엔 말 할 수 없는 눈물겨운 빛이 된다.
가물가물 일직선으로 열 지은 나목裸木 들이 암회색 높은 궁창을 배경으로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에 비춰 선 정취는 바로 그윽이 여울져 내리는 거문고의 음률이다.
이 음색에 취하여 혼자 걷노라면 내 마음은 고운 법열法悅에 고독이 느껴지고, 어쩌면 이 길이 서역 만 리,
그보다 더 먼 영겁永劫과 통한 것 같은 아득함에 젖어진다.
그 무수히 소용돌이치던 역사의 핏자국도 젊은 포효도 창연히 연륜 위에 감기는 애상일 뿐,
그날에 절박하던 목숨의 생채기마저 사위어져 가는 낙조처럼 아물어드는 손길. 모색은 진정 나의 영혼에
슬픔과 정화淨化를 주고 그리움과 사랑을 배게하고 겸허히 가르치고, 철학과 종교와 체념과 또 내일에의 새로움과 아름다움과...
일체의 뜻과 말씀을 있게 하는 가멸음(富)의 빛이 아닐 수 없다.
모색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그윽한 거문고의 음률같은 애상에 마음의 우울을 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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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가 그리도 애틋이 사랑하던, 丁芸 이영도.
오늘 밤은 그 절절하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노래를 부르던, 청마를 생각하며
정운의 글을 읽는다. 그녀의 만년의 글이라고 하던가.
푸른저녁을 사랑하는 나만큼이나, 모색의 저녁녘을 사랑하셨구나.
아득함에 젖게 하는 보랏빛 하늘에 비춰 선 나목들에 서리는 빛깔들을.
그리움
- 유치환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죽는 날도 연인 생각에 사무쳐 정신줄을 놓은 걸까.(교통사고였다니, 내가 해보는 소리)
사랑하는 여인 정운에게 5000여통의 연서를 썼다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느니라.’ .... 그럴까?
탑
- 이영도 -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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