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送年 - 피천득

eunbee~ 2013. 12. 6. 00:29

送年

 

        피천득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세월이 빨라서가 아니라 인생이 유한有限하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만 담그면 늙고 마는 인생. 우리가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은

그다지 애석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세모歲暮의 정情은 늙어가는 사람이 더 느끼게 된다.

남은 햇수가 적어질수록 1년은 더 빠른 것이다.

  나는 반세기를 헛되이 보내었다. 그것도 호탕하게 낭비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일주일 일주일을, 한해

한해를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 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보람 있는 일도 하지 못하고,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학구에 충실치도 못했다. 가끔 한숨을 쉬면서 뒷골목을 걸어오며 늙었다.

  시인 부라우닝이 <베네세라 선생>이란 시에서 읊은 것과는 달리, 나는 노경老境이 인생의 정상頂上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그렇다고 시인 예이츠와 같이 사람이 늙으면 허수아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을 고쳐서 '인생은 사십까지'라고 하여 어떤 여인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 사십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 만하다.

  백발이 검은 머리만은 못하지만, 물을 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온아한 데가 있어 좋다. 때로는 위풍과

품위가 있기까지도 하다. 젊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천하고 추한 것이다.

  젊어, 정열에다 몸과 마음을 태우는 것과 같이 좋은 게 있으리오마는, 애욕, 번뇌, 실망에서 해탈되는 것도

적지 않은 축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많이 겪은 뒤에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여기에 회상이니 추억이니 하는 것을 계산에 넣으면 늙음도 괜찮다. 그리고 오래오래 살면서 신문에서 가지가지의

신기하고 해괴한 일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므로 나는 <일입청산만사휴>一入靑山萬事休라는 글귀를 싫어한다.

 

..... 하략.

 

 

                 지난 11월 27일, 눈 내리는 날. 창너머 먼산이 잠시 눈으로 덮였었다.

 

 

피천득 님의 수필을 읽노라면, 그 맑음에, 그 천진스럽도록 순수함에, 미소가 번진다.

'노대가老大家'는 못되더라도 '졸리 올드 맨(好好翁)'이 되겠다는 분.

새해에는 잠을 못 자더라도 커피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도록 하겠다며 다짐을 하시는 노대가.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돌아다니기 위해 털신을 사겠노라고 하시는 멋쟁이 로맨스 그레이~ㅎ

 

나는 송년에 어떤 다짐을 해볼꺼나.

이제 내 나이도 60字끄트머리, 소금후추머리로 그냥 다녀서 주위사람들에게 지적받는 반백.

자연스러운 게 좋아. 나는 마냥 자연의 품속이나 파고들며, 자연처럼 살테야. '와일드 올드 우먼'도 좋겠다.ㅎ

내 앞에 놓여진 내 삶의 순간을 '졸리 올드 우먼'으로, 보다 즐겁게, 보다 뜨겁게, 보다 짙게, 보다 깊게.

시시때때 일입청산만사휴에 빠지기도 하자. 청산에 누워 먼하늘가를 날으는 구름에 넋을 빼앗기기도 하면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니라.

이나이에 못하면 언제하랴. 우화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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