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겨울이, 여름이

eunbee~ 2013. 10. 29. 14:09

 

 

 

엄마 겨울이, 열다섯 해 전에 태어났고

아들 여름이 그 다음 해에 태어났어요. 아들네와 함께 산 세월이기도 하지요.

 

겨울이는 암 수술을 10년 전쯤에 했고요.

암 수술을 받은 해에는 오빠 언니네를 찾아 파리로 가서, 몽쁠리에에서 몇 년 살기도 했어요.

심장병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5-6년 전. 병원 의사들도 놀랍다고 해요.

심장치료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거의가 2년을 넘기면 죽는다고 해요.

 

겨울이는 이제 눈도 보이지 않아요. 뿌옇게 물체만 감지하는 정도.

먹이를 줘도 어딨는지 찾지못하고 感으로 찾아먹어요.

귀는 더욱 깜깜해진 절벽이라서 전혀 듣지 못해요.

성격이 밝고 먹성이 좋고 사람을 잘 따르는 장점이

그를 병으로부터 버티도록 하는 힘이라고 한다네요.

 

내가 가면 항상 내곁에서 잠들던 겨울이에요.

사람처럼 곁에 와서 함께 자기를 좋아했지요.

그러나 이젠 자기 자리나, 오빠 언니 침대에서만 자요.

 

 

두 녀석 모두 빠져버린 이빨 사이로 혀는 늘 세상 구경.ㅋ

 

심장 발작을 잘 일으키는 여름이는 구급차로 실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는 병원에서도 밤을 새우는 것을 두려워해서(의사가) 집으로 산소호흡기를 가져와서

밤새 아들과 며느리가 번갈아가며 코에 호흡기 씌워주고 앉아있지요.

다리에 힘이 없어서 마룻바닥이 미끄러워 자주 넘어지니, 이애들의 동선에 패드를 깔아두었어요.

가끔 갑자기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해요. 죽은 것처럼.

그때는 가만히 앉고서 마사지를 곱게 해주며 쓰다듬어 줘야 해요.

 낯선 사람이 오면 이불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해요.

심장이 뛰어서 발작을 일으킬 것만 같아 불안하지요.

 

아침 저녁 두 번 이애들에게 심장약을 먹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며

나에게는 매우 힘들고 긴장되는 일이랍니다. 얘들 심장약 먹이다가 내가 심장병 걸릴 것 같았어요.

겨울이는 먹성이 좋으니 자기 먹이에다 비벼서 줘도 잘 먹는데

여름이는 주사기에 넣어서(가루를 물에 개어서)자고 있는 이불 살짝 들추고

재빠르고 부드럽게 입속에 주사기를 넣어 분사해야 해요.

실패하면 얘가 또 놀라서 후다닥 도망가다가 비칠비칠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해요.

그러면 내 심장이 멈추어 버릴 듯하지요. 이렇게 하루 두번씩 긴장하고 나면

한 일도 없는데, 피곤함을 느끼지요. 어찌나 긴장을 하는지. 내가 많이 스몰에이잖아요.ㅋ

 

애 봐주다가 잘못되면 자식들에게 원망받는 어머니네 심정을 알게 되었어요.

이애들 돌보다가 죽기라도 하면 그 큰일을 어쩌나(평생 죄책감으로 남을 일, 이 집은 의사들과 약속이 되어있어요

하시라도 전화를 하면 의사가 달려오도록...)하는 걱정에 정말 긴장하고 돌봤어요.

하루 이틀 지나니 나도 익숙하고 애들도 내곁에서 잠들기도 하고,

여름이는 자다가 내곁에 와서 내 겨드랑이에 코박고 자니 그제서야 살 것 같더라구요.

 

 

 

 

자기들 카펫(패드)을 밟고 먹이있는 곳까지 가서 여름이는 먹이를 한 입에 두세 개씩 물고 와요.

자기이불 위,또는 내 무릎 위에 올려두고 먹는데, 그 한 알 먹는 것이 어찌나 힘겹고 오래 걸리는 일인지..

보고 있는 사람은 속이 타요. 이들이 빠졌으니 맘대로 씹지도 못하지만,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그 먹는 모습이 가여워요. 머리를 몇번씩 흔들고 입에 넣은 알갱이가 빠진 이빨 사이에 꼈는지..이렇게저렇게 애쓰고..

열 알갱이 쯤 먹는데 한시간은 걸리는 듯해요. 비칠거리고 걸어가서 먹이 물고, 도중에 오다가 뱉어놓고 바라보다가

다시 물고 와서 어디 놓을까 망설이다가.... 정말 보는 것도 힘들어요. 그렇게 침을 잔뜩 묻혀놓은 먹이를

겨울이는 잘도 주워먹어요. 자기가 새것을 가져다 먹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뱉어놓은 그 침묻은 것을 즐겨 먹지요.

오래전부터 그러는데, 그러는 것을 보고 은비는 "겨울아, 쏘스 발라 먹는 것이 더 맛있어?"라고 했었지요.

이 애들 보면 이젠 슬퍼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들이 있다는 것이 따스하고 행복이기도 해요.

 

 

 

 

 "일생을 살면서 돈 몇 천은 그리 크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아, 우리 잠시 몇개월 직장 접어두고

세계여행이나 하고 오자." 아들이 자기 아내에게 얼마전에 이야기 꺼냈대요.

한국적 의식구조 속에서의 직장의 총체적 분위기 및 운영 상황 등등에 부적응자 울아들 이직 고민중이거든요. ㅋㅋ

"강아지들은 어쩌고?" 그 말에 모든 것은 허공으로 날려 버려야 했다네요.

"엄마, 나는 가끔 내가 무얼 한다는 그것에 집중할 때 겨울이 여름이 존재를 잠깐 잊는 때가 있어.

그래서 은희에게 혼나." ㅎㅎㅎ 울아들도 나처럼 좀 맹~하고 허술한 그런 구석이 있어요.ㅎㅎ

 

 눈이 안보여도 귀가 안들려도, 겨울이는 사랑을, 사랑하는,사랑받는, 그 소중한 것은

그대로 잊지않고 있어요.  사람 잘 따르고 희미한 시력으로도 장난걸면 그 장난에 맞춰 함께 장난치고요.

졸졸 따라다니며 꼬리 흔들고 먹을 것 주면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식욕은 삶의 의욕이에요.ㅎㅎㅎ

 

성격 까다로운 여름이가 훨씬 더 안좋은 상황에 놓여있지요.

어제도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 받았어요. 여름이에게 신부전증이 생겨서 약을 다시 복합적으로 처방

받았다고 해요. 어머나~ 그 약은 또 어떻게 먹여야한대.ㅠㅠ 여름이는 영양재도 먹고 있거든요.

주사기에 넣어서 입에 쏘아주지요. 참 복잡해요. 여름이 돌보는 일.

 

 

 

 

먹이도 특별히 처방받은 먹이로만 먹고, 쉬야나 응가를 위해서도 얘들은 원래부터 저렇게

전용패드를 화장실 바닥에 깔아줘요. 하루에 서너 개 바꿔주지요.

패드가 쉬야로 많이 더럽혀져 있으면 여름이는 바꿔달라고 우리 주위를 뱅뱅 돌아요.ㅎ

미끄러지지 말라고 거실 바닥에는 패드를 깔아두고...

 

우리 애들은(내 딸들, 사위들) 이집 강아지를 보면서 끌탕들을 했어요.

강아지 보면 우울해 지려고 한다면서, 쟤들은 강아지가 아니라고... 저렇게 별난 체질의 강아지들

처음 봤다고. 그러면서도 이렇게 별난? 애정으로 돌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하고 함께 느끼니 다행이지요.

 

"엄마, 고양이 입양한다구?  절대 하지 마셔~"

아들과 며느리가 나에게 틈만나면, 생각만나면,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도 함께 하고 싶은 고양이를 아직도 고민하고 있답니다.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그들을 돌봐야 하는 발목잡힘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 아들과 며느님은 그런 세월을 15년 째 하고 있어요.

여름이와 겨울이는 인도에 가서도 살다 왔지요.

정말 평생의 짐이에요. 사랑이란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책임이 따르는 사랑.

.

.

 

** 언젠가 겨울이 여름이 포스팅을 다시 하게 되는 날

그때는 얼마나 슬픈 이야기로 쓰여질지... **

 

댓글은 그때 쓰세요.

저 이야긴 대부분 알고 있던 것이니.^^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겨울이 여름이가 좀 더 오래 우리곁에 있어주길 기도해 주세욤.

기도는 멀리있어도,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가 닿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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