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교보문고에서 배웅한 9월

eunbee~ 2013. 9. 30. 22:04

 

 

                                                            발칸반도 여행 중, 흑해에서

 

 

 

[항구에 정박한 배 ]  

               <생떽쥐페리의 '야간비행'중에서>  - 동우님 방에서 말없이 빌려온 것.^^ -


전화 벨 소리에 잠이 깬 유럽 행 우편기의 조종사 아내는 남편을 돌아다보며 생각했다.
'좀더 주무시게 가만 둬야지.'
그는 남편의 딱 벌어진 가슴을 넋을 잃고 들여다보며, 훌륭한 배(船)를 떠올렸다.

그는 어떤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이 침대 위에서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일어나 창문을 열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내려다보았다.

별안간 누군가가 이 여인에게 '전투 준비!' 하고 소리를 칠 것 같았다.

그러면 그의 남편이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의 휴식은 마치 돌격을 기다리는 예비대의 휴식과 같은 것이었다.

이 잠든 도시는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것이 속상했다.

이윽고 남편이 눈을 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창문께로 걸어갔다.
"그렇게 춥지는 않겠군. 아주 좋아. 적어도 브라질까지는 바람을 등지고 가게 돼."
"당신은 쓸쓸한 기색조차 없으시군요. 며칠 동안이나 나가 계실 건데도…."
일 주일 아니면 열흘. 그도 알 수가 없다. 쓸쓸하다니, 천만에, 무엇 때문에 쓸쓸하겠느냔 말이다.

그 평야들, 그 도시들, 그 산들….

그는 그것들을 정복하려고 아무 데도 얽매임 없이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신은 집이 좋지 않아요?"
"집이 좋지…."
그러나 여자는 남편이 벌써 길을 떠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남편의 따뜻한 체온이 손끝으로 건너오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남편은 옷을 챙겨 입고 머리를 정성 들여 빗었다.
"별들을 위해서 모양을 내시는 거예요?"
그는 웃으며 아내에게 입을 맞춘 뒤, 어린아이처럼 가볍게 안아 올려 침대 위에 갖다 뉘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밤을 향한 정복의 첫발을 내딛었다.

 

 

                                                                                                       마케도니아, Ohrid Lake에서

 

 

"별들을 위해서 모양을 내시는 거예요?"


울긋불긋 차려입고 떠나가는 9월에게, 속절없이 말을 건낸다.

세상 모든 것은 머물 수 없는 것.

飛行을 위해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모양을 내고 나서는 남편을 향한 착한 아내의 사랑스런 말을 빌어

(머리빗는 남편에게 '별들을 위해 모양을 내는 것이냐'고 말 할 줄 아는 아내라니.. 아,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나도, 9월에게 그렇게 인사를 건낸다.

애면글면, 애걸복걸하지 않으련다.

서러워하지도, 서운케도 생각지 않으련다.

가려면 가려무나. 

그러나... 가시난닷 도셔오소서! 속엣말을 9월의 귓바퀴에 바짝대고 건내 둔다. 속엣말로.ㅠㅠ

알아 들었으려나?

.

.

오늘,

오전부터 저녁 해질무렵까지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었다.

책의 숲에서 이것저것 뽑아 펴보고, 그 많은 장르의 서가들을 옮겨가며 기웃거리는 맛은 특별하다.

지난 월요일엔 김 훈 님의 [풍경과 상처]를 사서 읽다가 왔고

오늘은 생떽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사서 읽었다. 동우님 방에서 읽은 것이 너무도 좋아 아예 책을 구입했다.

"별들을 위해서 모양을 내시는 거예요?"

이 구절을 찾느라 [인간의 대지]를 세 번쯤 훑었다. [야간 비행]에 있는 것을. 에구구~

스맛폰 뒤져 블방에서 찾아냈다. 바보가트니라구..ㅠㅠ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9월도 이렇게 보낸다.

 

시월은 좀 더 멋지게 맞이하기로 해요.

먼 곳의 가족들...

블벗님들~. ^*^

 

 

2013. 9. 30.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