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이 상 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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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나의 기념비적인 낭비다
아무도 그 이마를 보지못한 메머드적인 이벤트다 사랑에 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뒤통수에 관한 리포트들뿐이다.
저 지나간 사랑에 관한 뒤늦은 지혜들, 그래서 사랑은 쓸쓸하며 사랑에 관한 할 말은 늘 같은 말들의 쓸쓸한 중언부언이다.
나는 사랑에 관한 쓸쓸함을 말할 때가 되었는가.
어깨 위로 결려오는 시간의 굳은 살, 남은 햇살의 여리고 가늘고 눈부심.
사랑, 그 언어 하나 만으로도 끓어오르던 생각들이 거짓말같이 사라져버린...
사랑의 쓸쓸함이란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의 담담함이다
어떤 격정도 일어나지 않고. 끝까지 그 낱말의 출렁임을 바라볼 때가 된 나이.
그 고요한 응시라야, 우린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쓸쓸함이란 사랑의 내부로 돌아온 사랑이다.
한 여인을 향한 괴로운 방황들을 종료한 어느날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 어쩌면 평생을 퍼내고 퍼낸 욕망들의 깊숙한 빈자리에,
지친 사랑을 옮겨 파묻는 내면의 파종법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본질이 쓸쓸한 것일까. 저 덧없는 짧은 기립. 잠깐의 햇살에 취한 전율, 봄과 여름과 가을, 꽃과 잎들의 계절을 지나간 뒤에도 남아있는 저 나무들의 지체부자유, 몸과 정신이 모두 폐허가 된 뒤에도 이윽고 기억으로만 세울 수 있는 사랑의 성채.
우리가 바라보는 건 저 부동자세로 벌 받는 나무일 뿐이지만 저 나무 안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쓸쓸함이란 나무들의 완성태인지도 모른다. 쓸쓸하지 않을 수 없는 완성된 고립,
한 생애가 폐경한 뒤에라야만 찾아오는 저 편안하고 앙상한 자세. 그리고 잎도 꽃도 없는 침묵.
사랑, 그 쓸쓸함을 개관하기 위하여 우린 그토록 무모한 연애의 백병전들을 감투해온 것인지 모른다.
(전체 글 중 뒷부분을 옮김)
A Drinking Song
- William Buter Yeats -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
.
가을이 여물어 간다
예이츠의 詩라도 읊조리며, 이 가을을 숨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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