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니의 흉상이 서 있는 길모퉁이를 돌아 조금 더 올라가니
교회가 보이기는 하는데, 앞을 막아선 나무들의 행렬로 그림에서의 풍경으로 만들어 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매우 아쉬워하며, 그림에서처럼 볼 수는 없는 것일까,하는 투정으로 잠시 내 볼은 붓는다.ㅋ
'오베르 교회'에서의 푸르디푸른 하늘은 오직 내마음 속에서 일렁이고
눈 앞의 하늘은 무심하고 심심하게, 마냥 묽은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다.
빈센트의 세월 속으로 달려가, 빈센트의 눈으로 보기 위해 나는 애를 쓴다.
취한 線, 애틋하게 덮인 색조들, 슬프게 짓누르는 짙푸른 하늘빛...
내 옆에 깡마른 빈센트를 앉혀두고 나는 잠시 몽환을 헤엄친다.
풍경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 빈센트 처럼.
삶도 스스로 빚어 생을 채우는 것. 나처럼. ㅎ
그리고...
꿈 꾸는 모든 것들은 꿈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행동하라.
교회 문은 굳게 닫혀있다. 모든 것이 닫혀있는 날이구나.
교회로 오르는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보니, 마침 빈센트의 그림 속에 서 있는 여인 모습이
거기에, 그 좁은 골목길에 머물고 있어, 내심 반가웁다.
모자를 쓰고 엉거주춤한 모습이 오베르 거리를 걷고 있는 빈센트의 인물과
흡사한 인상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무어 눈에는 무어가 보인다,렷다.ㅎㅎㅎ
한참을 앉아서 오베르 교회를 감상!!하던 우리는 빈센트와 테오가 잠든 공원묘지를 찾아 언덕을 오른다.
긴 돌담, 돌담 위에서 익어가는 과일들의 소박한 얼굴..
하마나 이것까지 빈센트가 보았을까, 내 몽상은 끝간데 없이 날아오르고.
한쪽 다리가 부러진 하얀 벤치에도 빈센트가 앉아있었을까,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언덕을 오르는 내 느린 걸음보다 더 느리고 진득하게 늘러붙는 망상은
마치 빈센트와 손잡고 걷는 마음이 되게 만든다.
저만치 내 앞에 빈센트가 휘청거리며 걷고 있구나.
손에는 붓을 거머쥐고, 누군가에게 빼앗길까봐 걱정되는듯 힘껏 악력을 가해 붓들의 목을 조이며.
등에 맨 이젤도 흔들거린다. 밀밭으로 가는 빈센트는 모든 것을 취하게 만들어서 함께 가고 있다.
그의 광기로 그의 압셍트로 그의 열정으로... 취하고 흔들리는 삶을 걸머지고 내 앞을 걷는다.
빈센트 곁에서 오로지 취하지 않은 들판만이
쓸쓸함에 겨워 적막하다.
'비오는 날의 오베르 풍경'은
슬퍼서 칙칙하다.
이 황량한 들녘에 비가 내리다니...
빈센트는 흐느끼며 그렸을 게다.
넓디넓은 들녘은 그를 얼마나 외롭게 했을까.
너른 들판 한부분을 답답한 담벼락이 고집처럼 막아 서 있고
그 너머엔 주검들이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두고 영면에 잠기는 땅이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게 살만하다고 들꽃들이 저절로 피어나 슬픔을 달래고 있는가.
아, 빈센트가 여기 잠들어 있네.
내 앞에서 비척비척 걷던 그 광기어린 영혼이 이곳에 잠들어 있네.
사람들은 빈센트와 테오의 눈물겨운 사랑을 못잊어, 한풀더미 속에서 고이 잠들라고
저렇게 풀더미를 함께 덮어 주었다지.
빈센트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몇가닥 밀이삭을 바쳤구나.
나는 무엇을 줄까, 그에게...
오르세에서의 눈물이면 족하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는 눈물을 왈칵 쏟을 수 있는 선물보다 더 진한 선물이 또 어디 있으랴.
빈센트와 테오의 풀무덤을 쓰다듬는다.
아이비의 까실한 촉감이 내 손바닥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 이상스런 전율로 번진다.
'빈센트, 그대의 불행했던 세월이 만들어 낸 예술이, 정신 아득해지는 노오란 세상이 ,
비틀거리고, 휘돌고, 타오르는 선들로 이어진 당신의 그 열정이.. 나를 처연한 행복으로 초대합니다. 고맙습니다.'
넉넉한 공동묘지 공간에서, 담장을 기대고 소박하게 누워있는 그들의 유택은
담장너머 펼쳐진 들판의 허허로움까지 데려다 베고 누워있는 듯해 참으로 쓸쓸하다.
노오란 해바라기 한송이,
빈센트가 내게 보내는 인사처럼.
약간은 갸우뚱하게...
그림에 온 진을 다 빼앗겨 이제는 지쳐 묘석에 기대선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의 삶에 대한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을 느낀다.
이글거리는 그림들은 빈센트 자신의 들끓는 사랑을 토해둔 것.
영혼 속에 끓고 있는 무엇이 분화구를 뚫고 나오는 마그마가 되어 화폭에 엉겨붙는 붓질.
나는 감히 빈센트보다 삶을 열정적으로 산 사람도 드물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그의 뜨겁고 거친 욕망이 덮쳐든다.
그 정열을 보듬어 주는 이 없어 외로웠을 빈센트를
슬퍼할 뿐이다.
자살한 사람이라고 성당 신부님에게서 조차 장례미사를 거부당한 주검.
이제는 평온하게 평등하게, 이글거리는 당신의 하늘을 날으소서.
빈센트가 묻히고, 6개월 후
형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속에서 정신착란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테오마져 생을 마친다.
이렇게 나란히 누워... 그들은 지금도 편지를 주고 받을까.
육신은 곁이라도 하늘길이 멀테니...
무덤 너머 먼 들녘을 본다. 무덤 울타리 철망사이로.
빈 하늘,
들녘을 가로지르는 바람.
.
.
묘지를 나와 '까마귀가 나는 밀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빈센트가 마지막 걸었을 길
까마귀는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추수 거둔 빈 들녘 너머 어디선가 까악~까악~ 까마귀 소리만 들릴 뿐.
벌판을 끝없이 내달리는 바람
텅빈 하늘.
나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붓칠하는 빈센트의 마지막 모습을 안고
발걸음을 돌린다.
빈센트~!! 언젠가 다시 만나요. 우리.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 1864년 기숙학교를 다니다 가난으로 15세에 학업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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