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그리도 오래 살아온 큰애는
페르 라세즈엘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비가 부슬거리는 지난 수요일, 우린 날잡아서(ㅋㅋ) 분위기있게 공동묘지엘 갔다우. 으흐흐흐~
공원만큼 아름다운 페르 라세즈.
나폴레옹(보나파르트)때 이미 생겼다는 이 공동묘지.
파리 시민들은 공원처럼 이용하고, 미술학도들은 뎃생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나그네들은 유명인들의 무덤을 보고자 순례하는 기분으로 찾아드는 곳. 페르 라세즈.
구획정리도 잘 되었고 가로수며 꽃들이며 수목들이 아름다워, 마치 한 도시를 방문하는 마음이 되지요.
이리저리 벋은 길들과 구획을 알리는 이정표?는 작은 도시라해도 손색이없답니다.
큰애에게 말했어요.
" 먼저 가신 영혼들이 사시는 작은 도시이니, 특별한 도시에 왔다는 기분으로 천천히
참배하는 마음으로 둘러보라"고요.
파리시에서는 이곳을 박물관이라 한다잖아요.
나는 특별한 한 도시 같아요.
나는 어떤 모양의 무덤에 묻히고 싶은 걸까...생각하며 이사진을 찍었다우.ㅋㅋ
돌로 된 길들이 고르지않은 부분이 많아 한눈 팔다가는 넘어지기 십상이에요.
"발 밑 잘 보고 걸어~ 넘어지지 말고." 딸이 한말씀 하십니다.
"내가 이곳에서 넘어져 죽거든 여기다 묻어줘~"
"여기서 넘어지면 벌금내라고 해, 그 유족에게.. 그러니 난 모르는 사람이라며 도망갈거야."
ㅋㅋㅋ 우린 이런 농담을 하며 묘지를 걸었어요.
발자크 씨께서 이곳에 계십니다.
(프랑스의 성씨 앞에 de(소문자)가 붙으면 귀족이에요.
우리 큰애 시누님은 대문자 DE를 굳이 소문자로 바꾸어서 표기한답니다.ㅎㅎㅎ
그녀는 잘 나가는 변호사.ㅋㅋ)
이곳 페르 라세즈에 대한 포스팅을 예전에 올렸던터라
여기선 생략합니다. 겹친 사진이 많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예전 포스팅을 보시와요.
주소 조금 후에 가르쳐 드릴게욤~ ㅎㅎ
들라크루아 씨 되시겠습니다.
아뽈리네르 씨.
페르 라세즈 묘석중에 가장 어리벙벙하고 생것(날 것)처럼 생긴 비석이에요.ㅋㅋ
가까운 어딘가엔 '생떽쥐페리'묘가 있다고 지도에 표시되었는데, 우리 큰애말이 '이 생떽쥐페리가 그 생떽쥐페리가 아닐거야,
지중해 상공에서 돌아가신 분 시체도 못찾았다는데 여기에 있을리가 없지"라며 굳이 찾아주지 않네요. 에잉~ ^^
망자가 사랑하던 강아지를 더 그리워할까요.
강아지가 망자를 더 그리워할까요.ㅠ
강아지의 붉은 입술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입니다그려.
프루스트,
아, 프루스트
그의 나약함과 섬세함과 예민함을 나는 좋아했지요.
마들렌을 먹으며 그맛에서 어린날을 기억하는 그 감각...그 장대한 기억에 관한 기술...
내아들 중학교 때 어머니날 내게 선물한 얇은 단행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하면 괜시리 서러워지는 나에게 맺혀있는 묘한 서정들.
비는 부슬부슬
까마귀는 예서제서 이나무 저나무를 날아들며 까악~거리고. 화장터 건물의 묵직한 적막.
장례식에 온 사람들...
우리 모두는 죽는다. 우리 모두는 시간앞에서 공평하다, 영생하는 사람은 없을테니...으흐흐흐
이사도라 던컨이 묻혀있는 이곳
아들과 이곳에 왔을 적에 아들이 나를 위해 '이사도라 던컨'의 묘를 찾아줬지요.
어느해 작은사위가 '어머니는 어느 무덤에 묻히고 싶으세요?'할 때 내가 택한 곳.
작은사위는 말했지요. '참으로 욕심도 없으세요. 저리도 작은 곳에 잠들고 싶다구요?'
ㅎㅎㅎ~ 죽어 누워있는 것조차 싫을진대 훨훨 바람결에 날려버려도 좋을 것을, 저보다 더 넓어서 뭘할까?
나는 사막으로 갈꺼야, 아무도 없는 곳, 아무에게도 폐가 되지않는 곳, 그냥 사라져 버리는 곳으로...
'어느날 내가 오래도록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사막에서 별이 된 줄 알아야해.' 우리애들에게 내가 가끔 하는 말이라우.
이제 하늘로 거두어갈 영혼을 배웅하고
육신은 거두어 땅에 묻는 준비를 하는 곳.
하늘로 솟은 두 개의 긴 굴뚝을 나는 이곳을 갈 때마다(이번 걸음이 네번째라우) 오래오래 고개 꺾어 올려다 본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엔 붉은 색으로 숱한 낙서?들이 뒤덮고 있었지요.
이번에 갔더니 사람들의 등살에 못이겨, 저렇게 유리로 담을 둘러놨어요.ㅎㅎ
몇해 전에 포스팅한, 붉은 글씨로 어지러운 오스카 와일드의 묘석 사진은
http://blog.daum.net/eunbeekc/11793079 이리로 가면 보실 수 있답니다.
망자들의 마을을 골목골목 휘돌고 있습니다. 눼~
우리 모녀는 느릿느릿 힘없이 걷는데, 이분들은 보무도 당당하군요.ㅋㅋ
2차대전 나찌에게 희생된 유태인의 유골 일부가 묻힌 곳이에요.
이 구역은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의 무덤이 있는 곳.
1870년 파리 꼬뮌 때 정부군에 희생된 혁명군을 위한 표지.
이곳에서 수많은 혁명군(시민군)이 총살당했다고 해요.
1871년 5월 21일-28일 사이에 이곳에서 처형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기념하는....
에디뜨 삐아프가 누워있어요.
한무리의 여행객들이 이 무덤앞에서 안내인의 설명을 듣더니
'장미빛 인생'을 그녀의 목소리로 이묘지에 울려퍼지게 하더군요.
안내인이 준비했나 봐요.
모딜리아니의 무덤이에요.
1919년 봄. 모딜리아니 35세
리비아에서 파리로 귀환, 그랑드 쇼미에르街 8번지에서 생활하게 된다
런던에서 열린 현대 프랑스 예술 그룹전에 몇 점의 유화가 진시되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희망의 빛도 잠시, 건강상태는 최악에 이르러 창작에 대한 열정과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혀서
격렬한 작업과 과음을 반복하며 방황을 되풀이 한다
1920년 36세
1월 중순에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몸져 눕는다
며칠 후 많은 양의 객혈을 토한 후 의식불명이 되어 페르가에 있는 자선병원에 옮겨진다
이틀 후인 1월 24일, 병원에서 사망한다. 이튿날 새벽, 임신중인 잔 에뷔테른도 남편의 뒤를 따라
아파트 꼭대기 육층에서 투신한다. 27일 페르 라세즈 묘지에 묻힌다
* 시인 장 콕토의 애도와 함께 모딜리아니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파리시민이 모여들어 긴 행렬을 이루었다
그러나 딸의 시신 조차 집에 들여놓기를 꺼려한 잔의 집안에서는 아무런 부고도 없이 잔을 파리 변두리에 따로 묻었다
모딜이라니의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몇 년 후에야 두 사람은 페르 라세즈 묘지에 함께 묻힐 수 있었다
모딜리아니와 잔 사이에서 출생한 첫딸 지오반나는 후에 성장하여 어머니 잔의 이름을 따서 개명했는데
1918년 11월 29일에 [모딜리아니라는 남자의 신화]란 전기를 써서 세상에 내놓았다
생전의 아버지에 대해서 한 가닥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았겠지만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학도답게
아버지에 대해 신중하고 꼼꼼한 태도로 면밀한 고증을 담아 모딜리아니 연구에 일조했다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권지예 지음, 시공사 발행)중에서 일부 옮겨옴**
짐 모리슨
1943년 생인 그는 10대 시절부터 니체와 랭보, 장콕토 등에 심취했다
65년 친구들과 그룹 '도어스'를 결성해 'The Doors' 등의 앨범을 잇따라 발표해 빅히트를 친다
특히 더 도어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의 하나로 손 꼽히고 있다. 노래 가사는 대부분 짐 모리슨이 쓴 것으로
반항과 광기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세련미를 물씬 풍긴다
짐 모리슨은 활동 기간 중에 술과 약물 복용. 외설행위 등으로 여러차례 논란을 일으킨다
결국 그는 탄압을 피해 1971년 3월 파리로 이주한다. 이주한 뒤 그는 거리 음악가들과
어울려 음악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 해 목욕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만다
약물 과다 복용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나이 불과 27세.
그후 그는 1993년 도어스의 멤버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8년에는
롤링스톤이 뽑은 역대의 최고의 가수 100선에서 47위에 오르는 등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1960년 대 당시 반전문화와 히피를 바탕으로 환각적 도치를 의미하는 사이키델릭이 그림이나 영화 음악 등에
하나의 신조류를 형성했는데 짐 모리슨은 사이키델릭의 시인으로 불렸다
**인터넷 어느 기사 중에서 발췌**
쇼팽,
깨진 리라를 들고 있는 뮤즈는 참으로 슬퍼보여요.
1849년 39세
8월 마지막 작품으로 마주르카 f단조(OP. 68-4)를 작곡
8월 말 방돔광장 12번지로 이사
10월 15일 친구인 레브렌트 옐로비키 신부에게 종부성사, 델핀느 포토카 백작부인이 쇼팽을 위해 노래를 부름
10월 17일 새벽 2시 경 세상을 떠남
10월 20일 쇼팽의 담당의사 크뤼베이어 박사가 쇼팽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심장을 적출
10월 30일 마들렌 성당에서 장례식,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묻힘
1850년 누나 루드비카가 쇼팽의 심장을 바르샤바 성집자가 성당에 안치함 ** 검색자료 **
큰딸이 좋아한다는 프랑스 어느 영화감독 무덤
우리 큰애는 이곳에서 말하기를 자기가 알면 유명한 사람, 모르면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어요.ㅎㅎㅎ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조차 알고 있다는 것은 유명한 것이라나요? ㅋㅋ
그리고 이묘지에서
짐 모리슨이 가장 인기있다고 하더니,(짐 모리슨 무덤엔 사람들이 북적대고 관리하며 지키는 제복의 남자도 있었거든요)
쇼팽 무덤엘 가서는 "쇼팽님 죄송합니다. 그대께서 페르 라세즈에서 가장 인기있고
무덤도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인정합니다."라고 하더군요.ㅎㅎㅎ
구역마다 헤매며 유명인들을 찾아 보던 우리는 이제 페르 라세즈를 거의 한바퀴 돌았어요.
이 길 끝에는 이 묘지에서 가장 유명하고 소중하다는 두 분의 무덤이 있답니다.
우리 모녀도 그곳을 향해 갑니다.
떠들썩했던 사랑이야기를 찾아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의 무덤
실물크기의 누워있는 석상이 조각되어있어요.
12세기 때 수사와 수녀와의 슬프고 말썽많고 기막힌 사랑 이야기가 깃든 무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묘지를 찾게 한답니다.
그들의 기막힌 사랑이야기는 각자 검색해 보시어요.ㅋㅋ
그 시대에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수도승의 이야기는 직접 찾아서 읽는 것이 더 좋아요. 푸헤헤~
페르 라세즈를 돌다보면, 검은 대리석에 금빛 찬란한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진 비석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한자예요.
윗사진속에도 한자가 보이죠?
중국 부자들은 그들의 돈을 이곳에도 묻어두나봐요.ㅋㅋㅋ
크고 웅장한 무덤들의 반짝거리는 대리석에 더욱 반짝이는 금빛 글씨들이 내 눈에는 매우 거슬려요.
좀 소박하게 계시지.. 이웃과 어울리게.
백화점에서 자주 만나는 중국인들의 메뚜기떼 같은 극성들은 정말 무서울 지경이에요.
세상살이가 다 그렇고 그렇다는 걸 이미 알고 가신 분들, 무덤에 누워 영면하시는 망자들은
홍진에 싸인 인간사를 비웃듯 혹은 모르는 척 평온합니다.
바람은 불어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가 우수수수~~
까마귀는 이리저리 날며 까악까악~~~
내 마음도 스산스러워지고....
검은 하늘에서 제 무게에 지친 맥없는 빗방울은 내리다말다~~
공동묘지 끝머리 돌벤치에 앉아 까악거리는 까마귀를 바라보며 이생각 저생각....
더욱 스산스러워지려는 마음을 추스렸어요.
'망자들의 마을'에서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은 여전히 오늘을, 순간을, 열심히 숨쉬고 있더라고요.
그들도 망자들의 마을을 찾아 들었을텐데....
무얼 느끼고, 생각하고, 마음에 담았을까요.
페르 라세즈에는 비가 부슬거리는 날이거나
낙엽지는 가을날 가보세요.
앵발리드의 나폴레옹 묘지엔 황혼이 질무렵에 가보라고 했지요?
왜 그런지는 가서 보면 알아요.
eunbee의 권장사항이에요.ㅎㅎㅎ
- 박물관 대접받는 공원묘지 -
세계에서 맨 먼저 문을 연 공설묘지는 파리 제20지구 초입에 있는 페르라세즈 묘지로 1800년부터 파리시민의 유택지로 애용되고 있다.
나무가 우거진 야산 0.42평방km에 영국식 정원개념을 살려 조성한 이 묘지는 세계 최고의 근대식 묘지답게 파리시민이 가장 많이 묻힌 프랑스의 대표적 집단묘지이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그 사이사이에 실핏줄처럼 난 도로 사이에 97개의 크고 작은 분묘단지가 구획되어 있는데 총 10여만개의 분양묘소에 50여만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시립묘지인 만큼 쇼팽, 발자크에서 부터 수년전 숨진 세계적 샹송가수 이브 몽땅에 이르기까지 유명인들의 묘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묘소가 남들과 달리 호화롭다거나 상대적으로 위치가 좋은 "명당"일 법한 곳에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저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그들이 놓고 간 꽃송이가 즐비한것이 보통시민의 유택과 다를 뿐이다.
"세계 최고의 근대식 묘지 - 유명인들의 묘소 많아 추모객의 발길 끊이지 않아"
페르라세즈 묘지는 프랑스 건축가 부로니야르가 최초의 정원식 묘지로 설계한 사실로도 유명해 이후 유럽 각국과 미국에 선보인 공원식 묘지의 시초가 되었다.
공원식 묘지답게 박물관으로 지정돼 문화재 대접을 받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에게 항상 무료로 개방돼 햇볕이 좋은날이면 묘지 곳곳에 심어진 수목아래 벤치에 산책 나온 주민들이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기는 공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파리시내에는 총 면적이 0.92평방km인 시립묘지가 14곳에 분산 설치돼 파리지앵의 유택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묘지는 5/10/30/50/100년의 시한부로 이용되어 끊임없이 재사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간 파리시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1만 6천명 가량으로 이중 2천명(13%)이 화장되고 나머지는 매장되지만 묘지난은 찾기 힘들다.
매장되더라도 대부분이 가족묘 형태로 합장되는데다 1기당 분묘면적도 반평이하로 넓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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