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서성입니다.
라팽 아질의 빈 마당에서 사랑스런 소녀의 장미빛 얼굴에 번지는 봄꽃같은 웃음과 인사나누고
다시 비스듬한 언덕을 오릅니다.
말로서 이야기하고 싶지않은 사람은 그림으로 속내를 들어내지요.
뒷골목에 숨어들어 숱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간 사람들의 언어를 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신산스런 그 주변만을 맴돌 뿐이지만 그래도 이처럼 그 말에 귀기우려 주는 사람 있다는 건
커다란 위안일 수도 있을 겝니다.
그 많은 뒷골목 후미진 곳의 이야기들을 이곳에 다 올리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에요.
몽마르트르 미술관이 자리한 코르토거리의 언덕받이랍니다.
지금의 이 '뮈제 드 몽마르트르'는 그 옛시절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로트렉, 위트릴로 등의 작업공간이었다지요.
미술관 문은 닫혀있네요. 거리도 한산하니 인기척이라고는 저 동양사람 둘 뿐이군요.
먼곳에서 왔을 그들은 기념사진을 찍느라 즐겁습니다.
이렇게 200년 전 쯤의 옛이야기를 찾아 온 사람들은 그들나름의 감상을 가슴에 새기고 가야만 하네요.
근사한 옆집은 남의 집, 뮈제는 꼬질꼬질.ㅎㅎ
이거이 어이된 일이얌???? 내가 뭘 잘못 알고 왔을까요?
이거리에서는 어색하기 짝이없는 저 서부의 총잡이 같은 남자(로트렉의 그림이라지요)옆에는 자흐댕 르누아르라고 적혀있어요
르누아르의 아뜰리에가 아니고 르누아르 정원이라구요?
혼자 구시렁거리며 건물을 올려다 봅니다.
정원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수선한 걸 보니 아마도 이 뮈제가 공사를 하려나 봐요.
몽마르트르 미술관 입구는 이렇게 문이 굳게 닫혔어요.
도무지 몽마르트르 뒷골목들은 유령이 떠돌고 있는 듯, 당췌 알 수가 없는 분위기네요.
건물 어느방인가엔 불이 켜져있건만, 미술 전시 살롱은 어디란 말인지...
뮈제 드 몽마르트르 골목길 맞은편 벽에는 이런 거리 이름표가 그려져있어요.
이거야 말로 유령네 동네로 가는 이정표인가 봐요.
아니면 그들이 살고 있을 거리?ㅎㅎ
파리엔 21구가 없다우.
그 옛날 파리의 벨에포크 시절로 가는 고풍스런 차를 타고 저 주소로 가면 아마도
이언덕에서 서성대던 모든이들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호홍~ 한 번 가봐?
그러나 내가 기다려야 할 그 자동차는 와줄까요?
뤼 앤 부~
거리 그리고 당신.
멋진 주소로군요.
부재하는 것을 존재케 하고 싶어하는,
저 특별한 거리를 만들어둔 사람의 현주소를 헤아려봅니다.
그러한 내 마음이 쓰잘 데 없는 의미부여만은 아니겠지요.
이렇게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모든 상상이나 몽환들이 가능해지는 묘한 기운이 맴돌고 있습니다.
미술관이 있는 길 끝 모퉁이에는 누군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과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그 앞에 멈춰서서 아랫동네를 내려다 봅니다.
몽마르트르는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란 말이 맞긴맞네요.ㅎㅎ
겨우 해발 150m이지만요,
높지막한 곳에서 저 멀리 펼쳐지는 아슴한 곳, 지평선이라던가 도시속의 지붕이라던가..를 내려다 보는 것도
참말이지 낭만스러워요. 옛시절 화가들과 시인들도 지금의 나같은 낭만에 젖어들었을 거예요. 그쵸?^^
어느해 겨울, 나는 '파리에서의 쇼팽'을 포스팅하기 위해 저 아래 쇼팽과 조르주 상드가 살던 집을 찾아 왔다가
이곳을 올랐더랍니다. 바로 이계단을...
쇼팽은 연인 상드와 이 언덕아래 몽마르트르 곁 동네의 아파트에서 살았었죠.
그들이 살던 집 앞에서 언덕 위 사크레퀘르 성당의 하얀 돔을 올려다 보며,
그시절의 쇼팽의 기분을 흉내내기 위해
나도 거기로 부터 여기까지 쇼팽의 넋을 얹고 걸었더랍니다.
비오는 축축한 어느 겨울날에.
오늘 여기에 있는 나는 그겨울 그때의 나를 추억합니다.
'건강한 나도 이렇게 숨차는데 건강치 못한 쇼팽은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라며 언덕을 오르던 나.
우리 나이엔 2-3년 전이 전생처럼 아득해진다우. ㅠㅠㅠㅠㅠㅠ
약국을 지나
창에 비친 성당의 돔을 감상하고.
그러고보니 이제 사크레퀘르 성당이 가까워졌나 봐요.
플라맹고를 추는 빨간 드레스의 여인의 뒷태가 내 맘을 사로잡습니다.
나는 한 때 스페인으로 날아가 플라맹고를 배우고 싶기도 했다우.ㅋ
처녀시절에 그런 꿈을 꿀줄 알았어야 하는데, 그땐 왜 그런 생각을 할줄모르는 맹초였을까요? 에잉~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무대에 서서 춤을 추었지요.
춤을 추고 있을 때는 시간을 느끼지 못하지요. 그것이 바로 무아경으로 빠지는 방법입니다.
절정이란 한 순간을 말하는 듯하지만, 춤을 추고 있는 동안은 그 시간이 모두 절정의 순간으로 이어집니다.
그 맛을 아는 사람은 평생토록 그 경지를 못잊어 헤매게 되기도 한답니다.
내가 서 있는 지금을 가장 잘 살아내자 하며, 홍야~홍야~ 살다보니 인생 끝머리라우.ㅠㅠ 이런이런.ㅉㅉ
성당을 지나 이리저리 골목들을 걷다가 다시 테르트르 광장 가까운 곳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레 쿨리스'를 발견했다우.
유서깊은 집 벽에는 관심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의 마음을 적어두고, 그려두고...
1919년과 1935년 사이 위트릴로와 그의 어머니 쉬잔 발라동은 이곳에서 자주 저녁을 먹고는 했다고 적혀있네요.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화가가 된 위트릴로, 젊어서는 마약과 독주에 취하고 방황의 길을 걸었지만
노년에는 평온하게 살다가 간 위트릴로, 화가로 활동을 하게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전시회도 열었다죠.
얼마나 다행이에요.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의 여생을 보장했습니다그려.
어린날부터(아홉살이라고 하던가요?) 소녀 가장으로 서럽고 어렵게 살던 쉬잔,
화가들의 모델이 되고 또한 그들의 여인이 되고, 흔들리며 이리저리 사랑을 찾아 손가락질 받던 쉬잔.
그녀의 삶을 그 누가 무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녀 앞에 놓여진 삶을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을 것을...
1887년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압생트를 마주한 쉬잔 발라동'
많은 예술가들이 고뇌하고 사랑하고 창작하고 그들의 삶을 태우던 이거리의 오늘은
흥청거림과 소란스러움과... 그리고 그시절을 그리워하는 영혼들의 조용한 한숨으로 덮혔습니다.
'라 메르 까트린느' 엄마 카트린느
1793년에 생긴 이 레스토랑은 비스트로라는 어원이 태어난 집으로 유명하지요.ㅎ
'비스트로'는 작은 카페, 술집. 작은 식당의 뜻을 가진 일반음식점이에요.
'비스트로'라는 어원의 유래가 몇가지 있다고 합니다.
지방어가 파리로 유입되며 '음식점'으로 퍼져나갔다는 설,
술과 커피를 섞은 음료 이름이라는 說.
카바레를 의미했던 비스텡고에서 유래되었다는 說들이 있는데,
아래 쓰여진 내용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 1814년 3월 30일
코사크 기병대가 이곳에 와서
'비스트로'라는 말을 외쳤고 그 후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비스트로라는 말이 탄생하였다.
180주년 기념
구 몽마르트르 조합 쓰다. ]
비스트로는 러시아어로 '빨리'라는 뜻이라네요.
1814년 러시아의 프랑스 침공으로 파리전투 때, 러시아 병사들이 술을 '빨리 빨리' 가져다 달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재밌죠?
프랑스의 자존심들은 그것에 반박하며 비스트로는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란 의미로 쓰여졌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설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더 좋아하니....
아무렴 어때.
홍합 한냄비에 15000원 되시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빨리 빨리와는 거리가 먼 표정들이네요. ㅎㅎ
몽마르트르에서 가장 이름난 광장 '테르트르 광장'은 이제 그 명성의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매우 슬픈 일이지요.
화가의 거리, 화가의 광장이라 불리우던 테르트르 광장은 먹자골목(광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지요.
광장 가운데를 완전히 장악한 것은 주변 레스토랑들이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으로 둔갑시켜서
화가들은 겨우겨우 그 둘레에서 이젤을 세워두고 여행자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화가들도 몇 사람 남지 않았어요.
예전의 테르트르 광장의 분위기를 아는 나는 너무도 아쉽고 서글픈 심정이 되어
한참을 망연히 서 있었다우.
테르트르 광장의 진정한 빛깔은 어디로 사라져 갔을까요.
피카소가 마네가 세잔이 반 고흐가 드가 위트릴로 포랭 르누아르 로트랙...
그들의 그림자는 이제 어디에 자리할까요.
나를 서글프게 만드는 테르트르 광장을 돌아나와 '달리 미술관'이 있는 뒷쪽길로 접어 들었어요.
이제 저녁이 되어 '프뤼모 네'레스토랑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네요. 뒷골목인데도 말예요.
달리 미술관 옆 빈터에서는 언제나 젊은이들이 모여 술을 마시거나
기타를 퉁기거나....
이곳을 몇번씩이나 오면서도 달리미술관엘 들어가볼 생각은 나지않더군요.
이상한 일이에요.
해는 서쪽으로 잔뜩 기울었습니다.
달리 미술관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레스토랑에 앉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사람들의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사는 건 다 그렇고 그렇다는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빛을 잃어가는 테르트르 광장의 서글픔 때문인지
식탁 앞에 앉은 저 사람들도 그리 즐거워보이질 않네요.
사람들은 늘 제 맘으로 남을 읽나 봅니다.
긴 언덕길을 이생각 저생각하며 내려왔어요.
몽마르트르에서의 대여섯 시간이 이 길 위에 얹힙니다.
파리의 벨에포크 그림자 한자락에 젖어들고 싶어하던 나그네는
그 바램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나를 새겨두었을 뿐입니다.
내가 느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이 그저 허망스런 몽상이었다는 생각에 더욱 허망스러워집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볼수록 몽마르트르는 너무도 엉뚱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긴 언덕을 내려오며, 내가 곱씹고 되묻고 다시 생각했던 것은
랭보와 폴 베를렌느의 시와 사랑,
에릭 사티의 슬픈 사랑과 그의 암담한 인생,
로트렉과 반 고흐의 압생트였습니다.
에릭 사티의 사랑..
그가 그리도 사랑하던 쉬잔의 무덤을 찾아가 따져보기라도 하고 싶어지네요.ㅎㅎㅎ
에릭 사티
다시 이야기할 기회를 가져보겠습니다.
그러니 나의 몽마르트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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