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크루즈'13

두브로브니크.. 그리고 하얀 의상의 마지막 만찬

eunbee~ 2013. 5. 28. 21:09

5월 4일,

오후 1시를 넘기고 카타콜론항을 떠난 우리 배는 

다음날 아침 8시 경에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항에 닿았습니다.

358마일의 뱃길. 긴긴 항해였지요. 

그 긴 항해 동안, 사우나에서 뜨거운 땀을 흘리기도 하고, 데크에서 해바라기도 하고

핏자와 맥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다가, 정장차림의 만찬에 평상복으로 가는 바보 노릇도 하며...

음악을 듣고, 카지노에도 기웃거려보고, 늘 하던대로 댄스파티장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싸여 잠을 잤던 거예요.


이제 다시 다른 낯선 땅에서의 아침이네요.

5월 5일이랍니다.



아드리아해를 거슬러 올라온 우리의 시선엔 

발칸의 보석,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가 안겨옵니다.

고갯길을 돌아돌아 만나던 때와는 또 다르게, 바다에서 바라보는 붉은 지붕의 작은 마을은 

더욱 자그마하게 보여요. 산자락에 흩어진 집들이 고요롭게 보여지기도 하고요.




코스타 마지카는 외항에 정박했답니다.

작은 배로 두브로브니크로 갔지요.

성곽이 우릴 기다리네요.




지난 해 봄의 발칸반도 여행 때는 성 아래만 다녔기에 이번엔 성곽을 올라 돌기로 했다우.

성곽을 돌다가 높은 곳의 골목길도 골목골목 찾아들어 걸었어요.






 





더 윗길이 또 있던데, 크로아티아 화폐로 입장료를 내라하기에 그냥 내려왔어요.

내려온다고 해도 무척 높은 동네에 와있는 것이거든요.

내려오는 길엔

성곽의 길을 걷기 위해 티켓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내려다 보이네요.






높은 동네 골목길 어디쯤에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요.

가뿐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는 여인은 내딸? ㅎㅎㅎ

큰애가 가장 높은 성곽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나를 발견하고는 뛰어왔답니다.

현지화폐나 카드로만 입장료가 해결되니 엄마를 위해서 성곽 입장 티켓을 사서 다시 꼭대기 성곽을 오를 생각이었다네요.

착하기도 하지. 그러나 나는 사양했어요.

내가 돌아돌아 걸어온 성곽만으로도 충분했거든요.

이산가족이었다가 높은 골목길에서 느닷없는 '엄마~' 소리에 딸을 만난 나는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요.

그것만으로도 꼭대기 성곽을 돈 기분보다 더 좋은 기분이 되었답니다.




큰딸과 함께 높은 골목길을 돌고돌아 내려와 맥주 한 잔씩 앞에 두고 성벽을 돌며 본 것을 이야기 나누었어요.

큰애가 맥주를 주문할 때, '크로아티아 맥주예요?'라고 한다는 걸 '두브로브니크 맥주예요?'라고 질문해서 우린 웃었답니다.

낯선 거리를 걷다가 분위기 그럴듯한 카페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시간은 행복한 보너스 타임이에요.

큰애와 나의 해피 아워. ㅎㅎㅎ 작은딸은 맥주를 마시지 않아요. 배가 아프다나 뭐라나~.ㅋㅋ



큰딸이 은비랑 은비엄마를 한참 전에 이 시장거리에서 만났다는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배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웠습니다.

오후 1시까지 다시 배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그 시각에 우리배는 다시 출항이에요.


작은 배에 승선하려는 긴긴 줄을 보고 우리는 성곽 옆에서 긴 줄이 짧아지는 때에 달려가자 하면서

꾀를 내었다우. 땡볕에 긴 줄을 서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ㅋㅋ

설마 마지카가 우릴 떼어놓고 떠나겠어요? ㅎㅎ

작은 배 서너 척이 선착장과 마지카를 오가며 사람들을 실어나릅니다.



세일러 모자를 쓴 마지카 시민들도 우리랑 같은 꾀를 냈나 봐요.ㅎ


어느 배에선가 긴긴 뱃고동을 자꾸만 울려대네요.

커다란 배에서 내는 소리인데... 우리 밴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성곽 그늘에 앉아서 이런 풍경들을 봅니다.

이런 고전적인 범선도 지나가고..



성곽 아래 땡볕에서 승선을 위해 서있는 긴긴 줄을 바라보며

홍~홍~ 콧노래 부르면서 기다리다가,


우리는 맨 꽁지에서 작은 배를 타고 무사히 코스타 마지카로 돌아왔다는 전설. ㅎㅎㅎ


돌아왔더니 게으름쟁이 모녀들은 방에서 누워있더군요. 역쉬~~ 그 모녀들 다워.

첫배를 탔나 봐요. 그런데 은비가 중요한 공지사항을..ㅋㅋ

"오늘 저녁 만찬엔 하얀옷을 입으래." 

에잉? 뭐라구?

하얀색 옷이라구? 하얀옷 있는 사라암~~~  전멸!!되시겠슴돠, 눼.

ㅎㅎㅎ~ 비상사태. 그러나 뭐 한두 번도 아닌 헛탕질. 오늘 저녁도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강 개겨야지 뭐~ 하하핫



은비의 유일한 하얀옷



패션의 여왕. 

여행 떠나기 전에 그리도 '크루즈 의상'에 대해 잔소리하던 이 여인.

하얀 것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자기 언니의 방한용 스웨터 빌려 입기.ㅋㅋㅋ

패션의 여왕은 이번 크루즈에서 그 명성을 반환했을 뿐아니라

크루즈 여행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받았다눈.ㅠ


지난 번 여행 때는 이런 행사들 없었어? 내가 물었더니

아니~ 이번과 똑 같은 행사였쥐이이~. 작은딸 대답이었다우. 이런이런.ㅋㅋ

다시는 쟤 믿지 말자, 우리.



큰딸의 궁여지책 흰옷.

혹시 잠옷? ㅋㅋㅋ


 


드뎌~ 그 허당 딸을 둔 엄니의 하얀 옷은?

하얀 스카프로 이렇게 임기응변식 패에에에션. ㅠㅠㅠ

사우나 룸과 수영장에서 주로 애용되던 저 '고갱의 타이티'를 용감하게.


 


만찬 테이블에 앉아서 좌중을 둘러보니, 뭐~ 그네들도 그럭저럭 꿰맞춘 의상으로 '하얀의상의 만찬'을 맞이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좌측 테이블의 두 아드님과 엄마께서도 우리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고...ㅎㅎㅎ 그나마 아빠는 검정 정장.ㅋ

어딘가에는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하얀 슈트의 그 신사도 있겠지만서두.ㅋ



이 날의 만찬은 이별의 만찬이었어요.

마지카의 마지막 밤을 위해 나는 와인을 주문했고,

주문 받은 써빙팀장은 써비스(자기가 나를 위해 와인을 산답니다. 그러면서 극비로 해달라며..찡긋 ㅋ)로 

와인을 따르며 빙긋이 웃었어요. 이런 소소한 재치. 즐거운 메뉴 중 으뜸.^^

그동안 내가 메뉴를 간단하게 주문하는 날에는 '다이어트 중이세요?'라는 죠크도 건내고, 어제는 춤도 함께 추고..

그간 주문받고 차려주고 의자 당겨주고 밀어주고.. 하는 사이에 情이 들었어요. 스쳐가는 情. 나는 또 어처구니없게

이런 걸 정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허허

그러나 정말 情 들었지요. 매번의 만찬을 그들의 수고로움으로 우린 행복했고, 그들의 표정에서 음식맛이 더 좋았으며

항상 의자 당겨주고 밀어주고.... 그 기억도 내겐 소중스러워요. 하항~




만찬 중에 음악이 울려퍼집니다.

Time to say goodbye~~!!!

아, 이제 코스타 마지카에서의 마지막 밤을 우린 이렇게 노래부르며 

인사를 나누어야할 시간. 팀장은 와인병을 가져와 우리에게 와인을 다시 따르고,

내 마음 속엔 한무리 물무늬같은 뭉클함이 지나갑니다.


이별은 언제나 아쉬운 것.


우린 아쉬운 포옹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항상 발길을 옮기던 댄스파티장으로 갔지요.

그곳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그러나 그곳은 어제와는 달리(어제는 앉을 자리가 없게 꽉 매웠던...) 텅텅빈 자리였어요.

이곳 사람들은 마지막 밤을 우리처럼 흥청거리며 보내는 것이 아니고, 짐을 챙기며 내일의 귀환(?)을 위해 

조용히 보낸다고 해요. 우리 애들이 아는 프랑스인들의 이별 전야는 그러하다네요.


여늬날 처럼 우린 댄스파티장으로 와서 칵테일이며 맥주며..입맛대로 주문했어요.

술 잔은 앞에 놓여지고, 

춤추던 사람들, 카드놀이 하던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무대에서 연주하는 악사들도 조용한 이별노래를 연주합니다.



 

갑판으로 나오니, 은은하게 온 선상을 휘도는 Con Te Partiro !!

오늘 밤엔 저 노래소리 속에서 잠들려나 봅니다.

(음악이 항상 선내를 휘돌고 있지요. 선내 방송도 자주 있고)

.

.

 

우리를 실은 마지카가 크로아티아 땅을 떠나 베니스를 향해 항해한지 열 시간이 지난 시각.

이렇게 코스타 마지카의 마지막 밤은 

바다와 하늘이 칠흑 속에서 엉겨 하나가 된 우주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나의 하루도 전생처럼...아득함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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