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그 거리에서 에펠탑을 본다

eunbee~ 2013. 3. 21. 18:59

사진 :  2013. 3. 16  오후부터 해질녘까지




파리 시내 나들이.

변덕스런 파리날씨, 그날도 여전히 바람불어 쌀쌀했지만 햇살은 좋았다.

큰딸이 파리에서의 유학생활을 처음시작한 집이 있는 거리로 들어섰다. 

애초부터 딸이 살던 동네에 갈참이었다.

그시절, 큰딸의 파리에서의 벨에뽀끄를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에...

아니, 어쩌면 나의 파리사랑이 시작되던 그 때가 그리워서라는 말이 더 정확할게다.


15년의 세월은 얌전히 흘렀구나.

변한 것이라고는 큰애가 살던 건물의 대문 옆집들 용도가 바뀌었을 뿐.

그 정겹던 나무대문도 그대로, 거리의 풍경도 그대로, 카페의 분위기까지 그대로.

파리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내 세월만 분주할 뿐이었구나.





큰애가 살던 집 대문 앞에서 에펠탑을 바라본다.

이거리에 살 적에 새벽에도 밤중에도 시간 가리지않고 그리로 가보던 곳, 에펠탑 아래.

새벽달이 걸린 모습, 아침햇살에 싸여있는 모습, 어둠속에서 보석처럼 빛을 내며 서있는 우아한 에펠탑을

질리도록 보던 그때를 추억한다. 바람부는 거리에 서서....





길을 건너면 상 드 마르스 광장.

그때는 이런 번접스럽고 매력없는 구조물이 없었는데...






어느 바람불고 천둥울리고 온갖 지상의 가벼운 쓰레기들을 공중으로 날려보내던 날씨 사납던 그 날 그 오후,

천둥번개를 무서워하는 큰딸을 걱정해서 이장소에서 마구마구 뛰어서 집으로 가던 사건(?)은 

이곳에 오면 늘 기억나는 인상깊은 일이다.



마른나무가지, 그 위에 앉은 까마귀, 앙상한 철골의 탑, 흩어지는 구름.. 잘 어울리는 조합.ㅎ


새벽에 가만가만 조용조용 문을 열고 나와서 에펠탑 아래에 앉아 새벽달을 보던....

한참을 그렇게 푸른새벽을 즐기다가 날이 완전히 밝으면, 동네 빵가게에 들러 방금 구워낸 고소하고 따끈한 빵을 사서

집으로 향하던 그 때.

거리 청소를 하는 초록유니폼을 입은 피부검은 청년들이 반갑게 인사 건내주던 새벽 나들이.

지금은 위험하다고 그런짓 하지말라고 만류했을테지만, 그시절만해도 파리의 치안은 지금보다 훨씬 안전했고 

살기에 부드러운 시절이었다.


늦은 저녁에 에펠탑과 사이오궁을 잇는 다리에서 만난 한국청년이 내 초상화도 그려주었지.

빈손으로 나왔기에 극구 사양하는 내게 '모델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림값은 된다'며 실제의 나보다 

어여쁘게 그려서 선물로 주던 그사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애들도 아는 유학생. 

밤중에도 자주 나오던 이강변, 에펠탑 아래.





사진을 찍다보니 우박이 떨어진다.

하늘을 바라본다. 에펠탑 위 그리고 내머리 위엔 구름도 없다.

웬 우박일까. 파리날씨는 감잡을 수 없으니 이상스러울 일도 아니다. 

그래도 자꾸만 하늘을 본다. 그리고는 잔디 위에 떨어지는 우박을 본다.

모양이 깨진 얼음알갱이처럼 이상스럽다. 크기도 고르지않고....

에펠탑 철골에 매달려있던 얼음이 햇볕에 녹아서 떨어지는 것이다. 아하~

에펠탑 바로 아래에서만 만나는 봄날의 우박. 그랬었구나.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아 반짝반짝 빛을 낸다.

그러다가 떨어져 내리나 보다. 낮은 기온으로 승강기 운행도 스톱이다.


영하 3도 이하로 내려가면 승강기 운행이 되지않는다.

이날도 에펠탑 3층 꼭대기를 오르고 싶어하던 여행객들은 실망이었겠다.






해질녘, 햇살은 철골다리 아래로 기울고

바람은 점점 차갑게 불어온다.

작은 연못에서 오리 몇마리가 귀엽게들 놀고 있다.





지난 겨울을 견뎌온 나무껍질이 봄바람에 허물처럼 벗겨져 펄럭인다.

비낀 햇살에 투명한 빛을 띄우는 나무껍질이 성당의 스테인드그라스처럼 빛을 투과한다.

춥고 긴 겨울을 보낸 저 얇은 껍질의 인고를 더듬어 본다.

살아낸다는 게 무언지...에혀~ㅠㅠ





나는 상 드 마르스 광장을 되짚어 큰딸이 살던 거리로 다시 들어선다.

15년 전 그시절 자주 들러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카페 알롱줴를 마신다.

그날들이 그립구나. 

파리에서의 내딸의 첫번째 집. 내가 매일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위로 

어린왕자의 별에 불이 켜지는 것을 파리에서 보러 달려가던 이 집, 이 거리.

이 거리에서 에펠탑을 본다.


저만치... 그리움이 되어 서 있는 에펠탑.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게 하는.... 

카페 알롱줴는 이미 식어버린지 오래.


내게 에펠탑은 이렇게... 

그리움이다.

.

.


어젯밤에는 큰사위랑 팔짱을 끼고 꽃집으로 가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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