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시인을 만났어요

eunbee~ 2013. 3. 10. 21:15


은비엄마 친구 중 시인이 있어요.

며칠 전, 파리 시내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메트로역 부근에서, 아름답고 얌전하고 수줍은 모습의 시인을 만나서

첫 인사를 나눴다우. 은비엄마는 시인의 시집을 선물받아 둔 것을 내게 보여주었지요.

읽고 읽고 또 읽으며, 내 무디어가는 감성에 한소끔 봄비같은 물을 뿌려주고 있어요.

시인 염명순 님의 시는 내게 그렇게 보슬비의 단맛으로 내리고 있답니다.




심학규 4


도처에 집이나 나는

집에 닿지 못한다


저물어 불을 켜는 집집마다 아직

그리움이 있으니

나 여기 살아 있구나


길 떠나 노중에 있다

부디 문을 잠그지 말라

봄인 듯 뒤돌아보았더니

어깨를 치고 가는 서늘한 계절에 

가도 닿지 못하는 집은

멀리 있어

더욱 아름답고


나보다 먼저 달리다

넘어지는 마음만

봄이 되고 겨울도 된다

.

.

.


시인 염명순 님은 

프랑스 뚤루즈 2대학 미술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마쳤지요.

번역서로 '피카소' '프랑스 현대미술' 등 최근에는 학생들을 위한 미술공부를 위한 책이 있으며

198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아침의 노래'로 당선, 등단한 시인이에요.


그 님의 시 '아침 노래'를 감상해 보아요.

난 이시를 내 마음의 벗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선물 하겠어요.^*^



아침 노래


그대에게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새벽길은 어두워

하늘 끝에 남아 있는 샛별 하나로 길을 밝히면

신기하여라

문득, 그리운 이름으로 피어나는 그대


그러나 지금

그대에게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길 위에 넘어져 눈을 감으며

스스로 길을 끊어 일어서는 절벽에

무엇인가

잠시 어둠 속에 희망처럼 빛나다

이젠 뒷걸음질쳐 물러나

긴 뻘로 덮쳐오는

육중한 이 무게, 이 가위눌림은 무엇인가

밤새 긴 뻘을 꿈틀대며 기어가

절벽에 오르면

아, 오늘의 언덕은 얼마나 높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만히 

바람이 불면

그리움의 나무로 흔들리는

작은 씨앗을 심으련다

눈물 없어 메마른 땅에

눈물로 떨어진 뜨거운 씨앗 키우며

척박한 땅의 어깨를 흔들고

어두움의 깊이를 가르는

여리디여린 뿌리

보듬어 안고 싶다


길은 길 위에 넘어져 눈을 감고

어둠이 어둠 위에 넘어져

더 큰 어둠 만들어도

지금 어두운 새벽에

절망보다는 희망이 있어 슬프고

미움보다는 사랑이 있어 마음 아픈

그리운 그대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면 그대는

홀로 어두운 새벽길을 

빛의 이름으로 걸어와

눈물로 씻겨 말개진 하늘을 보여주며

사람이 사람을 섬겨 아름다운 나라

눈부셔 눈물나는 아침의 나라가 왔다고 말하리

.

.

.


파리, 세상사람들이 한번쯤 살고파 한다는 모두의 로망의 도시,

그러나 이방인으로 살아가기엔 항상 아웃사이더로서의 설움은 떨칠 수 없는 현실.


시인 염명순 님은 멋진 낭군님이랑 사랑스럽고 모범생인 아드님과 함께 아름다운 삶을 누리고 있지요.

그러나 그 님도 이런 시를 읊어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자신도 모르겠는, 까닭모를 외로움과 보이지않는 벽의 막막함일 거예요.

이곳에서 살아가는 내 딸을 바라보는 나도 자주자주 젖어들게 되는 외로운 슬픔이지요.



카페 아르뷔스뜨


 카페 아르뷔스뜨 앞에서 소나기를 만난다 불어로 관목이

란 뜻의 이 카페를 지나며 가끔 '아 르 뷔 스 뜨' 하고 소

리를 내어 천천히 발음하면 작은 나무들이 무성한 수풀이 

우수수 흔들리는 소리가 나고 동시에 하늘의 별들이 그 수

풀 위로 쏟아져내리는 느낌으로 친숙해진 이 카페 앞에 서

서 비를 긋는다 우산을 들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우산

살에 빗방울이 물음표로 매달렸다가 그들의 알 수 없는 저

녁 속으로 ? ? ? ? ? 똑똑 떨어져내린다 누가 이 도시에서

카페 아르뷔스뜨로 가는 길을 묻는다면 나는 말없이 하늘

의 별들을 가리켜주리라 어떻게 별들은 길을 잃지 않고 밤

하늘을 헤쳐가는가 만약 당신이 카페 아르뷔스뜨에서 나를 

만나자고 한다면 내 눈앞에 온통 인동덩굴이라 나는 당신

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늪지의 달개비꽃처럼 줄기를 

누르면 진한 보라색 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은 저녁에 비

가 잦은 지중해성 기후의 이끼 낀 기억은 금세 웅덩이에 고

이고 우산 끝에 잠시 눈물처럼 맺히는 것들. 그리고 뿌옇게 

흔들리다 사라지는 것들, 카페 아르뷔스뜨, 들어갈 수 없는 

이 도시의 관목숲. 



가까이에서 이웃하며 사는 친한 친구라며, 마음 편케 허락도 없이, 시인 염명순 님의 시를 내 맘대로 옮겨 놓았답니다.

이 블로그에도 가끔 오셔서 어눌한 글 읽어주시는 은비엄마 친구, 아름다운 시인님께, 이글로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무단 옮김을 용서해 주세욤~ 어여쁜 시인 님!!! ㅎ ㅔ ㅎ ㅔ 



덧붙임- 대문 사진을 은비랑 의논해서 다시 올렸어요.

            어제 생루이섬에서 찍어온 따끈따끈한 사진으로 새단장했어요.^*^

            이 컴은 어느날부터 음악도 먹통, 화면색채는 흐릿흐릿~ㅠㅠㅠㅠ

            감이 잡히질 않아요. 약간 눈먼 기분으로 사는 이 기분. 아실랑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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