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겨울이 여름이 이야기

eunbee~ 2012. 11. 26. 19:43

 

 

아들네가 새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아들 퇴근길에 함께 그집엘 갔더니 겨울이가 현관문 앞에서 울고 있었어요.

낯선집에 자기들만 두고 언니 오빠가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생각하는 겨울이는

아들, 며느리가 퇴근을 하고 와서 보면 요즘 매일 이렇게 울고 있답니다.

 

이튿날 아들내외가 외출을 하며 로보킹(청소기)을 작동시켜두고 나갔습니다.

자기들 이불속에 굴을 파고 들어앉아 잠을 자던 겨울이 여름이가 로보킹이 가까이 가자 놀라서 뛰쳐나왔어요.

얘들은 둘다 겁이 이렇게 많아요.

특히 여름이는 겁많은 비실이에요.

낯선 사람이 와서 한 번 안아주고 가면 반드시 병이 나요.ㅋㅋ

못말리는 비실이에 겁쟁이에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는 애예요.

 

입양 13년 차, 유학도 함께 가고, 해외 직장에도 함께 간 명실공히 가족이지요.

이애들 때문에 집에는 제대로 된 카페트도 생략해야하고, 침대 높이도 조절해야 합니다.

아무때나 이애들이 오르내리며 언니 오빠랑 함께 있기를 원하니까요.

그리고 아들내외는 여행도 자주 못해요.

지난 여름 딸들의 계획이 한국에 와서 모두들 일본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이었는데, 아들이 강아지 때문에 안된다 해서 포기들을 했습니다.

아침 저녁 꼬박꼬박 심장약을 두녀석에게 정성스럽게 먹여야 되고, 언제 이애들이 응급 상황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여름이는 툭하면 응급실로 달려가고, 응급실에서도 자기혼자 둘 수가 없어서 산소호흡기를 집으로 가져와서 보살펴야 할 정도입니다.

 

 

로보킹 때문에 놀란 애들을 내가 의자 위에 올려 두었어요.

뱅뱅거리고 다니는 로보킹이 무서워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해요. 바보같은 녀석들...ㅎㅎ

 

왼쪽에 있는 겨울이는 여름이 보다 한살 위, 겨울이가 엄마, 여름이가 아들이에요.

 

 

겨울이는 이제 열 네살 쯤, 사람 나이로는 여든이 넘은 고령이라네요.

이빨도 빠져서 혀가 나와있어요.

귀도 들리지 않아서 우리가 들어가는 기척도 못느끼고, 울던 울음을 그대로 마냥 울고 있어요.ㅠㅠ

참으로 슬픈 모습이에요.

검은 눈동자도 하얗게 흐려져 있으니 잘 보이지 않아서 아들네에 있는 물건들은 모서리를 모두 둥글게 손질해 둬야 해요.

부딪히면 아플까봐...ㅠ

유학 중인 언니 오빠를 따라가기 전에 무슨 암인지 암 수술도 했어요.

의사 말에 의하면 겨울이가 성격이 좋아서 잘 견디며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다고 해요.

명랑하고 적극적이고, 무엇보다 먹보예요.

겨울이는 먹는 재미로 산다고 아들이 말하지요.ㅎ

 

 

겨울이 아들 여름이.

소심하고 겁많고 예민하고 비실비실....

낯선 사람만 봐도 병이 나는...

귀공자처럼 행동도 곱고 털도 곱게 생겼어요. 그러나 걷다가도 제힘에 겨워 툭 쓰러질 것 같아요.ㅋ

아마도 여름이는 아들과 며느리처럼 강아지를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사람을 만났으면 이미 죽었을 거예요.

자기들 이불에 굴을 만들어 두고는 하루 종일 그곳에서 잠자고, 병원이나 미용실에 다녀오면 거의 1주일은 스트레스로 비실대지요.

심장약 먹일 때에도 며느리 말만 잘 들어요. 다른 사람은 손도 못대게 하지요.

보통 정성으로는 이애를 보살필 수 없습니다.

 

 

겨울이는 비행기를 긴 시간 탈 때 강아지 케이스에 넣어놨더니 그것을 물어뜯느라 이빨이 빠진 이후

늙어가며 저렇게 혀가 나와서 들어가질 않아요.ㅎㅎㅎ

저쪽 뒤에 있는 비실이 여름君의 표정좀 보세요. 참으로 가엽죠? 저 애가 평생토록 지닌 저 애의 트레이드마크예요.

보호본능을 자극하는....ㅋ

 

 

침대 프레임도 절대로 높은 것을 택하지 못해요. 강마을 집에서는 침대가 높아서 항상 침대곁에 얘들이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쿠션들이 계단을 만들며 놓여져 있어야 했어요.

이번에는 아예 다다미 높이 위에 침대 매트를 장만했네요.

모든 것이 강아지 두녀석 눈높이로 살아야 해요.

 

산책하기에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음에도, 이애들 눈에 익은 산책장소를 바꾸기가 걱정스러워 이사 오기 전의 산책장소로

차를 몰고 가서 매주 주말(토, 일) 산책을 시키지요. 그 정성도 대단해요.

 

 

내옆에 자주 와서 나랑 함께 잠자던 겨울이가 이젠 예전같지가 않아요.

너무도 늙어서 많은 것을 잊었나 봐요.

눈가에 촉촉히 젖어있는 눈물이랑, 뿌연 눈동자, 항상 나와있는 혀가.... 너무도 슬퍼요.

자기들이 낳은 자식들처럼 소중하게 보살피고 키우고 함께 지내는 아들내외가

저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마음을 아파할까.... 내 맘이 더 아파요.

 

아들내외가 강아지 키우는 태도를 보면, 내가 간절하게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애완동물을 가족으로는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책임감있게 키울 자신이 없으니까요.

 

겨울이 여름이가 심장병 약을 먹은지도 5년을 넘겼습니다.

심장병 약 복용 3년이 지나면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라고 한다는데, 겨울이 여름이의 하루하루가 걱정입니다.

사랑보다 더 무서운 건 정이라더니....

정도 사랑도 깊을대로 깊었으니 이제 어쩐대요. 이별의 날은 틀림없이 올텐데.

 

사는 게, 다 그래요.

'맹그로브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형부  (0) 2013.01.15
시즌 到來  (0) 2012.11.30
나도 김치 담았어요  (0) 2012.11.22
내엄마 살아계시면 아흔다섯  (0) 2012.11.19
은비네는..  (0) 2012.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