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고향의 가을 한자락

eunbee~ 2012. 10. 22. 09:09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이작은 도시는 비료공장이 생겨난 덕에  小邑에서 市로 승격했지요.

작은 소읍의 중앙로터리에서는 많은 시민이 모여 비료공장 개통식(?)을 한다고 주미대사(임병직 대사)를 비롯한 미국인들을 환영하는

환영식과 퍼레이드도 있었다우. 나랑 내친구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꽃다발을 들고, 어느 미국인에게 꽃다발을 주고는

멋진 차에 올라 시내에서 비료공장까지 함께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참으로 촌스러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어둑한 내고향사람들처럼 내고향땅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듯해요.

구름에 잠긴 산은 이도시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내가 고향을 떠나던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꼭 한번 저 산을 올라봤습니다.

 

 

제일 높은 산 남쪽으로 벋은 이산은 남산이고요. 많은 도시에는 南山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있지요?

겨울에 눈이 쌓이면 토끼몰이를 한다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남산에 올라 한바탕 난리를 부리던 산이지요.

토끼를 잡는다고 법석이던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노루인줄 알고 잡은 것이 동네 개였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기억도 있어요.

전설같은 세월 속 이야기입니다.

 

 

4.19혁명, 5.16군사쿠데타...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

우리는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느라, 사방砂防공사를 하느라 봄이면 삽들고.. 나무모종들고.. 산으로 올랐지요.

그 나무들이 저렇게 자라서 이제는 숲을 이룹니다.

그 또한 전설같은 이야기네요.

 

 

일요일도 방학도 모두 반납하고 우린 시설좋은 강당

(아마도 유네스코의 원조로 지었을 듯한...)에서 무용을 했습니다.

여름방학엔 바Bar를 잡고 발레연습을 하면 땀이 비오듯하지요.

춤출 때는 무아지경이니 더운줄도 힘든줄도 모르다가 잠시 쉬는 동안 불어오는 바람에

정신이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선생님이랑 함께 약막이라는 약수터엘 갑니다.

그곳에 가던 길이 바로 이길이지요.

그때는 오솔길이었던 곳이 저렇게 차가 달리고, 길 끝에는 내언니네 아파트가 우뚝 서 있네요.

화장터가 바로 옆에 있던, 기피하던 동네였지요.

전설같은 이야기예요.

 

 

약수터는 물맞이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답니다. 우린 모두 차거운 약숫물을 흠뻑 맞으며

땀에 젖은 하루를 씻어냅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길엔 이렇게 고마리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지요.

여학생들과 여선생님이 약수터에서 물맞이하며 하하호호 거릴 수 있던 세월도 있었네요.

전설 같은 이야기 입니다.

우린 중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 언니들은 조금 부끄럽지 않았을까요? ㅎㅎㅎ

 

 

고향에 가던 첫날, 언니랑 부모님이 계시는 공원묘지엘 갔습니다.

묘소 앞에 앉아 그동안 내가 모르던 이야기도 언니에게 들을 수 있었다우.

엄마 회갑때 딸과 며느리들이 옥색저고리에 남색치마를 입었던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날 입은 남자형제들의 양복과 여자들의 한복은 엄마가 자식들에게 준 선물이었답니다.

울엄마는 그렇게 생각깊고 지혜로운 분이었어요.

객지에 있던 나는 엄마회갑이라고 고향집에 갔더니... 장구소리 울리던 기억밖에 없습니다요.ㅠ

35년전 일이기도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철이 들었어야 말이지..에혀~

 

 

'산천 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다~'

세월은 그 어느 하나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그려.

변하고 사라지고 잊혀지고.. 기억의 편린으로 가슴에 쟁여있는 것 또한 어느날엔가는

기억밖으로 흩어질테지요.

 

 

형제가 결혼을 해서 자기들의 며느리, 사위들을 본 세월에 얹혀있다는 것은

점점 '고향'이란 특별한 분위기와 멀어지는 일입니다.

내부모 내형제들과 함께 지내던 세월은 전설이 되어 가는 거예요.

모두들 일가를 이루고 있으니, 이 집엘 가도 저 집엘 가도 낯선(?) 사람들이 가족으로 살고 있으니

마음도 그닥 편치 않고, 내가 끼어들 틈이 아니란 느낌이 들게 마련이지요.

그런 상황이나 분위기가 불편하고..그리고 그런 불편함이 서럽습니다.

고향엔 엄마가 있어야 제대로의 고향!!입니다.

 

 

색바랜 고향의 서정은 한가닥 회상이나 추억거리일 뿐입니다.

애틋함도 따스함도, 고향이란 단어속에 품어보던 꿈같은 꿈도...있기나 했던가?하는

부질없음으로 흩어져 갑니다.

열아홉에 떠난 고향이 이젠 너무 멀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갇혀있던 모든 상념들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세월이란 이름의 보자기에 싸서 묻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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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엔 비가 오네요.

가을비가요.

내 아파트 창 밖 나무 한 그루, 눈부신 노란잎들을 매달아 두었습니다.

노란손수건을 매달고 님을 기다리는 어느 여인의 참나무처럼요.

 

빗소리가 제법 후두둑댑니다. 먼산도 안개비에 잠겼네요.

노란잎도 금방 떨어져 버릴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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