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우린 그들과 달라... -화양연화-

eunbee~ 2012. 8. 17. 22:21

 

'우리집꽃'이라고 헬렌님이 가르쳐준 꽃이름. 궁금해하는 블친 님을 위해...^^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

우리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던가? 우리들의 화양연화는 언제일까?

 

한가한 오늘 오후에 오래된 영화, [화양연화]를 봤다. 오래전에 한번 본 영화.

내가 좋아하는 왕가위 감독의...

 

 

 

 

우연히 어느 같은날, 좁은 아파트의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되는 차우(양조위)와 리첸(장만옥).

그들은 늘 좁은 복도에서 스치고, 닿을 듯 말 듯 지나쳐 가고, 바라보는 것인지 의식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만큼만,

공간을 내어주고 공간을 사용하고, 서로를 의식한다.

 

얼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자기들의 배우자들이 연인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두 불륜자들의 모습을 내비치지 않고, 그들의 잘못된 사랑놀음 역시 전혀 화면에 담지도 않고, 

또한 점점 가까워지는 두 주인공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마져도 구체적인 대사나 행동으로 올려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배제됨으로해서 이영화는 농밀했고, 아름다웠고, 절제된 고급스러움이 깃들었다.

장면마다에서 두 사람이 이루는 고요로운 긴장감 휘도는 앙상블은, 바람에 날리는 한가락 詩로 흐른다.

 

 

은비 가던 날, 공항으로 가는 길, 차창에 쏟아지는 빗물

 

느린 화면, 담담한 대화와 한결같이 조용한 두 주인공의 표정, 우울하고 조금은 나른한 배경음악.

주전자에서 끓는 물이 피워올리는 뽀얀 수증기, 차우의 담배 연기...

영화는 느리고 조용하게 흐른다.

 

이영화에 자주 흐르는 음악 Yumeji's Theme는

[그녀에게]라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 곁들여지는 OST와 분위가 너무도 흡사했다.

 

롱테이크의 화면은 마냥 느리지만, 스토리 전개나 템포는 함축적이며 상큼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첨예한 영상미와 절묘한 생략의 훼이드아웃fadeout, 두 배우의 아름다운 호흡이 주는 밀도 높은 긴장감과 탄력성은

느린 화면과 단조로운 공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또한 시종일관 화면을 메우는 좁디좁은 공간은 이영화를 농밀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된다.

 

 

 

 

어느새 애틋한 사랑이 싹트고 아픈 사랑을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는 달라"라고 말하며

순결한 사랑을 이어가고... 그리고 끝내는 이별을 맞는다.

 

조심스럽고 수줍은 리첸, 소심한 차우는 서로를 절실히 사랑하지만 이별을 하고...

캄보디아로 간 차우는 앙코르와트의 어느 사원 석벽에 자기 사랑을 고백?하고 밀봉해 둔다.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나는 그 설정이 많이 어색했다.ㅋㅋ

 

 

 

 

영화속의 장만옥은 그 어느영화에서 보다 가장 아름다웠다지?

스물여섯벌이나 되는 치빠오를 바꿔입은 장만옥의 뒷태는 매우 매혹적이다.

허리로 부터 흘러내리는 엉덩이의 곡선이며... 와우~^^

 

양조위 또한 이영화로 깐느영화제에서(2000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양조위, [색.계]에서의 모습은 그 특유의 차분함을 바탕에 두고

냉철했으며, [중경삼림]에서는 보다 여유롭고 한결 가벼운듯 하더니

이 영화에서는  부드럽고 담담하고, 그의 바탕인 차분함으로 시종일관 농밀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 와우~^^

 

화양연화, 이영화는 스토리보다 두 배우의 연기와 영상미와 좁은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어떻게 스토리와 대입시켜 이끌어나가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가에 관점을 두어야 한다는 내 생각! ㅎ~

 

 

 

 

화양연화, 우리들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언제일까.

나는 이영화를 보는 내내 저토록 아름답게 가슴떨리게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 자체가

우리시대의 '화양연화'가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해봤다.

 

탐하는 것보다 지켜나가는 것,

흐트러뜨리는 것보다 가꾸어 가는 것.

잃는 아픔보다 잊지 않기 위해 영원히 갈무리 해두는 것.

이시대, 우리의 사랑법이 그러하다면 그것이 사랑에서의 '화양연화'가 아닐까...하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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