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Sceaux에도 눈이 왔어요

eunbee~ 2012. 2. 9. 19:00

 

 

춘천사는 내 동생, 권교장님^^,

며칠 전, 이곳 Sceaux에도 눈이 왔다우.

자고 일어나니 새하얀 눈이 정원 잔디위에 살포시 덮여있고 가느다란 눈은 아침까지도 살금살금 내리고 있었지.

지은이가 올 겨울엔 눈을 볼 수 없으려나 안달을 하더니 드디어 눈을 보게 됐네요.

 

 

누나가 자주 산책을 나가는 Parc de Sceaux~~. 눈에 익지요?

누나 블로그를 읽고 있으니 알고 있을 거야,

몇 해전 이곳 설경은 장관이었는데, 올해는 함박눈이 내려주질 않았으니 이런 풍경이었다우.

'권교장님'이 며칠 전에 나가서 산책했다던 춘천MBC곁의 어린이대공원 산책길과 닮은 점도 있지?

그곳에서 누나를 생각했다는 이메일을 읽으니 마음이 찡~하더군요.

 

 

누나가 오면 동해안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워 두었다니

벌써부터 기대와 즐거움으로 마음에 작은 물결이 인다우.ㅎ

코스도 좋아요.

춘천-속초-강릉(연수원에서 1박), 동해-삼척- 울진(1박), 불영계곡- 부석사- 춘천.

그 길위엔 권교장님이 근무하던 곳도 있고 울엄마의 고향도 있고 큰아버지집도 있네. 가고 싶던 곳들이에요.

함께 여행할 세월이 왔으니 좋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

이렇게 퇴직들을 해서 한가하게 여행하게 된 세월이 좋은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ㅋ

교단에 서 있을 때보다 우리의 나이가 많아졌다는 증거잖수?

그래도 좋다는 쪽으로 생각하며 남은 세월도 권교장님 말대로

'탄탄한 자세 밝은 마음을 유지하며' 살도록 해요.

 

 

 

지난 4일에 누나에게 보낸 이메일은 내가 잊었던 것도 기억해 낼 수 있었다우.

 

[ 누나, 오늘은 월남에 있을 적에 누나가 편지와 함께 보내준 십자가 생각이 납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항상 부적과 함께 왼쪽 상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마음의 위로가 되었었는데....

 

건강해. 나이 들 수록 탄탄한 자세, 밝은 마음을 유지해야 될 것 같아요. ]

 

파월장병 권교장님에게 내가 묵주인지 십자가였는지를 보냈던 기억이 이제서야 나는군.ㅋ

엄마가 우리를 두고 큰댁에 갔을 적에 우리둘이서 개천가 실버들나무에 매달려 놀던 생각도 난다우.

버들피리 만들다가 손가락을 베어 피가 흐르는 누나를 울면서 바라보던 기억도 새롭고...

얼음어는 겨울엔 냇가에 가서 앉은뱅이썰매를 함께 타던 추억도 있었지.

우린 어린날엔 친구였네요.ㅎㅎ

자라서는 내오빠 같은 동생이었다우.ㅋㅋ 늘 참견하고 보살피고...ㅎ

 

 

청렴하고 실력갖춘 교사로, 훌륭한 아빠와 가장으로, 평생을 올곧게 생활한

권교장님을 우리 형제들은 존경하지요. 아들은 의사로 키우고 따님은 박사로 키워낸

그 끈기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위치를 바르고 빛나게 닦으며 살아온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를 존경하지요.

 

 

권교장님을 보면서 누나는 늘 이런 생각하며 살았다우.

권교장처럼 꿈을 가지고 자녀를 키웠어야 하는 건데, 우리애들에게 튼튼한 활의 시위가 되어주지못한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미안한 엄마구나...라는 생각.

 

그제는 뤽상부르 오랑주리뮤지엄의 세잔느 특별전에 갔다우. 눈에 익은 정물화를 보면서

미술교사직을 그만두면서까지 자녀 교육에 열중했던 올케님의 그림작품들을 떠 올렸지요.

참으로 대단한 권교장님의 부부였습니다그려.

 

 

먼 타국에 와서 이방인의 위치로 살고 있는 조카들의 안부를 항상

살뜰히 챙기는 권교장님이 나이들어 새삼스레 고맙다우.

조카들 어릴 적에 어쩌다가 방학이 되어 다니러온 권교장님은 조카가 어디가 조금 아프다고 하기만하면

병원으로 데리고 가던 다정한 삼촌이었지요. 기억 나는가요? ^*^

 

 

그 뿐인가요. 먼곳으로 발령받아간 누나에게 추석명절에 엄마가 만든 송편이라며

그림을 그려서 편지로 보내주던 다정한 동생...친구같던 동생...

운동화 세탁해서 뽀얗게 말려주던 오라버니같던 동생...

권교장님은 내게 그런 동생이었지요.

 

 

저 달이 뜬 날은 권교장님의 음력 생일날이었지요. 우린 참 많이 나이를 먹었네요.ㅠ

 

이제는 이렇게 함께 늙어가며

여행계획 세워두고 누나 오기를 기다려 주는 동생, 하루하루 일과를 챙겨주는 동생,

늙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야 하는지 하나하나 안내하고 소상히 스케줄 엮어주는 동생.

권교장님은 지난 세월 동안 누나에게 자랑스런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의지하고 살게 해주는 좋은 보호자며 안내자며 친구가 되었다우.

 

나와 가까운 곳에서 늘 나를 챙기는 막내내외가 있어 내 삶이 풍요롭고 은혜롭고

행복했는데, 거기에 보태어져 권교장님마져 이젠 완전히 누나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있으니

내가 전생에 지어놓은 선업이 어마어마했나 보우.ㅋㅋ

 

내 블로그 단골손님인 막내 권교수님과 그의 아내 가문의 영광 인수씨는 이 포스트도 보게 될테니

이 공간을 빌어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인수씨~ 권교수님~ 들리지요? ㅎㅎ

 

 

 

권교장님,

누나는 오늘도 밝은 햇살 속에서 가벼운 발길을 옮기며

내 행복한 여러 여건에 감사하는 마음 가득 안고 Parc de Sceaux를 산책할 거라우.

햇살이 따스하네요.

몇 번의 이메일에 떼어먹은 답장을 이렇게 포스팅으로 대신해요.ㅎ

 

자랑스런 내 동생님들과 올케님들~

늘 건강하고 늘 평온하십시다요.^*^

아참! 경숙씨 이름도 불러줘야지.

옛날 우리가 이름 적어 호칭하며 편지쓰던 그 시절처럼..

 

춘천사는 경숙씨!!

항상 고마워요.

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내동생 권교장님을 부탁해요. *^_^*

전화마다에 경숙씨가 강조하는 '사랑해요 고모님~'이란 말과 맘처럼

'사랑해요 올케님~'이라고 전합니다. 순수파 경숙씨!

.

.

이제 이메일 답장글을 마쳐야 겠넹~

 

쿠바여행에서 내가 만난 '교수님'처럼 늙어가고 싶다고 하는 권교장님은

그 분보다 더욱 멋지고 멋지고 멋지답니다. 더 꼿꼿하고 여유롭게 나이들고 있으니 걱정마시길.ㅎ

우리, 항상 건강하도록 심신을 잘 다스려야함을 잊지말기로 해요.

안녕~

 

2012. 2. 9  누나가 파리에서, 사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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