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가을밤은 깊어갑니다.
나그네는 자정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뒤척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공양간 보살님의 아침공양 시간을 알리는 목탁소리에 잠을 깹니다.
이 절에는 큰스님이 출타를 하셨다고 저녁예불도 없고, 어느절에서나 반드시 새벽에 울리는
도량석 목탁소리도 없습니다. 엉터리 절 같으니라구...ㅋㅋ
무서리 내린 짚더미를 밟으며 공양간 옆으로 가서, 맑은 물 흐르는 감로수에 손을 씻고
입을 헹구어 내고 아침 공양을 합니다. 해도 뜰 생각을 않는 새벽 여섯 시에 말입니다. ㅎ~
공양을 마치고, 차가워진 몸을 녹이느라 간밤에 묵던 방으로 다시 들어가
따스한 온돌에 등을 지집니다. 어느새 해는 맞은편 산등성이를 비추고 있습니다.
하룻밤 인연맺은 사람들과 인사나누고,
연기 피어오르는 암자를 뒤로 하고 백담사 쪽으로 내려옵니다.
포카라에 가면 안나푸르나의 봉우리가 호수에 저렇게 비추려나? 엉뚱한 상상을 하며 물에 잠긴 붉은 봉우리를 오래도록 봅니다.
쌀랑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계곡을 내려옵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산기운이 몸과 마음을 맑힙니다.
새벽에 하얀 서리를 보고 가슴이 철렁 했지요.
가을이 너무 깊어지는 것 같아 조바심도 생겼지요.
암자를 떠날 때까지도 간밤에 내린 무서리가 마른풀 위에 앉아있더니 그새 모두 사라져 버렸네요.
밤새 깊은 계곡 산사를 밝히던 스무이틀 하현달은 청청한 가을하늘을 아직도 산책하고 있어요.
가을잎과 푸른하늘과 하현달이 함께 이루는 풍경은 한 편의 詩를 읊고 있습니다.
건너편 산자락에 아침해가 내려앉으니 온 산은 붉은 등불을 켠 것처럼
환하게 빛납니다.
백담사 근처에 이르면 계곡은 넓어지고...
하얀 돌들을 모아 탑을 쌓아둔 기도맺힌 마음들과 만납니다.
이제 해는 제법 떠올라 건너편 백담사 쪽은 완전히 햇볕 속에 잠겨 있네요.
백담사 경내에는 이미 멀리서 온 사람들로 수선스럽고...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니라] 글이 새겨진 한용운님의 조상 앞에서
님을 생각하고, 님의 시를 떠올리고, 그리고...가을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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