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이사하던 날

eunbee~ 2011. 8. 15. 07:28

 

 

집 떠난지 3년만에 다시 내집으로 돌아가려는 날

아들은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일기예보에는 중부지방엔 200mm의 강수량이 예고됐고,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단다.

ㅠㅠ~ 걱정이 태산이다. 빗속에서 고생해야되는 아들이 안쓰러워서...

 

아침 여섯시, 아들집을 나서는 길.

하늘은 비교적 맑고 바람은 시원하다. 다행이다. 노심초사 엄마는 다른 날로 연기하자 했었는데...

 

 

고속도로를 달린다.

와우~~푸른하늘에 흰구름에... 날씨 짱!! 그러니 기분은 더욱 더 짱 짱!

역시 착하게 살아야 돼. 하핫.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산너머 산...아름다운 능선...

 

 

바보엄마는 차창을 열고 찍으면 좋았을텐데...한참이나 머리가 안돌아 간다. 에구구~ㅠ

 

 

이삿짐 센터의 차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속리산 인터체인지에서 기다린다.

밖으로 나와 나무도 하늘도 공기도... 날씨에게 고마운 내마음도 디카에 담는다.

 

오면서 이삿짐차와 계속 휴대폰으로 연락 하는 걸 보고, 참 좋은 세상에 산다고 새삼...ㅋㅋ

 

 

오늘 우리 이사를 도울 네명의 청년들과 한명의 어여쁜 아줌마가 탄 이삿짐차랑 만났다.

꼬불거리는 지방도를 따라 속리산 쪽으로 간다.

2년동안 내짐을 부려놓았던 사돈댁을 향하여~~ㅋㅋ

 

 

며느님의 부모님들이 주말에 오시는 별장이다. 서울과 이곳에서 두집 살림 하시는 사돈들은

정말 정말 부지런하시다. 사돈마님은 천하제일 부지런쟁이에 음식솜씨의 대가!

 

 

 

방학을 맞은 친손녀들이 시골 정취속에서 행복한 방학을 보내고 있고...

 

 

방아깨비도 잡아서 보여주고...

 

 

작은 도마뱀?도 보여주네. 언니 동생이 서로 시샘하며 이것저것 보여주느라 바쁘게 종종거린다.

 

 

사돈마님은 차방을 이렇게 따로 마련해 두셨다.

산에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과 열매를 가져다가 귀한 차로 탄생시켜서 멋지게 마신다.

 

 

지난해에 만들어 갈무리해 두었던 구절초차를 내 오셨다.

뜨거운 물속에서 사알살 피어나는 구절초꽃잎이 아름답고 애잔하다.

향기가 머리를 맑힌다.

 

이곳에 와서 함께 살자 하신다. *^__*^

사돈끼리 친구하고, 여행 가고, 더러는 함께 지내기도 하는 것이 참으로 좋다는 생각을 하신단다.

사돈은 남이 아니고 서로의 부모이니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신다.

 

안사돈끼리 차를 마시며 온갖수다를 늘어놓는 새에, 2년동안 별채에서 잠자던 내짐보따리들이

이삿짐 운반차량에 모두 실렸나보다. 아들이 얼른 다시 길을 나서자고 한다.

 

 

고개넘어 꼬불거리며 오두막에 도착했다.

잠잠하다. 올 여름 오두막은 슬프도록 잠잠하다. 찻소리 나면 달려 나오던 강아지들이 아무도 없다.

그래도 하마나 뛰어오를 가을이를 그리며, 두리번 거린다.  기척이 있을리 없건만....

 

 

스페인 여행중에 눈여겨 봐둔 코르도바의 집들...., 나중에 세월오면 꽃심고 담쟁이넝쿨 올리며

나도 그렇게 살리라고...그 많은 날 꾸어오던 꿈을 이제는 접어야 하나보다.

아무도 내꿈을 이루는데 협조하지 않는다. 방해가 될 뿐....ㅠㅠ

고향이란 마냥 좋기만한 곳이 아니다.

 

산적같이 튼튼하고 우직한 남정네가 곁에 있다면 강원도 산골 산그늘 아래에서

나무랑 꽃이랑 산새들이랑 동무하며 살아보고 싶은 생각도 참으로 많이 했었는데....

꽃나무 울타리 사방으로 둘러놓고, 뻐꾸기 소리 들으며 살고픈 소박한 꿈도 이렇게 접어야 하는구나.

 

 

오두막에 펼쳐놓았던 내 그림도구들이랑 책들을 주섬주섬 싣고

오두막을 나선다.

언제나 내앞에서 먼저 길나서던 가을이는 보이지 않는다. 나를 따라오고 싶어 그리도 애쓰더니..

앞을 봐도..... 가을이의 환영만이 눈물속에 어른거리고

 

 

뒤돌아 봐도....가을이의 그많던 가족들의 환영이 눈물속에 어른거릴 뿐.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과수원 어느곳에 묻혀있을 가을이를 향해 미안함과 그리움과 고마움을 담아 불러본다.

가을아~~ 잘있어.

뉘야~

콩아~

까망아~

사랑아~

미안하고 미안하고...그립고 그립다.

그들은 얼마나 나를 사랑했던가. 그 순수하고 솔직하고 간절한 사랑.

다시 또 어느 누구에게서 그러한 사랑을 느껴볼 수 있으려나. 아마도 없을 게다. 다시는!!

 

 

눈물 훔치며 가을이를...그들을..가슴에 안는다.

산마루의 구름은 무심쿠나.

내작은 꿈을 모르는 내고향 사람들처럼 무심쿠나.

 

 

뻐꾸기소리도, 밤꽃향기도, 아슴아슴 피어오르는 봄날의 살구꽃도...

마음속 저 깊이 접어 둔다.

 

 

오는 길에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서는데, 장대같은 빗줄기가 엇갈린 일기예보 자존심 세우듯이

세차게 쏟아 붓는다. 이천을 지나며 비는 그치고, 내집 동네는 한방울의 비도 보이지 않는다.

 

 

하루종일 많은 비가 예고 되었던 이사하는 날,

해도 보고 푸른 하늘도 감상하며, 또한 줄기찬 비도 만나고...그러나 비한방울 적시지 않고 이사를 마쳤다.

이삿짐 센터 소장님에게 "오늘 우리는 럭키였어요? 해피였어요?" 했더니

소장님 말씀 " 그 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요? 해피~~ 럭키~~ 개이름이잖아요?"

ㅎㅎㅎㅎㅎ~

 

인생살이는 그렇고 그렇고 그렇고...

나는 이사를 잘 했다. 자상하고 너그럽고 여유있는 아들덕분에... 

이렇게 내 세월은 채워지고...흘러간다.

산다는 건, 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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