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가을이를 가슴에 묻고..

eunbee~ 2011. 9. 17. 03:13

 

밤이 깊었습니다.

9월도 깊어갑니다.

풀벌레 우는 소리는 아파트 높은층까지 들려옵니다.

달은 기울고, 슬프게 사위어가는 하순달 옆을 지키는 별 하나 애잔합니다.

 

오늘도 밤은 외롭게 펼쳐졌습니다.

집안의 전등을 모두 끄고 작은 스탠드하나 곁에 두었습니다.

달을...별을...풀벌레 울음을 좀더 가까이 두기 위해....

 

이처럼 달빛어린 밤에는 가을이랑 사랑나누며 살던 때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그리움은 사무치고, 그 사무치는 사랑 때문에, 며칠새 밤마다 가슴이 저리도록 웁니다.

 

한밤중 자다가 일어나서 밖에 나가 가을이네를 쓰다듬어 주고 들어오던 그날들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그토록 애달픈 사랑을 나누던 가을이네가 이젠 이세상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 믿기지 않는 현실이 가져오는 절망과 안타까움과 그리움은 세상사람 아무도 짐작할 수 없을 겁니다.

 

어이타가 우리 가을이네가 그렇게 모두 가버렸을까요.

 

느껴지는 기운이라는 것이 있답니다.

내가 지난 번 오두막에 와서 느낀 슬픈 기운들은 아직도 내마음 속을 휘돌고 있습니다.

가을이를 사랑하던 나그네개(이웃집 수캐)가 나를 알아보고 내곁에 다가오는 모습은 마치 비루먹은 하이에나가

움츠리며 두려움과 슬픔에 싸여 한껏 기가 죽어서 슬금슬금 오는 그런 모습이었지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콩이닮은 검은 강아지도 생기가 없고 사람을 피하며 매우 슬프고 기죽은 모습이었구요.

강아지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죽어가고 하니, 그런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겠지요.

나를 슬픈 눈으로나마 반기고 내곁으로 오던 나그네개의 모습은 지금도 나를 슬프게 합니다.

우리 가을이도 마지막에는 저런 모습으로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워지지않습니다.

 

나랑 함께 살던 그 짧은 세월일망정, 강아지들의 검은 털에서는 윤기가 흘러 벨벳 같았으며

태어나는 애기강아지들은 오동통 애기돼지를 닮았었습니다.

가을이랑 뉘는 출타했던 내가 돌아오면 좋아서 과수원 한바퀴를 노루처럼 겅중대며 퍼레이드를 벌이던가

온 동네를 줄달음치고 신이나서 한바탕 시위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모습을 보는 나도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광경이었는지....

 

사랑을 주던 사람은 기다려도 돌아오지않고, 보살피던 사람(내남동생)은 자기직업에 매달리느라 바빠서

잘 돌볼 새도 없었을테니, 풀숲에서 빈대에 뜯기고, 피를 빨아먹는 이상스런 해충들이 매달려 물어댔겠지요.

동생은 늘 해충들을 강아지들 몸에서 떼어주고, 먹이 챙겨 주고, 돌봤거든요. 그러나 아마도 바빠서 소홀했었나 봅니다.

그러니 하나 둘 사라져버리고, 죽어가고...

결국은 그 활기롭고 사랑많던 가을이도 자기보금자리에서 영원히 눈을 감게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그런일이 일어나도록 보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지 않습니다.

 

남들은 상상을 하지 못하는 상실감과 죄책감과 슬픔과 그리움으로

이제는 고향도 싫어졌고, 오두막도 낯설어졌습니다.

오두막에서 가을이네랑 지내던 날들은 늘 마음이 평온했고 흘러가는 시간들은 아름다웠지요.

오두막과 과수원에 피어나는 꽃들이며, 꽃지고 나면 오롱조롱 영그는 열매들을 보며 느끼던 자연이 주는 충만함과

달빛 교교한 밤의 적막,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햇살, 내 기척만 느끼면 우루루 몰려와 뛰어오르던 강아지들....

그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고 그리운데.... 믿기지 않지만, 이제는 모두...사라져 버렸습니다.

가을이가 없는 오두막은 이제 영영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두막을 타인에게 양도하려고 내놓았습니다.

가을이가 없고, 내가 꿈꾸던 꼬르도바의 작은 집도 가꿀 수 없으니, 오두막과의 인연도 이것이 모두인가봅니다.

내가 오두막을 마련해둔지 2-3년 후부터 떠돌이 가을이가 스스로 들어와 터잡고 산지 8년의 세월이 흘렀군요.

그동안 가을이는 과수원을 지키고 돌보는 남동생이 기른 것이지요.

함께한 세월로 따지자면 남동생이 가을이랑 오랜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붙여주고 이름을 불러준 것이 내가 그곳으로 가게 된 3년 전 가을부터였답니다.

 

가을이를 잘 보살피지 못해, 그렇게 하늘나라로 보내버린 나는 그 오두막에서 살 자격도 살 마음도 없습니다.

가을이네가 사라져 버린 오두막은 슬픔과 이별과 쓸쓸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습니다.

생기롭고 아름답던 내 오두막이 아닙니다.

나의 오두막은 가을이와의 세월과 함께 피어났었고, 가을이랑 함께 떠나보냅니다.

 

그러나,

짧지만 아름답던 오두막의 나날들과 가을이네와의 사랑은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어느새 달은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별도 함께 숨었습니다.

내 가슴 속에 있는 가을이도 더러는 생각밖에서 쉬다가 때때로 달빛처럼 젖어들어

몹시도 그리웁고 서럽게 합니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마음에 안고, 또 그렇게 세월을 살아야 겠지요.

인연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생각대로 마음대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바람같은 흐름이 아닐까요.

가을이의 이승에서의 삶에 내가 있었고, 내 삶에 가을이가 있었던 인연을 아름답게 추억하렵니다.

 

내 블로그의 천번 째의 포스팅 '가을이에게 보내는 내 사랑'으로 채웁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가을이를 가슴 속 더 깊은 곳에 묻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잠자는 가을이가 너무 자주 깨어나지 말았으면..... 조금은 덜 슬프겠습니다.

 

 

 

가을이(갈색), 사랑이 두 녀석, 그리고 뉘, 벨벳같은 털을 가졌던 어여쁜 아가씨 뉘~ 

이제는 모두 가고 없는... 그들이 보고 싶습니다.

함께 살던 짧았던 날들이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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