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정원,공원

로댕미술관 정원산책

eunbee~ 2011. 5. 23. 12:15

 

 

작은애가 로댕미술관에 갈 일이 있다기에 나도 따라 나섰습니다.

파리의 아티스트로 등록된 작은애는 프리패스~, 나는 언제나 1유로짜리 인생~ㅋㅋ

정원 입장은 단돈 1유로. ^^

 

Rodin은 1840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1917년에 사망한, 현대조각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조각가입니다.

 

 

파리의 곳곳에는 장미의 계절이 되어, 온갖 빛깔의 장미들이 가뭄이거나 말거나 만발입니다.ㅎ~

로댕미술관의 작은 장미원에도 장미가 가뭄속에서 시름겹게 웃고 있더군요.

 

 

담 넘어로는 앵발리드의 황금돔과 멀리 에펠탑이 보이네요.

 

 

정원 앞 마당에는 갈 때마다 다른 작품이 놓여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알루미늄 합성 재질의 작품은, 스위스 출신의 작품으로 세 덩어리가 한작품을 이룬 것이 전시되었더군요.

 

 

 

[지옥의 문] 이 조그맣게 보이지요?

 

1880년 프랑스 정부는 새로 건립하는 미술관의 출입문을 로댕에게 의뢰하게 되는데

로댕은 단테를 매우 좋아해서, 늘 윗주머니 속에 단테의 신곡을 넣고 다녔답니다.

그는 그렇게 좋아하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의뢰받은 출입문에 조각할 주제로 삼았습니다.

 

 

[지옥의 문]이라는 출입문 속에는 186개의 작은 조각상들을 얕게 도드라진 양각으로 제작하였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독립상으로 제작되기도 했지요.

그 밖에 [지옥의 문]에 있는 조각품의 유명한 독립상으로는 [우골리노와 아이들], [웅크린 여인][ 세 망령] 등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은 로뎅 자신이라는 설이 있으나

단테라는 이야기가 더 근거있고 설득력있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누드의 남성이 바위에 쪼그리듯 걸터 앉아, 지옥의 문 위 중앙에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지옥의 광경을 내려다 보며

온갖 군상들의 고뇌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남자로 표현. 긴장된 전신 근육은 격렬하고 비통한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냈으며

끝없이 이어질 인간의 번민하는 모습을 강하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지옥의 문 꼭대기에 올려지듯 조각된[ 세 망령]은 아담의 모습으로, 방향을 달리한 같은 모습의 아담이라고 합니다.

세 망령 중 왼쪽의 독립된 조각의 이름은 [아담]이지요. 이날은 정원 연못가에 [아담]이있었습니다.

아래 사진...

 

 

지옥의 문에 조각된 [우골리노와 아이들], 그리고 뒤쪽 조각품은 [아담]

 

[우골리노와 아이들] 역시 단테의 신곡 중 32-33곡의 내용을 조각한 것이지요. 우골리노가 감옥에서 그의 아들, 손자와 함께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아이들의 시신을 먹고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 남긴 말이

"고뇌에 지지 않던 나도 배고픔에 지고 말았다."랍니다. 기가 막혀~. 지옥으로 보내진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우골리노에 대한 이야기가 얽힌 피사의 '굶주림의 감옥'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싸움의 피의 이야기지요.

 

 

로뎅미술관의 정원을 몇 번씩이나 갔어도, [이브]를 볼 수 없었는데

이날은 카페테리아 부근 후미진 곳에서 발견했다는....ㅋㅋ

미술관 내부에 전시되었던 것을 언제부터인가 정원으로 옮겼습니다.

 

 

[발자크]는 로댕이 남긴 마지막 기념상.

 

프랑스 문학가 협회에서 로뎅에게 발자크의 기념상을 의뢰하였지요.

발자크를 매우 숭배했던 로댕은 세상을 떠난 발자크의 생전모습을 알기위해 온갖노력을 기우려

체격 골격 특징 등을 조사하였답니다. 그러느라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어 수 년이 흘렀답니다.

프랑스 문학가 협회는 의뢰했던 것을 취소하게 되고, 그럼에도 로댕은 발자크의 외적 진실에서 더 나아가

내적 진실까지 추구하여 발자크의 기념상을 완성했답니다. 그것이 1897년이었습니다.

이듬해에 살롱에 출품하자 사람들은 조소를 보냈답니다. 두터운 망토로 몸을 둘러싸고 생각에 골몰하는 얼굴은

병적이고 추하게 보이며, 표면도 거칠고 섬세하지 못하다고 관람자들은  비난을 쏟아냈다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한시대의 거장이 도달한 인간적인 관록을 포함하여, 양적인 중압감과 무게감이 두드러지는

로댕의 인물상 중에 최고의 조각품이라고 합니다.

 

 

[빅토르 위고] 의 기념상

이 작품 또한 의뢰자의 의도대로 만들어 지지않아 퇴짜를 맞았다지요.

위고의 입상을 원했으나, 로뎅은 비스듬히 누운 누드의 위고를 조각했습니다.

위고를 매우 존경했던 로댕은 가장 위고다운 모습으로 조각했겠지요. 로댕은 보여지는 외형만으로

그 대상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작품에 나타내려는 의지로 영혼과 육체를 함께 담아내는

창작에 온 힘을 기우리던 조각가였으니까요.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의 표본이라고 일컫는 [깔레의 시민]

너무도 감동적인 깔레의 시민에 얽힌 이야기는 모두 잘 알고 있죠?

새겨 들을수록 눈물 날 지경인 깔레의 훌륭한 지도층 사람들의 자기희생에 의한 시민을 구한 이야기.

 

 

그 이야기는 생략하고, 오늘 이포스팅에서 하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과 선생님이 깔레의 시민 작품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깔레의 시민에 얽힌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 주었지요.

 

 

이야기를 마치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조각상에 새겨진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서

그들과 똑같은 포즈로 서 있어 보라 했습니다. 포즈만이 아니라 그때의 그들이 되어 심정까지 담아서...

 

 

학생들은 진지하게 몇분동안이나 꼼짝않고 그렇게 있었습니다.

이런 수업을 하는 교사나,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학생이나...나를 크게 감동케했습니다.

바로 이런 교육을 이렇게 해야 됩니다. 이들은 미술 공부만 한 것이 아니지요.

역사, 도덕, 연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그들의 정신... 한 시간의 수업으로 열가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방법과 기술. 교단에 있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감동적인 교수-학습 현장이었습니다.

 

나는 오나가나 감동도 잘해~ 그것도 큰 병이야. 하하

 

 

차를 마시고...

 

 

파리지엔느를 훔쳐보고...

 

 

내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프랑스 남자'의 모델을 담아 두고...

 

 

내집 현관에도 저런 등을 달았으면...꿈도 꾸면서,

로댕미술관의 정원 산책을 마쳤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