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옵니다.
가을비는 한결 조용합니다.
여름과 가을은 갈림길에서
이미 인사를 마쳤습니다.
마로니에 잎이 가을을 재촉했기 때문입니다.
울울창창한 모습으로 의연히 남아있는 초록들이
아직은 싱그럽기도 합니다.
그것은,
여름날의 잔영을 애써 드리워 놓으려는
안간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로니에 잎이 지면
서러움이 가슴에 차 오릅니다.
여름방학을 딸들과 함께 파리에서 지내다가
마로니에 잎이 지기 시작하면 나는 떠나야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우린 늘 그랬답니다.
기억은 참으로 질기네요.
그날들의 쓸쓸함이 서러움으로 박혀
지금도 마로니에 잎이 지면 서러워지니까요.
마롱은 굵어졌습니다.
봄날의 그 아름다운 샹들리에들이, 이렇게 영글어가니
마로니에꽃의 일장춘몽이 부풀어 가고 있군요.
마로니에 잎이 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딸들의 곁을 떠나지않아도 되는 세월에 와 있음에도
잎이지면...
바람에 서걱이는 마로니에 잎을 보면...
서러워지는 건, 매한가지입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