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체류증을 받고

eunbee~ 2010. 9. 2. 00:46

내아드님은,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오만가지 서류를 갖추어 오라는,

내 비자신청에 관한 모든 것을 명쾌히 해결해서 방문비자를 받아냈다.

작년에도 받아줬는데, 이 게으른 엄마가 파리에 와서 그 힘들게 받아낸 방문비자를 사장시켰었다.

아들이 하는 말이, 또 신청하면 되지뭐....

그 말 한마디로 나를 위안시키는 아들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속깊은 아들이 고맙고 믿음직했다.

 

                                           1796년에 새로 건축 된 마레지구에 있는 생폴 생루이 성당의 내부 정면.  

 

이번에는 내가 파리에 있는 중인데도, 미리미리 엄마의 한국입국날짜에 맞춰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마련해 두고

엄마 패스포트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이러한 아들이 내 인생을 얼마나 활기있게 해 주는지...

엄마가 원하든 원치않든, 엄마에게 필요할 만한 것은 미리미리 해결할 뿐만아니라

용기를 주고, 경제적 지원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해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엄마가 침체되어서 살지 않도록....

 

지난 여름 입국 때도 엄마가 심심할까봐, 제주도 올레길을 가지않겠느냐고, 보름쯤 갔다 오라며

함께 갈 사람이 없으면 엄마친구 중에 시간있는 친구랑 가면, 친구분 경비도 아들이 준비해 드린다면서....

참으로 고마운 마음쓰임이다.

 

 

아들이 하는 말, 엄마랑 나는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아 채리지?

그말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말이다.

그보다 더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달리 또 있겠는가. 

 

 

이렇게 세월이 가고 아들이 나이들고 내가 늙어갈 수록, 아들은 연인처럼 보호자처럼 나를 챙기고 돌본다.

 

                                         

 

방문비자를 받아서, 서울을 떠나 파리로 왔다.

서울을 떠나는 날도 아들이

한 달 이내에 체류증을 받으라며, 잊지말고 파리 도착하자마자 해당서류를 작성해서 OFII로 보내고,

만일 체류증 받기전에 다른나라로 여행하면 서류보낸 증명서라도 챙겨서 가도록 당부를 한다.

쉥겐법에 의해, 유럽연합국이라해도 주의해서 체류날짜를 계산하지않으면 다시 비자받아야 한다고....

아들의 당부대로 큰딸이 서류를 챙겨서 우편으로 보냈더니, 8월 25일날 OFII로 오라는 편지가 왔다.

 

 

프랑스는 모든 공적인 일, 하물며 은행일까지 모두 편지로 주고 받는다.

작은따님은 이나라는 편지 주고 받다가 죽을 나라야, 라며  그 어떤 중요한 서류라도-수표까지- 우체국으로

들고 간다. 아예 우표를 사다두고 봉투에 붙여 우체통에 넣는 방법으로 해결한다.

엄마, 이거 우체통에 좀 넣어줘. 하면, 나는 이렇게 중요한 서류나 수표가 도중에 어디로 날아가 버리면 어쩌나

발발떨며...안달하며...조바심하며...우체통에 집어 넣으면서, 잘 가기를 또 몇번 씩 기도한다. 푸하하하. 내가 스몰에이형의 대표주자!!

 

 

그들과 약속된 8월 25일,OFII에 가서 간단한 건강검진을 하고, 간단한 면담을 하고

체류증을 패스포트 방문비자 옆페이지에 딱 붙이고-노란 스티커에 도장을 꽉 눌러 찍어서 붙여준다,

방문비자도 작년에는 3개월짜리 주면서, 프랑스에 가서 3개월 이내에 체류증 신청하라 하더니, 시스템이 바뀌어서

올해는 1년짜리 방문비자 주면서, 1개월이내에 노랑딱지 받도록 하란다. 그러나 편지로 주고 받는 이나라, 한 달만에 끝내지 못한다.

나는 입국 후 35일만에 받았다.  입국 후 30일 이내라고 하더니, 자기들의 일처리는 그 모양.-

 

 

큰따님이랑 체류증 받은 것을 축하 하는 의미로 카페에 가서 멋진 차를 마시고, 큰따님이랑 헤어졌다.

OPII가 바스티유 옆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집이 가까운 큰따님은 집으로 가고

나는 메트로를 타기 위해 시청쪽으로 걸어 갔다.

- 맹~한 엄마, 나중에 알고 보니 체류증 받을때 서류에 첨부하는 인지대금이 무려 350유로였다고라?

  그래도 내큰따님 그런 것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이 자기가 알아서 모두 처리했더라구..에궁~

  작은따님 같으면 열번은 생색을 냈을텐데....하하 ^*^   체류증 발급하면서, 이나라 돈 벌고 있네?  뭐~야? -

 

 

걷다보니 성당이 보인다. 반갑다.

성당을 만나니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Eglise St.Paul St.Louis 생폴 생루이 성당~

 

 

 

성당에 들어서니, 이름난 성당답게 역시 아름답다. 

 '슬픈 성모님' 앞에 촛불을 밝혔다.

나를 이런 위치에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기도를  올린다.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녀, 그리고 내 친지들.... 내 인생은 얼마나 은혜로운가.

 

                                      조개껍데기로 된 성수그릇. 빅토르 위고가 기증했단다.

 

우리 아들에게 체류증 사진을 찍어 이메일에 '체류증 꼬라지'^*^라는 제목으로 보냈더니,

"이 체류증을 받기 위해 목숨걸고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마시길..."

이라는 답멜이 왔다. 아들은 항상 나를 이렇게 일깨우기도 하고, 채근하기도 하며,

엄마는 아직 노인이 아니야 하면서 용기를 주고 활기있게 생활하기를 부추기기도 한다.

프랑스어를 배우라며 알파벳 발음을 적어 주기도 하고,  스페인어를 배우라고 권하기도 한다.

 

한달 전에도, 엄마는 간단한 일상용어는 조금만 하면 될텐데..라며 독려하는 아들의 말을 뒤로하고

단 한마디도 안되는 파리로 날아왔다. ㅠㅠ

언제나 어떤일이 있거나 게으른 엄마에게 용기를 주는 내아드님~

 

 

고된 인생의 한가닥 꿈을 위해 남의 땅에 가서 살고픈 사람들의 체류증에 서려있는 슬픈 현실..

체류증을 받기위해 목숨을 걸어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일깨워 주는

아들의 답메일을 읽고, 가슴이 싸~해왔다.

내가 파리에 살면서, 중국조선족들의 숨은 이야기, 뒷이야기, 프랑스에 와서 사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체류증으로 인한 고달픔이 얼마나 큰지 나는 잘 안다.

그들을 생각하며, 또한 아들의 말을 되새기며,

원하면 쉽게 해결되고 이루어지는 내 현주소를 한없이 고마워 했다.

 

고마운만큼 잘 살아야 할텐데....

 

 

                                                La Vierge del Douleur '슬픔의 마리아'라는 이름의 성모상.

                                               르네상스시대, 제르맹 피롱Germain Pilon 1528-1590 의 작품

 

 

 

고맙습니다. 내 인생이여~

내아들 딸들이 있음에 행운을 손에 쥐고 사는 내 삶!!

고맙습니다. 아드님, 따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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