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은비 개학 첫날

eunbee~ 2010. 9. 3. 18:22

은비가 오늘 개학을 합니다.

은비는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더니, 예쁜 소녀의 몸매를 드러내는 타월로 몸을 감고

'이렇게 학교 가는 일이 싫은 줄은 몰랐어. 학교 가는 일은 정말 싫은 일이야' 하면서

방안을 어슬렁거립니다.

 

은비는 밖에 나가는 일도 싫어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싫어하고

누군가의 말을 경직되게 앉아서 오래도록 듣는 일도 싫어하지요.

그러니 학교가 싫은가봐요.

바보같은 남자애들은 너무 시끄럽고 한심스런 장난을 해서 짜증이 날 지경이라네요. ㅎㅎㅎ

열두살 생일을 지난 달에 보낸 은비.

그러나 중학교 2학년이 됩니다.

프랑스는 초등학교가 5년제이니까요.

 

                                                                Port-Blanc에서 은비가 찍은 바다, 하늘.

 

 

은비는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부모에게도...

갓난아기 때를 지나서, 너댓 살 때부터 그랬지요. 그리고 투정이나 칭얼거린다거나

어린애들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전혀 하지않았지요.

은비는 주위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피곤하게 하는 아이가 아니었어요.

혼자 잘 놀고, 혼자 잘 해결하고...지금도 끼니를 먹는 일도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는 때가 많아요.

꼭 필요하면, 그 때 요구합니다.'할머니~ 나 이거 해 줘.'라구요. 얼마나 주위사람을 편하게 하는지....

 

머리좋고 솜씨좋고 창의력 기가막히고

어깨너머로 배우는 듯 학습해도 무엇이든 이해하고 잘 따라가는 은비가

학교 생활을 재미없어하는 것은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교육현장에서 35년을 살아온 나도 모르겠네요.

남의 아이라면 그 문제를 잘 짚어낼 수 있었을 테죠?

내 아이는 잘 안보이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조건적인 사랑때문에 판단력이 아예 작용하지않는 걸까요.

 

은비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은비네 방에서 바라다 보입니다.

저 학교 교문앞은 이미 이틀 전부터 떠들썩했답니다.

개학을 한 학교는 어린이들의 맑은 소리들로 생기가 넘칩니다.

은비가 오늘 학교에 가서, 저 철없고 생각없는 아이들처럼 떠들고 신나게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은비가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가 뜸해진 우리집은 조금은 고요롭겠지요.

가기싫다는 학교로 가는 은비의 뒷모습을 생각만해도 나는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가기싫다고 말은 해도, 또 그것들에 적응하며 지내는 은비를 믿습니다.

이렇게 할머니는 손녀를 가슴에 품기만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잘 보이질 않나 봅니다.

은비의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라고 믿으면서, 수재들을 공교육에 맡기지않던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ㅎㅎㅎㅎㅎ~ 이렇게 내 아이는 수재인데, 공교육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문제야, 라며

나도 역시 핑계와 위안으로, 은비의 첫 개학날을 맞고 있습니다.

 

오늘, 은비는 오후 1시에 학교에 가서 반편성을 하고 새담임을 만나고 5학년(중 2. 중 3은 4학년이라고 함)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온답니다.

좋은 담임을 만나고, 좋은 학과선생님들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난 학년에 만났던 그 개구장이 애들, 모든 교사들이 문제학급으로 낙인 찍도록 만든 그 녀석들과

다시 만나지 않게 되기를 더욱 더욱 기도합니다. 어리석은 부모는 모두 이런 기도를 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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