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세월...기억...

eunbee~ 2010. 6. 22. 16:23

우리네 계산법으로 헤아린 나이 일곱살 적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지요.

엄마 손잡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강나루에 매어놓은 작은 배를 타고, 강건너 마을로 피난을 갔어요.

 

그 마을에서 피난을 했다는데....

일곱살 어린 소녀의 기억속에는

새벽에 일어나 감나무 아래에 떨어진 땡감을 줍던 일,

인민군이 총부리를 들이대며 우리엄마에게 귀한 것을 내 놓으라고 무섭게 굴던 일,

비행기 소리가 나면 마구 달려서

집 안으로 뛰어들며 엉엉 울던 일,

그리고 귀한 것을 빼앗긴 엄마가 그것을 되찾아 본다고

인민군들이 있는 아랫마을로 가고

밤이 깊어 부엉이는 우는데, 오지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오돌오돌 떨던 기억.

보국대로 차출당한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던 일곱살 꼬맹이.

 

피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마당 한가득 피어있던 꽃들...

봉숭아 채송화, 이름 모를 노란꽃...

마당에 들어선 소녀는 꽃들과 햇빛이 너무 눈부셔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눈을 찡그리게 된답니다.

 

60년 전의 아련하고 어렴풋한 기억입니다.

며칠 후면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60년 째 되는 날.

 

그 소녀가 커서 첫봉급을 탄 돈으로 책을 샀는데

페렌바크가 쓴 [한국전쟁] 이라는 두툼한 책 한 권과

세 권으로 된 매우 두툼한 [세익스피어 전집]

그 책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은비메메.

 

엄마손잡고 피난가던 소녀가 자라서

처음 제번돈으로 산 책이 [한국전쟁]!!!

왜 그랬을까.

 

 사진은 곰아저씨polarbear께 얻어 온 것이랍니다.폴라베어 클릭하면 그방으로 직행!!^&^

아홉살 많은 내언니 세대가 사진속의 모습과 꼭 같아요.ㅎㅎ

 

 

시간은

다가오는 것일까

흘러가 버리는 것일까.

 

전쟁의 기억도

이제는 아슴아슴 전설같이 사라져 가려하고

여름 한 낮 땡볕속에서

눈시리게 피어있던 고향집 마당 흐드러진 꽃들의 빛바랜 기억도

전쟁 이야기만큼이나 아스라해져 가는데....

 

세월은,

기억은,

무엇으로 남겨지고, 어디로 사라져 가는 걸까요.

어디서 무엇으로 영글어 가고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그렇게 6. 25 세대는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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