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년만의 폭설이라는 눈이 쌓였다가 그 눈이 얼고
언 눈은 다시 녹아내려 갯벌처럼 질척거리는
오두막엘 갔습니다.
석 달동안을 만날 수 없었던 보고 싶은 강아지들과 만날 생각으로
마음은 조급하고 보고픔은 한껏 부풀어 운전하는 내 오른발은
가속기에 힘을 자꾸만 싣게 되더군요.
오두막 근처 푸줏간에서 강아지들에게 선물할 고기를 한덩이 사서
적당하게 썰어 적당하게 익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푸줏간 아주머니가 삶은 고기를 푸짐하게 들고 나오는데, 김이 무럭무럭 올라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트렁크에서 일장갑을 꺼내어 손에 꼈습니다. 강아지들을 만나면 쓰다듬어 줘야하니까요.
오두막 철대문을 들어섰습니다.
오두막 입구는 갯벌을 방불케할 만큼 질척거리고 발이 푹푹빠졌습니다.
대문을 들어서자 맨처음으로 나를 반기는 뉘.
겁많은 뉘는 컹컹 두어번 짖더니 나를 알아보고는 달려들어 뛰어오르며 반가워합니다.
어느새 뉘와 나의 기척에 강아지들이 모두 뛰어나왔습니다.
가을이는 울더군요.
낑~낑~하는 소리는 우는 소리이거나 응석을 부리는 소리지요.
멍멍 짖지않고 끄~응 끙거리며 반가워서 목이 메여오는 소리를 냈습니다.
콩이도 뛰어오르고 까망이도 뛰어오르고, 마실 와 있던 나그네도 꼬리흔들며 반깁니다.
진흙에 범벅이 된 내 옷은 갯벌을 뒹군 사람처럼 엉망입니다.
마루위에 김이 나는 삶은 고기를 펼쳐놓았습니다.
그 맛있어 보이는 고기를 먹을 생각은 하지않고 모두들 나에게 뛰어오르느라 정신이없습니다.
강아지들을 골고루 쓰다듬어 줍니다.
서로 내곁 가까이에서 손길을 느끼려고 머리를 들이밀며 꼬리를 흔듭니다.
내 손은 바쁩니다. 이 애는 등을 쓰다듬어주고 한손으론 저애의 머리를 쓰다듬고...
한참이나 그렇게 서로 머리를 디밀고 있더니, 마루위의 먹이를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가을이는 내 얼굴까지 뛰어올라 얼굴을 핥고 드디어 내입술까지 핥았습니다.
앞발을 내 가슴에 얹고 수없이 혀를 내밉니다.
반갑고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겠나봅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의 시간이 지나, 이틀밤을 그 애들과 오두막에서 지냈습니다.
첫날엔 밤에 비가 내려서 모두 자기집으로 들어가 조용히 잤습니다.
둘째날엔 초저녁부터 비가 오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다가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 깨어나보니
밤 열두시가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초저녁에 내리던 비는 그치고 구름에 가린 열사흘 달빛은 오두막을
훤하게 밝혀주어, 하얀 빛으로 온 과수원과 오두막이 밝아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강아지들이 모두 마루로 모였습니다.
장갑을 끼고 강아지들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모두들 서로 머리를 들이밀며 쓰다듬는 내 손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씁니다.
가을이가 제일 애착이 심하게 뛰어오르고 끄~응 끙 응석을 부립니다.
그동안 얼마나 그리웠으면 저리도 좋아할까 하는 마음에 미안함과 애처러움이 서립니다.
한시간 쯤을 그렇게 강아지들을 쓰다듬어주며 이야기도 하고 잠자리도 보살펴주고 방에 들어왔습니다.
방 창문으로 내다보니, 가을이는 마루에 앉아 내가 들어간 안마루쪽을 하염없이 보고 앉아있습니다.
다시 아침,
오늘은 서울로 가야합니다.
차에 짐을 싣고 강아지들 잠자리를 다시 점검하고, 먹이와 물을 챙겨주고
오두막 대문밖에 새워둔 차 앞으로 갑니다.
가을이가 따라 나오며 자꾸만 내 앞에 눕습니다.
가지말라는 투정 같습니다.
나는 앉아서 가을이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다시 갔다 올테니 애들하고 잘 놀고 집 잘보고
지금처럼 통통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라고....
대문밖으로 나오니, 모두들 따라 나옵니다. 모두 들어가라해도 내 주위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가을이는 대문밖에 새워둔 차에 겅중 뛰어올라보더니, 내 앞에 와서 다시 눕습니다.
쓰다듬어주며 일으켜 세웠습니다. 뻗대고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꾸 쓰다듬으며 일어나라고 했더니 겨우 일어났습니다.
내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며 어서 들어오라 손짓하니 따라 들어오기에,
밖으로 나와서 문을 닫았습니다.
문안에서 가을이가 너무너무 쓸쓸하고 원망스런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있습니다.
이렇게 짧게 만나고 갈거면 오지나 말것을 참으로 못할 짓을 하고 가는구나 하며 차에 올라
차창을 열고 가을이에게 말했습니다. 가을아, 빨리 갔다가 올게. 건강하게 잘 있어.
그렇게 우리의 짧디짧은 만남의 시간은 꿈속 일 같이 지나가버리고
다시 석 달동안의 이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가을이가 낳은 다섯마리중 남아있던 쌍둥이, 사랑이 두녀석은 누구에겐가 입양을 갔고
가을이 딸 까망이가 낳은 네마리의 애기들이 깨갱거리며 오두막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안타깝고 슬픈건 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은 가을이와 내 사랑입니다.
어제는 아들네 강아지 겨울이가 내곁에서 잠들었고
다음 주에는 은비네 고양이 까비가 내 곁에서 잠들겠지만
가을이와 내 사랑만은 못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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