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이 때는 來日에 살고
어느 나이가 되면 과거에 산다고 하더니...
나는 무언가를 보면, 기억의 저편에서 빙긋이 미소짓고 있는 과거들이 하늘하늘 바람타고 내려온다.
어떤 음식을 대할 때,
어느 음악을 들을 때,
어느 장소에 가면...
잠자던 내 기억이 자꾸만 나래를 펼친다.
어제는 오두막에 핀 꽃들을 이것저것 사진에 담았다.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 까닭은 노랑꽃 때문이다.
아직도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저 노랑꽃.
저 꽃을 보면, 나는 또 엄마가 생각이 나고,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내가 여섯살이 된 초여름,
육이오전쟁이 터졌다.
시골 소읍에 사는 우리가족은 전쟁이 났다고, 강 건너 깡촌마을로 잠시 피난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 가도 된다는 소문을 듣고 늦은 여름에 집으로 왔다.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집으로 오니
우리집 앞마당에 있는 꽃밭에는
울긋불긋 눈부시도록 환한 꽃들이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웃고 있었다.
그렇게나 어린 날의 기억인데, 어쩌면 생생하게 간직되어 있는 단상인지...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 그리고 이름 모를 키 큰 노랑꽃....
이상하게도 지금도 그 때 본 꽃들을 생각하면 눈이 부셔온다.
대문을 열고 들어 선 마당은, 눈부시게 핀 꽃들로 얼마나 화안~하던지...
그 후로도 내가 자라면서 제일 많이 보았고, 아직도 제일 많이 기억나는 꽃은
붉은 칸나와 저 키다리노랑꽃.
싱싱한 푸른잎의 칸나는 정열적인 붉은 꽃이 쉴 새없이 피어나서 내게 어떤 에너지를 주었고,
키 큰 노랑꽃은 여름날 땡볕 아래에 서서, 나를 늘 권태로움에 빠지게 했다.
내 어린 날의 기억속에서 언제나 화알짝 피어 있는 저 꽃.
이 여름엔 은비오두막에서 가냘픈 몸매로 휘청대며 바람에 흔들리는구나.
이제는 바래어가는 삶에 대한 내 꿈처럼....
엄마가 생각난다.
노랑꽃을 함께 보며
힘든 세월을 보낸 우리 엄마.
철없이 행복하기만한 세월을 보낸 나.
꽃이 펴도
바람이 불어도
맛있는 걸 먹어도
울엄마가 생각 난다.
난
오두막에 누워
하늘을 자주 본다.
엄마가 그리워서....
그리고...오늘은
엄마랑 함께 보던 그 때 우리집 꽃밭의 노랑꽃을
본다.
본다.
자꾸 본다.
엄마가 그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