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이런 맘...

eunbee~ 2009. 5. 26. 18:42

수영을 하고 나와서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하는데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어린 소녀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찾는다.

눈여겨보니, 그 소녀는 더듬더듬 바닥을 더듬고 있다.

소녀의 손에서 한 뼘쯤 떨어진 곳엔 하얀 비누가 놓여있고...

아~ 눈이 보이지않는 소녀구나.

나는 얼른 허리를 굽혀 그 소녀의 손을 가만히 잡아서 비누위에 올려 놓았다.

소녀의 얼굴엔 엷은 미소같은게 번졌다.

비누를 쥐고 일어서더니 입으로 가져가서 입술에 대고 살살 문지른다.

비누를 애무하는 것처럼....

 

옆에 있던 어른이 그 비누를 빼앗아 비누그릇에 담았다.

소녀는 더듬거리며 또다시 비누를 찾는다.

가느다란 다리로 지탱한 소녀의 몸은 발육 상태가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않을 뿐만아니라 자폐증상도 있어 보인다.

소녀의 얼굴에서 가끔 번지는 보일듯 말듯한 미소는 참으로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더듬더듬...

비누를 찾는 소녀의 손을 또다시 비누위에 가만히 올려 놓아주었다.

갑자기 닿는 비누의 촉감때문인지, 아니면 반가워서인지

소녀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작고 빠르고 가느다란 떨림처럼 소녀의 손가락도 너무나 가늘다.

가느다란 손가락과 가느다랗게 떨리는 손 안에서 비누는 두동강이 나 벌릴 것 같다.

너무도 소중스레 꼬옥 잡고 있어서...

 

가늘게 떨리는 그 손떨림이

내 가슴을 파르르~떨게 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쏴~아~하게 찌르르~ 전기같은 것이 번지더니

내 눈에 이슬이 고였다.

가늘게 떨리는 소녀의 손은 입으로 가고, 소녀는 다시 비누를 입술에 문지른다.

묘한 미소를 머금고, 행복하다는 듯이...

머리를 감던 옆어른은 소녀에게서 비누를 빼앗으며

'비누를 먹으면 어떡해'라고 말한다.

비누를 먹는 것은 아닌데....

비누를 몹시도 사랑하는 모습인데....

 

그제서야 나는 주변의 소녀들을 보았다.

비누소녀와 똑같은 모습의 소녀들이 대여섯명 된다.

자매이기라도 한것처럼 모두들 닮았다.

가늘고... 머리카락은 길고...눈그늘이 움푹한 슬픈 표정속에 감추어진 어두운 미소 한가닥...

맹인학교에서 교사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엘 왔나보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그 들을 보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뻔뻔한 自慰.

순간 부끄러워졌다.

나는 고작 이것 뿐이구나.

남의 불행을 내 행복의 척도나 위안으로 삼다니... 슬프다. 고작 요것뿐인 내 자신이...

부끄러움에 머리를 흔들었다. 이건 아닌데...

 

수영장 밖으로 나오니, 남자어린이 여자어린이 선생님들...맹아학교에서

단체로 수영장엘 왔구나.

한낮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그들도 나도 집으로 향했다.

 

눈먼 소녀의 작게 떨리는 그 손과

알수없는 신비로움을 전해 오는 미소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자꾸만 싸르르~울리며

야릇한 느낌에 빠지게 한다.

슬픔같기도...

연민같기도...

미안함 같기도한....... 이런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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