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은비오두막에서는,
엄마랑
개구쟁이 딸이랑, 배 다른 동생이랑
그리고 동네 몇몇 친구랑 즐겁게 어울려 사는 까망이가
마루밑에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까망이가 만삭일 때,
눈치없는 나는 그녀가 늘 머물고 있는
마루밑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지도 않은 채,
데크를 만들겠다고 목수를 데려다가
까망이가 좋아하는 마루밑 입구에 덧대어서 마당쪽으로 쭉 뻗쳐 나오는 데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데크라는 것이 참 웃기는 마루가 되었습니다.
내 딴에는 데크를 해 달라 했건만, 촌 목수 아저씨는 '공중부양데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것은 데크가 아니라 그냥 마루지요.
그것도 아주 높지막한 누마루랍니다.ㅠ.ㅠ
까망이가 자기가 좋아하던 마루밑엘 들어가려면
'공중부양테크'를 지나, 기존 봉당을 올라, 납작 엎드려서 마루밑으로 기어들어 가야합니다.
그럼에도 까망이는 그 곳엘 들어가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단독주택 개집이 몇 채씩이나 있건만 왜 하필이면 마루밑을 택하는 것일까요.
아무리 그 깊은 마루밑을 살펴 보려해도 너무 깜깜하고 멀어서
그 곳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몇마리를 낳았는지, 어떻게 생긴 강아지들인지...
울음소리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두 세마리는 될 것같은 울음소리입니다.
과수원을 돌보는 남동생이 와서 나의 조바심을 달래 주었습니다.
개들은 자기가 살 길은 잘 알아서 찾아서 새끼낳고
잘 길러서 한 달만 기다리면, 그 마루밑에서 나올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구요.
그러나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사건이 생겼습니다.
까망이가 마당 저 켠에서 입에 무언가를 물고 옵니다.
오두막 작은 거실에 앉아 밖을 내다보던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까망이의 입에 물린 것은 축 늘어진 새끼강아지입니다.
어머~~저 걸 어째.
아무래도 죽은 강아지 같습니다.
죽은 자기의 새끼를 물고 묻어줄 곳을 찾는지도 모릅니다.
까망이가 물고 다니다가 과수원 언덕에 둔 새끼강아지를
그 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삽으로 들어다가
과수원 귀퉁이에 묻었습니다.
개구쟁이 콩이가 파낼 수 없도록 돌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사라졌던 사랑이의 무덤도 돌 무덤으로 만들었는데...
올 봄 은비오두막 근처 과수원에는 까망이가 가을에 낳은 사랑이와
며칠 전에 또다시 까망이가 낳은 이름도 갖지못한 새끼강아지의
무덤이 두 개 생겼습니다.
꽃 피는 계절에
흐드러진 꽃무리 속에서
누군가는 주검으로 변하여 꽃들의 밑거름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새끼를 잃은 까망이의 맘을 헤아려
까망이에게 말을 건내며, 위로해 줍니다.
까망이는 새까만 눈망울로 나를 물끄럼이 바라봅니다.
'할머니 맘 다 알아요. 난 괜찮아요.' 하는 것처럼...
새끼를 잃은 것이 한 두번이 아닌 까망이는 체념을 배운것같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잘 알고 따르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나는 자꾸만 미안하고 슬프답니다.
마루밑이 너무 깊어져서 생긴 일인것 같기도 해서....
이제 남은 강아지들이
까망이의 젖을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깊은 마루밑에서 나와
볕밝은 오두막 마당을 즐겁게 뛰어다닐 날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자꾸만 불길해지는 마음은,
마루밑에서 들려야 할 새끼들의 기척이 며칠 째 잠잠하다는 것입니다.
동생에게 걱정스런 말을 했더니, 엄마가 젖을 잘 주어서 울지 않는것이라네요.
제발 그 말대로 나의 기도가 이루어져
예쁜 강아지가 앙곰앙곰 기어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깊어진 마루밑을 자꾸만 들여다 보면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강아지들아, 잘 자라서 어서 나오너라.'
은비오두막 과수원엔 돌무덤 두 개 이상은 없어야 합니다.
그 것 만으로도 너무 많이 슬픈 일이니까요.
지난 늦가을 까망이가 낳은 콩이와 사랑이가
언년이랑/하얀개/
할머니개 가을이랑/갈색 큰개/ 놀고 있습니다.
사랑이도 죽어, 돌무덤으로 남겨지고-이 사진을 찍은 며칠 후-
언년이는 지난 겨울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어디서든 잘 살고 있기를 빕니다.
사진 속,까만애기 콩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얼마나 극성스러운 개구쟁이가 되었는지
정말 못말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