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민들레랑...

eunbee~ 2009. 4. 20. 00:46

 며칠 전,

 우리집 과수원에 천지로 피어난 민들레를 삽으로 옮겨서

 바깥 마당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좁은 통로에 심었습니다.

 노란 민들레 숲에 드문드문 피어난 하얀 민들레도 참으로 곱습니다.

 

 동네 아주머니가 와 보더니, 하얀 민들레는 약으로도 쓰이는데

 캐어다가 삶아서 무쳐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두막 곁에 피어난 이 꽃들을 먹는다는 일은

 꽃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바람에 홀씨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때까지

 매일 지켜 보기로 했습니다.

 식물이나 짐승이나 미물까지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그 생명을 마감할 때까지 자연속에서 그대로 살도록 두는 것이

 태어난 그들에 대한 예의며 도리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구요?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먹을 것이 오두막에 피어난 민들레 뿐만은 아니잖아요?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심한 가뭄으로 마른땅은 딱딱하게 굳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한 땅에 옮겨심은 민들레는 한나절을 시들거리더니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노란 꽃얼굴을 바짝 치켜들고 웃고 있답니다.

 강한 생명력을 지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

 방글거리는 꽃에게 다가가 말을 건내 봅니다.

 신문에서 읽은 민들레의 아홉가지 德스러움을 꽃에게 알려 줬지요.

민들레의 또 다른 이름은 구덕초(九德草)라네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아홉 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하여 얻은 이름으로
옛날 서당 마당에는 이 들꽃을 옮겨 심어 조석으로 보고 인성을 닦게 했답니다. 

 

민들레의 구덕을 열거하자면,

 

一德 : 모진 환경을 이겨내고 피어나며
二德 : 홀씨가 날아가 앉으면 바위나 길가이거나, 마소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가면서도 
         피어나는 억척스런 생명력. 뿌리를 캐어 며칠을 볕에 방치했다가 심어도 돋아나는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는 인내와 강인함.
三德 : 한 뿌리에 여러 송이의 꽃이 피는데 동시에 피는 법이 없고
         한 송이가 지면 차례를 기다렸다 피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차례를 지킬줄알며,
四德 : 해가 지면 꽃을 오무리고,비가 오려 하거나 구름이 짙어지면 꽃잎을 닫으니
         명암의 천기를 알아 선악(善惡)을 헤아리며,
五德 : 꿀이 많고 진해 멀리서까지 벌들을 끌어들이니 정이 많고,
六德 : 새벽 먼동이 트면 가장 먼저 꽃을 피우니 근면하여 유럽에서는 '농부의 시계'라고도 불리며,
七德 : 씨앗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자수성가하여 일가를 이루는 
         강한 모험심,
八德 : 줄기의 흰 즙이 흰머리 검게 하고 종기를 낫게 하며 학질 등 열을 내리게 하는 어질음仁을 갖추었고
九德 : 여린 잎은 삶아 나물 무쳐 먹고 서양에서는 샐러드로 만들어 먹으며
         그 유즙을 커피나 와인, 맥주, 차에 타 쓴맛을 더하게 하여 마시니 살신성인 정신이 깃들었다합니다.

 

내 오두막을 환하고 정답게 꾸며주는 민들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시시때때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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