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편지

eunbee~ 2008. 5. 7. 05:08

오늘 밤은 도무지 잠이 오질 않습니다.

새벽 두시를 지나, 초저녁에 내렸던 커튼을 다시 제치고, 창문곁으로 의자를 옮겨놓고

밖을 봅니다.

인수씨가 아름다운 시선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던 산 능선들이, 이시각엔 더욱 아름답습니다.

산 너머 도시의 불빛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 오르며

강 건너 산들의 능선을 발그레한 하늘 바탕에 선명한 곡선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뿌연 하늘엔 별 두개가 반짝입니다.

강마을의 밤엔 강물은 검고 하늘은 뿌옇답니다.

한참동안 앉아서 강물에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을 봅니다.

바람이 살랑대며 물결을 바꿀 때마다 강물에 내려 꽂히는 불빛의 모양은 바뀝니다.

개구쟁이 어린 소년의 손에 들린 솜사탕이 되었다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잠시 후엔

유럽의 어느 들판에 아련한 모습으로 서 있는 싸이프러스로  나란히나란히 흔들립니다.

바람이 다시 불어 오고 있나봅니다.

싸이프러스는 어느새, 은비네 동네에 있는 Sceaux 공원의 커다란 호숫가에

빽빽이 하늘로 치솟은 포풀러나무로 변했습니다.

나는 바람이 그리는 불빛그림들을 보며, 유럽의 들판을 달리기도 하고, 쏘공원을 산책하기도 합니다.

강물에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은 순간순간 변하며 수만가지의 모양을 만들어 냅니다.

 

강물은 참으로 착합니다.

그 무엇이든 그것들이 원하는대로 모두 감싸 안아 줍니다.

바람이 원하는대로, 불빛이 그리는대로, 산이 머무는대로, 별이 잠기는대로...

강물은 모두를 보듬어 줍니다.

착한 강물을 닮아 보려합니다. 이 강마을에 사는 동안만이라도. 강처럼 그렇게..

 

강물위에 펼쳐지는 밤 정경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사진에 담으려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나~~

강건너 숲속에서 소쩍새가 울고 있네요.

소쩍새가 울다니요.

한동안 잊고 살았던 저 소리.

이 고요로운 밤, 강건너 산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는 내 가슴을 턱 막히게 했습니다.

울고 싶기도 하고, 달려나가 소쩍새 소리를 실컷 듣고 싶기도 하고...

순간 참으로 막막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소쩍새. 소쩍새 소리.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그 향기에 취해서 어질어질 어지러워지던

그 산등성이 아파트에 살던 때, 밤마다 밤마다 듣던 그 소쩍새 울음소리.

생각해 보니, 내겐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우리 애들 모두가 함께 복닥복닥 살면서, 고등학교 다니고, 대학 다니고..

그러는 애들을 꼭두새벽, 아침마다 학교에 태워다 주고, 학원에 실어다 주고,

강남으로 잠실로.... 동서남북 종횡무진 참으로 씩씩하고 활기차게, 초보 운전도 용감하게.ㅋㅋ

이 밤엔 그 소쩍새 소리를 혼자 듣습니다.

 

사진을 몇 컷 담아 와서 컴에 넣고 보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입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강물위의 불빛들이 어쩜 이렇게도 희끄무레할  수가...

그래서 사람들이 망원렌즈도 장착하고, 성능 좋은 카메라도 마련하나 봅니다.

내 사진은 언제나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못한 상태의 그림으로 나옵니다.

사진찍는 기술이 전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장비도 갖추어지지

않은 탓도 있겠지요.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을겁니다. 찍혀지는 대로 찍는 것도 그리 나쁜건 아니지요.

다만,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쓸만한 수동카메라가 있기는 하지만, 자신없는 내겐 디카가 마냥 편합니다.

잘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한수 위라고 변명하면서, 이렇게 늘 대강철저히 삽니다.

 

  

편지를 쓰다가, 창문을 열고 봄이 머물고 있는 강마을 밤의

산과 강과 불빛들을 바라봅니다.

새벽으로 가고 있는 강기슭의 공기는 차고 청량합니다.

밤낮으로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부지런한 수탉이 길게 목청을 뽑는군요.

소쩍새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습니다.

언제 쯤 다시 울어 주려나 기다려 집니다.

이밤을 꼬박 지새웠군요.

벌써 새벽 다섯시를 향하고있답니다.

창가에 앉아서, 능선과 강물과 두개의 별과 가로등과 물에 잠긴 수많은 불빛 그림들을 보면서

사뭇 인수씨 생각을 했습니다. 함께 보고 싶어서...

 

이제 날이 밝겠지요.

먼곳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가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뒷 동네에서 우는 닭은 언제나 저런 목소리로 웁니다.

강건너 숲 속은 잠잠합니다. 소쩍새는 이제 잠들었나봅니다.

오늘 저녁엔, 저토록 아름다운 산등성이로 초사흘달이 떠 오를거예요.

그 달을 맞이하려면, 이제 나도 자야겠습니다.

강물위에서 출렁거리는 불빛도  몇 십분 후엔 잠이 들겠죠.

 

인수씨

남은 잠 편안히 주무세요.

아침이 되면, 하루가 시작되면, 동분서주 종횡무진 사방팔방 바쁠거니까요.

그런 인수씨에게 언제나 미안하고 언제나 안쓰런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품위있게 우아하고 멋진 생활을 하는 모습에 감사와 찬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이제, 강마을의 새벽을 바라보다가 늦은 잠을 청해 보겠습니다.

어머!! 벌써 날이 밝네요. 강물이 무거운 은빛으로 부서지고 있습니다. 

아침은 참 빠르게도 달려오는군요. '등록'을 클릭한 후 30분이 지나갔을 뿐인데요.

좋은 하루!!   (인사말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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