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다슬기국

eunbee~ 2008. 5. 23. 06:12

어느해 여름

형부와 언니와 함께 충주 근방에 있는 어느 물 맑은 강에 가서

다슬기를 잡았다.

강물은 깊지 않아, 무릎위까지만 물에 잠기면 되는 맑고 잔잔한 작은 강줄기였다.

다슬기를 잡기 위한 도구를 준비해 갔다.

내 것은 유리 바닥으로 된 둥그런 모양이고

언니는 네모 모양의 다슬기 잡이 거울그릇을 준비했다.

 

저만치 위 쪽에서 형부는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다슬기를 건져낸다.

언니와 나는 좀 더 깊은 물 속을 더듬으며, 굵은 다슬기를 찾아 허리가 아프도록

강물을 휘저으며 오르내린다.

한동안을 그렇게 엉금엉금 다니며 잡은 다슬기가 제법 그릇에 찼다.

허리를 펴고 바위에 앉아 이런저런 재미난 얘기를 하며 깔깔대다가

저녁무렵에 언니네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가 다슬기국을 끓였다.

부추인지 아욱인지, 파란 채소를 넣고, 된장을 풀고, 맛있는 냄새가 풍겨 올 때까지 끓인 후

마지막에 달걀을 풀어 한소끔 더 끓여낸 다슬기국은 정말 맛있다.

 

그 맛있는 다슬기국을 한그릇 따로 남겨 두었다.

이튿날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나, 다슬기국을 보자기에 싸서 가방에 넣었다.

안개가 너무 짙게 낀 아침이라서 앞이 잘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도 차를 몰고 분당으로 향했다.

내 고향 충주는 강과 호수가 많아, 유난스럽게도 안개가 많은 고장이다.

조정지댐을 지나 올 때는 몇 십미터 앞도 잘 보이질 않는다.

앞에 작은 트럭이 하나 가고 있다.

잘 됐다. 저 차를 따라 달리면 덜 위험 하겠지?

나는 그 트럭을 놓지지않으려고 애를 쓰며, 죽어라 따라 붙고 그 뒤를 쫓았다.

 

장호원을 지나, 이천까지 그렇게 달렸다.

다슬기국 한그릇을 싸들고, 아들을 먹이려고

새벽 안개속을 허둥허둥 달리고 있다.

이천을 지나니, 안개는 사라지고, 시야는 훤히 트이고 운전하기가 수월해 졌다.

이제는 학교 가기전에 이 다슬기국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할까 하는 것이 걱정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만큼  빨리 달려 집에 닿았다.

 

집에 오니, 아들은 아직 잠속에 빠져있다.

아들을 깨우고, 가져온 국을 뜨겁게 다시 한번 팔팔 끓여서 밥과 함께 내 놓았다.

새벽 안개속에서 난폭 운전을 하며 안고 온, 아들에게 꼭 먹이고 싶은 다슬기국이

식탁위에 놓여졌다.

아들은 세수를 하고,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이젠 아들이 다슬기국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믓한 마음으로  바라 보면 된다.

 

그런데

아들이 가방을 들고 그냥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다.

???

나는 허망스러웠다.

이 것을 먹이기 위해, 이 새벽을 내가 어떻게 달려 왔는데....

아! 이것이 엄마맘이고, 아들맘이다.

 

오늘,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그날 아침 다슬기국을 싸 들고, 안개를 헤쳐오던 그날처럼...

오늘, 이 아침안개보다 더 짙은 아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내 맘속은 꽉 차있다.

 

아들이 다슬기국을 먹지 않고 그냥 현관문을 나선다해도,

다시 그렇게 해 볼 수 있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들에게 먹이려고, 새벽 안개를 뚫고 다슬기국을 들고 달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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