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마리 킴 그리고 사라 장

eunbee~ 2007. 12. 1. 14:53

나는 사라 장이 정말 정말 좋다.

그가 연주하는 녹화 방송은 빠짐없이 보려고 애쓴다.

그의 연주는 물론이지만, 그녀의 꾸밈없는 말과 웃음과 진솔함이 묻어나는 그녀만의

사랑스런 인품이 정말 좋다. 그가 보송보송한 솜털을 지닌 소녀 적 연주회에서,

거장의 지휘자와 눈맞춤을 하며 사랑스럽게 웃는 모습은 얼마나 우릴 행복하게 하였는가.

 

며칠 전, TV 오락 프로에서 사라 장을 보았다.

역시 그 아름다운 음악가는 그곳에서도 진솔하고 꾸밈없고 유쾌하며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세 살이 지나면서 음악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음악을 가까이 하게 여건을 만들어 준 그의 엄마는 단한번도 음악을 강요하거나

힘들게 훈련을 독촉하거나,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스스로가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하고 싶을 때 연주하고, 연습하고 싶을 때 연습하고

즐겁게 놀면서 생활 속에서 균형있게 행복한 마음으로 바이올린 공부를 했단다.

그는 어려서부터 절대음감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사라 장의 연주회 녹화 방송을  테입에 담아두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큰따님을 생각했다.

우리 현정이도 네살이 지나면서 부터 피아노공부를 했다.

어린 그를 업고 큰길을 건너다 주며 피아노 공부를 도와주었다.

내큰따님이 여섯살이 되면서 그애에게  절대음감이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거실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그애는 그의 방에서 음을 알아 맞혔다.

피아노 소리만을 듣고 여든여덟 건반을 모두 다 정확히 알아냈다.

내따님이 초등학교 3,4학년 때, 아파트 아래층에서 음대생이 치는 피아노소리가 들려오자 

그 알지 못하는 곡을 즉석에서  옮겨 칠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모짜르트르처럼 정확하지는 못했겠지만. 누구나 놀라는 일이었다.

 

내따님의 피아노 선생님이 말했다.

음대 지원자 중 5%이내에 속하는 학생들에게 절대음감이 있을까 말까라며, 현정이는 자기가 피아노를

좋아하고, 좋은 스승을 만나면, 귀한 연주자가 될 소질도 보인다고...

나는 귓등으로 듣고 흘려 보냈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으면 하겠거니 생각했으며, 피아노를 일찌기 가르친것도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것들과 접하고, 그러노라면 행복하게 살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행복하게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즐겁게 할 것을 바랬다.

내따님은 초등학교 3,4학년 때, 작곡을 하고 노랫말을 붙여 동생들과 동네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즐겁게 피아노와 생활을 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신통하고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나 또한 행복했다.

나의 지인은 그 애의 작곡 노트를 보고, '출판을 하지요' 라면서 아까워 하기도 했다.

 

 1978년 어느날  세남매가 함께

 

음악에 소질들이 있는 우리집 애들인 것같아서, 큰애는 피아노 작은 따님은 바이올린  막내 아들은

첼로를 공부시켜, 피아노 삼중주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살면서 형제자매가 모여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나 여건속에 산다면 얼마나 그인생이 풍요로울까를 꿈꾸면서, 행복한 삶을 만들어 주는, 한가지 작은 방편으로, 또한 인생의 한 메뉴로 닦아주고 싶었다.

둘째애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막내가  첼로에 앞서 비올라 전공선생님에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얼마 안가 그들은 음악공부를 그만 하겠다고 했다.

맨 먼저 큰애가 '엄마, 난 피아노 없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   깜짝 놀랬다.

저애가 피아노를 싫어 하나보다.

'그럼 하지마. 피아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아주 쉽지. 피아노 안하면 되잖아?'

엄마라는 나는 주저없이 큰애의 소원을 들어줬다.

모두가 자기들 행복하라고 하는건데....  까짓거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것을... 아주 간단했다.

 

 유학 초기 불어과외 선생을 자원한  사랑스런 지금의 신랑과.. 

 

사라 장과 마리 킴의 차이는 그것으로 집약된다.

스스로 음악을 얼마나 좋아 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끈기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물론 여타 많고 많은 조건과 이유들이 있겠지만, 기초적인 조건이 비슷하게 갖추어졌을 때

그 결과의 승패?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마리 킴, 내큰따님은 중학교 다닐때는 우리나라 최고라는 대학의 수학과를 가겠노라고 하더니

고등학교 때는 그 조금 뒷 순번으로 꼽히는 대학에 가서 교수님이 된다더니,

대학엘 가서는 교수가 될 생각은 애시당초 집어 던지고/교수들 거의가 모두 중학생 가르치는 수준으로 강의한다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투사가 되어, 민주화 운동에 앞장을 섰다.ㅋㅋㅋ 에구구...

어릴때부터 수재라고 생각되던, 그리고 남들도 그렇게 인정하던 그애가. 분연히 일어서 나라를 구한단다.      최루까스 속에서 수없이 눈물 콧물 흘려대며...

'그래. 그것도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엄마가 교육현장에 서 있는 교사라는 것만을 잊지말거라.'

하면서, 명동성당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큰따님의 위문 면회?도 갔다.

참 대단한 따님에 대범한 엄마였다.

그렇게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어지러운 시간들은 흘렀고,

사라 장은 세계무대로, 내따님 마리 킴은 프랑스로 각자의 위치를 정했다.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자유인들이다.

 

자기의 재주와 소질과 천재를 갈고 닦아, 세계적인 대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사라 장이 그의 삶을

행복하게 살고 있듯이,  마리 킴 내 따님도 그 나름의 행복한 삶속에서 세월을 보낸다.

소르본느에서 연극학 DEA를 마치고,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랑 함께 이고 싶어서, 결혼을 하고

때마다 세계 최고의 공연을 보러 가며, 틈나는대로 세상 구경을 다니고, 사랑하는 남정네의 살가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오늘도 그가 꿈꾸던 연극 무대를 신기루나 오로라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손에 잡으려 노력하지는 않지만, 마냥 꿈만 꾸면서,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성공이란 참으로 주관적 시각이다.

사라 장의 성공도 성공이고, 마리 킴의 성공 또한 성공이다.

마리 킴 엄마는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믿는 행복 지상주의자다.

Madame h.j de Blauwe  내따님 푸른 부인!!  언제나 오늘처럼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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