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나의 빨간 印章

eunbee~ 2016. 12. 15. 11:33

'80년 봄, 나는 다시 교단으로... 

같은 연구실을 쓰게 되었다는 기념이라며

부장선생님이 빨간색 인조뿔에 새긴 길고 날씬한 양면도장을 선물해 주셨다.

(나는 복직을 하면서도 도장도 없이 맨손으로 갔었나 보다. 어쩜 그리도 맹초인지..ㅠㅠ)

예쁜 그도장은 학교 공적인 사무용으로, 개인 은행통장용으로 두루두루 바쁘게 쓰였다.

 

몇년후 어느날 퇴근길에 날치기를 당했다.

저녁에 교육청 장학사에게서 시외전화가 왔다.

"무슨일 있었어요? 경찰서에서 선생님 가방을 가져왔네요."

날치기 도둑께서 자기가 가져가야할 것만 거두어가고 나머지는

어느 골목 담벼락 아래 던져 둔것을 순찰하던 경찰관이 주워서

빨간 도장을 단서로 나를 찾아내었더란다.

대한민국 경찰, 참으로 용해. 80년대 중반 어둑하던 시절, 인심좋은 소도시라서 그러했던가?

 

세월은 또다시 한참이나 흘렀다. 도장을 시멘트 교실 바닥에 떨어뜨려 1/3 쯤이 부러져 나갔다.

그렇거나 말거나 사용에 지장없으니 여기저기 닳도록 찍고 또 찍고...ㅎ

 

 

 

 

무장무장 세월은 흘러

나의 빨간 인장은 마모되고 이빨빠져 타원형 모양새가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만지작거리노라면 애틋한 마음도 생긴다.

 

어제 은행에 다녀왔다. 다저녁에 지갑을 보니 도장이 없다.

은행에서 흘렸나 보다. 자동인출기를 사용하였기에 도장은 사용치도 않았건만.

가슴이 철렁했다. 36년 동안 함께 해온 나의 빨간 인장.

그것으로 거래했던 액수만도 얼마나 될까. 별별 생각을 하며 안타까워했다.

먹고 살고, 집도 사고, 애들 유학도 보내고, 세상구경도 무진장 다니고...ㅎ

내일 은행에 가면 누군가가 주워서 보관하고 있을거야. 희망 속에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은행엘 갔다.

경비원에게 이야기했더니  나의 빨간 인장은 거기에 있었다.

오호라, 이 질긴 인연이여. 이 기막힌 인연이여.

내게 안전하게 와주었구나. 감사, 감사, 또 감사.

 

그래서 내곁에 다시 소중하게 함께 있게된 부러지고 헐어버린 도장.

쓰다듬고, 들여다 보며,

만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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