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다 때가 있어유

eunbee~ 2016. 8. 20. 14:51

 

이른아침에 산책을 나간다.

저녁엔 왼종일 잔뜩 달구어진 대지의 열기로 산책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

산책코스 반환점에서 벤치에 앉아 오래전에 익힌 단전호흡을 하며 잠깐의 명상도 갖는다.

다 마치기 전, 옆자리에 고운 할머니께서 앉으셨다.

 

여든여섯의 연세답잖게 어쩜 피부는 그리 고우실까.

오남매 두셨고 큰아들네 손주 둘을 키우시느라 힘드셨기에

따로 집장만해서 독립하셨단다. 고향이 충남 서산이라시며

"여긴 충청도 사람 귀해요. 말캉 전라도 사람이지유~"

 

너무 더워서 어찌 지내시냐고 여쭈웠더니 낮에는 그냥 집안에서 꼼짝 않으신댄다.

"저는 그 뜨거운 햇볕에 무말랭이며 가지며.. 그런것들 말리고 있어요."

"무말랭이를 이 한여름에 말려유? 추석지나 서리맞은 가을무시(가을 무) 말려야 맛이 있지.

지금 말리면 못써~. 가지도 그렇고.. 다~ 때가 있는거유~"

"그냥 이런거 저런거 말리면서 햇볕 싫어하지 않으려구요."

그말에 할머니는 와하하하하~ 크게 웃으신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그 호쾌한 웃음이(어처구니 없다시며 웃으셨지만) 참 좋았다.

 

다 때가 있는 걸.

이 염천에 싫어지는 햇볕 좋아해 보겠다고 말린 무말랭이는 할머니 말씀대로 대실패작이다.

누렇고 검게 변한 것이 냄새도 별로, 모양새도 별로.ㅋㅋ

마른 것이 아니라 익어버린 모양이다.

생애 처음 말린 무말랭이,

온 동네방네 소문은 무성하게 피워올렸건만 작품은 대실패작.

 

아들은 중국으로 사흘간 출장,

사위는 골프한다고 회사간부들과 골프여행.

다 때가 있다는데, 난 무얼할 때이려나.

그 아무것도 내게 맞는 때는 아닌 듯하여 컴 앞에 앉아 있다. 별 열정도 없이.

매미는 가끔 서너 녀석만 울고, 한낮의 뙤약볕은 오늘도 기승이다.

 

 

 

 

조용한 일

 

                 김 사 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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