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아침 9시 즈음 창밖 플라타나스, (채도 12로 높임)
11월 예찬
- 황 현 산 -
10월을 노래하는 시들은 많다. 서양의 낭만파 시인들은 [10월의 밤]이라는 시를 다투어 한 편씩 가지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넋을 묻은 고정희의 연시 [비 내리는 가을밤에는]에서도 시인의 가슴을 에이게 했던 가을밤은
거의 언제나 "꽃이삭과 바람만이 이야기를 나누는" 10월의 밤이다. 그에 비하면 11월에 눈길을 주었던 시는 드물다.
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가 아마 여기에 해당할 듯한데, 힘을 잃어버린 햇볕에 대한 아쉬움을 읊고 있을 뿐,
11월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느 노래가 말하듯이 '10월의 마지막 밤'을 넘기고 나면 더이상 이별해야 할 것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한 가닥 미련마져 사라지고 마는가.
그렇더라도 11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마른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나면 감춰져 있던 나무들의 깨끗한 등허리가
드러난다. 꽃 피고 녹음 우거졌던 지난 계절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어쩌면 음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 시절의 영화는 사라졌어도 세상을 지탱하는 곧은 형식들은 차가운 바람 속에 남아 있다. 작은
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때이다. 마른 석류보다 더 작은 새들이 주목의 붉은 열매를 쪼다가 돌배나무의
앙상한 가지로 날아올라간다. 높은 가지에서 관목 숲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져내릴 때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구별
하기조차 어렵다. 이제 겨울이 오면 저것들은 어디에 몸을 붙이고 살아갈까. 그러나 새들은 욕망도 불안도 떨어져
쌓인 나뭇잎들 속에 벗어두고 한 알의 맑은 생명으로만 남은 듯하다.
옛 이야기 속에는 세번째 선택의 주제가 자주 나타난다. 호수에 도끼를 빠뜨린 나뭇군은 금도끼 은도끼를 탐하지
않았기에 제 쇠도끼와 함께 다른 도끼들을 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우렁각시의 남편은 아내의 조언대로 용궁에 들어가
건장한 말, 살찐 말들을 버려두고 비루먹은 세번째 말을 택함으로써 나쁜 원님을 물리칠 수 있었다. [베니스의 상인]의
바사니오는 금상자와 은상자를 외면하고 납상자를 고른 덕택에 아름답고 부유한 포사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리어왕은 아첨하는 말에 현혹되어 세번째 막내딸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불행한 삶 끝에 미치광이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이 이야기들 속의 첫번째와 두번째 선택지가 봄과 여름을 뜻하고, 세번째 선택지가 가을과 겨울을 상징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삶으로 치자면 봄과 여름은 청년기와 장년기이며, 가을과 겨울은 노년기이며 죽음이다.
따라서 세번째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노년기를 염두에 둔 선택이라는 말이 된다. 프로이트의 말이 옳건 그르건 우리
에게 늙는 일이 없고 죽는 일이 없다면 사실 입바른 진실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리어 왕이 영원히 권좌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면, 아첨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었겠는가. 왜 바늘 끝 같은 진실 따위로 마음을 괴롭혀야 할 것인가.
젊음과 권력이 영원한 것이기만 하다면 우선 기분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중국에 관광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자금성을 보고 놀란다.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웅장해서도 그렇지만 또다른 이유
도 있다.모든 기둥에 붉은 칠을 하고 모든 장식물에 금물을 덮어씌우다니, 이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모든 선들은 각이
졌거나 오만하게 어깨를 들어올리고 있다. 모든 집기들은 보석과 상아를 둘러쓰고 있다. 은은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 화려함에 깊이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은은함도 깊이도 따지고 보면 겸손함일 터인데, 황제에게 겸손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황제란 다름 아니라 뻔뻔할 권리가 있는 인간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세번째 선택 같은
것은 없으며, 선택조차도 없다.
이제 황제는 없다. 그러나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도 11월은 있다. 나무들은 그 순결한 등허리의 선을 드러내고,
새들은 그 맑은 생명을 뭉쳐 붉은 열매를 쫀다.(2004)
황현산 산문집 [밤은 선생이다]에서
10월 24일 오후 5시 즈음, 창너머 불곡산과 상현달
이렇게 또 내 생애의 어느 시월은 속절없이 간다.
열기를 다 빼버린 시월 마지막 날 저녁답의 햇살엔
서늘한 그림자가 숨어들어 냉기마져 안겨있다.
등허리 시려오는 중늙은 이의 마음이 저러하겠지.
도시 복판의 이 아파트, 내 집 동네는 어쩜 이리도 늘 조용한지.
가을날 저녁무렵의 힘없이 가물가물 졸고 있는 햇볕과
고요롭게 서 있는 나무들은 적막함을 더하여, 차라리 울고 싶게 만든다.
심심한 까치 한 마리, 기어이 까각 까각
그도 맥없는 목소리
오늘은 분당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가는 긴급차량의
삐요~삐요 소리 조차 없구나.
적막한 오후.
10월, 이렇게 배웅하고,
11월을, 예찬하며 마중한다.ㅎ
'살며 사랑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픽공원의 가을빛 (0) | 2015.11.10 |
---|---|
소마 미술관에 갔다가.. (0) | 2015.11.08 |
내 놀던 옛동산, 오후 4시의 가을빛 (0) | 2015.10.27 |
우린 서로에게 (0) | 2015.10.12 |
풍만한 형태감, 보테로를 만나다 (0) | 2015.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