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아비뇽의 노파

eunbee~ 2014. 5. 1. 20:47


작은딸 유학생활은 프랑스 리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랭귀지코스 1년 반을 그곳에서 수학했지요.

작은딸은 바캉스가 되면 프랑스내의 이곳저곳으로 짧은 여행을 했습니다.

멀리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지방의 해변 마을이며 브르따뉴지방에도 가고

리옹에서 가까운 아비뇽에도 갔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 중에는 아비뇽에 사는 여학생이 있었답니다.

그녀를 따라 아비뇽에 갔을 적 이야기예요.


친구의 부모님은 모두 여행을 떠나시고, 작은딸과 함께 아비뇽을 가게 된

다섯명의 친구와 집 주인인 친구와 모두 여섯명의 학생들이 아비뇽친구 집에서 머물렀답니다.

저택이라 말할 만큼 큰 집에는 방 수가 많았다고 해요.

이방 저방 둘씩 혹은 혼자, 각자의 방을 정해 잠을 자기로 했다지요.

작은딸은 공기를 주입해서 사용하는 공기침대가 있는 방을 차지했더랍니다.

친구들은 거실에서 놀다가 늦은 시각에 각자의 방으로 갔다네요.

작은딸이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답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방안을 살폈다지요.

저기 저 쪽에서 곱슬거리고 하얗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노파가 무언가를 긁는지

아니면 무언가를 찾는지 무언가를 주섬거리는지, 훔치럭대고 앉아있더랍니다.

저 할머니는 언제 이방에 들어 오셨을까,하면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기에 밖으로 나와서 집주인인 친구방으로 갔다네요.

그 친구에게 저 방에 할머니가 계셔,라고 말하니 그 친구는 깜짝 놀라더랍니다. 

친구의 할머니는 돌아가신지 수삼 년 전, 그러니 할머니가 그방에 있을리가 없다고.

그 방은 돌아가신 자기 할머니 방이었다고.


작은딸은 청소년 시기에 가위눌림이 심했고, 환청 환영을 비교적 자주 보는 소녀였지요.

램 수면 상태가 심했다고 할까요. 아무튼

작은딸이 겪은 최고의 환영이 '아비뇽의 노파'라고 하네요.



그일이 있은 직후 새벽 4시에 집주인인 그친구는 기차를 타고 이태리로 갔답니다.

새로 사귀기 시작한 이태리 청년을 만나기 위해서.

작은딸은 그 친구의 용감한 행동이 얼마나 놀라운지, 몹시 큰 충격이었다네요.

스무서너 살의 어린여자가 남자를 만나기 위해 새벽 4시에 타는 기차, 그것도 친구들을 남겨두고

갈 수 있는 그 용기가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떠나는 콜럼버스의 이야기 보다 더 경이롭더랍니다.ㅎㅎㅎ

그때 작은딸은 프랑스 나이로 스물둘.^^



그런데

그 아비뇽의 저택에서 만난 은빛으로 빛나는 곱슬머리의 노파는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그적까지도 당신 방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걸까요?

떠나지 못하는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지. 





피카소 그림, 제목 모름. 메트로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찍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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