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를르에서는 을씨년스런 바람 속에서 고흐를 만나고 왔어요.
이 바람 때문에 더 외롭구 압생트를 더 찾았겠구나, 내멋대로 해석도 하면서 ㅋㅋ
론강의 바람은 거칠었어도
골목골목이 참으로 정겨운 아를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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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에서는 대성당과 이프섬을 다녀와
마르세유 항구 부두에 앉아 부야베스와 화이트와인을~
저 많은 요트 중 어떤 것을 타고 어디를 갈까 헛꿈?도 꾸면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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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는 그냥 니스 ㅎㅎ~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사진을 본 태빈 답글 '해운대구먼 ㅋㅋ'
부서지는 햇살아래 빛나던 푸른물결, 붉은 노을 속 마세나 광장
고모님도 기억나시죠?>
막내올케님이 보내온 스맛폰의 글을 그대로 옮겼는데
안혼날랑가 모르겄네욤~ ㅋ
그러나 이공간이 우리들의 일상의 기록이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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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찍었더니...영~~ㅠ 제빛이 아니네욤.
이 아침
창 밖은 노란 등불로 화안합니다.
흐린 가을 아침을 가을 나무들이 노랗게 빨갛게 수만개의 등불을 매달아 두어
따스하고 화안하고 어여쁘게 합니다.
자연이여, 고맙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포스팅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창 밖 가을을 봅니다.
가을이여, 고마워요.
장다혜 지음[프로방스에서 느릿느릿]에서 <바람을 그리는 남자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글 일부를 옮깁니다.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된 남자, 모델을 구할 돈이없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평생 39점의 자화상을 남긴 화가,
그럼에도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유독 초췌한 모습이 떠오르는 불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4개 국어에 능통하고 독서광이었던
지식인이자 10년 남짓 그린 그림만으로 21세기의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그는 진정한 천재화가다. 그가 파리에서 아를로
거처를 옮긴 건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일본미술에 심취했던 그가 '아를의 햇빛이 일본과 비슷하다'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의
말을 듣고 난 직후였다. 그러나 아를에서의 생활은 궁핍함 그 자체였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로는 늘 값비싼 물감을 사느라 낮에는 커피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캔버스 가득 아를의 태양을 칠했고 압생트라는 싸구려 술을 마시며 아를의 별을
스케치했다. 당시 송진과 물감냄새에 이미 중독되어 있던 반 고흐는 납 성분의 물감이 묻은 붓을 입으로 무는 습관 때문에
날로 수척해져 갔고 환각까지 보게 되지만 그의 캔버스 속 노란색은 점점 찬란해져 갔다. 잔인한 아이러니는 이 궁핍한 시기에
그린 [붓꽃]이 그가 죽은 지 100년 만에 소더비 경매에서 5,980만 달러에 팔려 그때까지의 그림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중략-
현재 아를르에는 그가 살던 노란 집과 카페, 그가 감금되었던 병원과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모두 남아 있어 그의 그림
한 점 한 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여름엔 40도를 웃도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기에 햇볕을 견디며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들지만 반 고흐의 그림 속 소용돌이치는 자연과 햇빛을 담은 화려한 색채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또 이곳에선 낮에는
반 고흐의 표현대로 "창백한 유황빛으로 반짝인다"는 아를의 태양을, 밤에는 론 강 위에서 환상적으로 빛나는 별들을 직접
대면하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많은 학자들이 프로방스의 바람 미스트랄로 인해 반 고흐 그림 속 자연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그려졌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실제로도 그렇다. 미스트랄에 부대끼는 별들은 그림 속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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