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엄마랑 함께 올 걸

eunbee~ 2012. 5. 8. 19:04

 

엄마랑 함께 올 걸.

너무 늦은 방문이구나.

 

내엄마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곳.

울진군 근남면... 막연히 바닷가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와보니 이리도 아름답구나.

엄마없이 남매가 찾은 엄마 고향이 너무도 아름다워 더욱 서럽다.

정말이지...너무도 아름다워... 더욱 서럽다.

 

엄마가 태어난 고향 마을 바로 앞바다

 

형제중에서도 엄마랑 가장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나.

엄마는 내게 엄마고향을 많이 이야기해 주셨다. 그래서 엄마고향 주소도 알고

엄마의 본향도 알고, 바닷가 마을에서 엄마가 어린날 놀던 이야기도 나는 안다.

 

아홉살 많은 언니는 결혼을 했고, 오빠는 서울로 공부하러 떠났고, 남동생들은 철없이 겅중거리니

자연히 엄마랑 내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엄마랑 내가 마루에 앉아 빨래개키며 나눈 이야기들...

내가 내형제들에게 틈나면 들려주면 형제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왜 저런 이야기를 모르지? 하는 눈으로...

 

엄마는 노래도 불러주셨다. 아니 불러주는 것이 아니고 그냥 빨래손질하시며 흥얼거렸다.

정선아리랑~ 엄마가 부르던 그 노래는 지금도 나를 늘 슬프게 한다.

 

내가 객지에서 교단에 있을 때, 내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을 때, 낳았을 때,

내가 사는것이 궁금해서 울엄마 아빠는 멀리멀리 기차타고 버스타고 자주 오셨다.

울언니는 이웃으로 시집갔고, 오빠는 남자이니, 내게 유독 그런 기회가 많았나보다.

 

그 다음엔 이번 여행을 함께한 춘천동생네에게 엄마가 많이 다니셨다.

울아부지 돌아가시고 남동생이 결혼을 했으니 울엄마는 동생이 결혼하자 그올케가 가장 편했는지

아니면 그동생이 가장 눈에 밟혔는지, 동생이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몇달씩 가서 계셨다.

 

그러니 울엄마 고향을 찾은 우리남매와 올케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크다.

춘천동생은 벌써 두번 째란다. 큰누나를 모시고 엄마 아빠 고향엘 몇년전에 다녀갔단다.

이번엔 작은누나인 나와 함께 엄마고향엘 가기로 맘을 먹고 이렇게 왔으니, 춘천동생 내외가  고맙다.

 

 

내엄마가 유년시절 모랫벌에서 놀던 곳이었을 게다.

 

80년대 중반 쯤 내가 승용차를 운전하게 되었을 때, 내엄마에게 엄마 고향엘 가자했다.

그랬더니 내엄마는 딸(여자)이 운전하는 차엔 못타겠다고 하셨다. 여자가 운전하는 차를 타본 일이 없는

엄마는 내심 걱정스럽고 위험하게 느끼셨나 보다. 나는 내가 차를 사면, 엄마랑 언니랑 셋이서 엄마고향엘 가 보는 것이

그때의 내 계획이자 작은 소망이었다. 꿈이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세모녀가 함께 엄마고향엘 가는 걸 꿈처럼 낭만스럽게 간직했었으니까.

그리고 바닷가에서 유년을 보냈다는 엄마의 그 '바닷가 고향'이 몹시도 보고 싶었다.

어쩌다가 내가 엄마에게 더 보채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았는지... 지금 생각하니 후회스럽다.

 

이제 이렇게 와보니, 눈물나게 아름답고, 그래서 더욱 눈물나게 후회스럽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열서너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니...내 엄마가, 이 바닷가에서... 아~

 

올케는 말한다.

"겅둥 치마입고 오두마니 서서 바다를 바라봤을 어머니 모습이 상상이 돼요~ 이렇게 서서 저 바다를 봤을 거예요."

라면서 흉내까지 내며, 시어머니의 어린날을 그려본다. 그러는 올케가 참으로 고맙다.

두번 째 오는 올케의 적극적인 탐색으로 첫방문 때 찾아내지 못한 외5촌 집도 알아냈다.

외할아버지가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였기에 외5촌이 외삼촌이 된 우리외가이다.

양자오신 외삼촌은 교직에 있다가 육이오 때 월북을 하셨고, 그래서 우린 다시 외삼촌이 없게 되었다.

그 양자오신 외삼촌 형제분이 사시는 집을 이번에 찾았다.

 

 

 

 

빨간 기와지붕이 우리외할아버지에게 양자를 온 외삼촌이 되셨던 분의 동생네 집이란다.

외5촌은 돌아가시고 외숙모님은 칠순이 가까워오는데, 어딘가가 아파서 병원에 가셨단다. 그래서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서야만 했다.

빨간 지붕만 바라보고, 마당도 기웃거리고...이웃집 아낙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냥 돌아서 왔다.

엄마가 살던 집은 어차피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많이 서운하고 기운빠지는 일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외5촌네에 대해서 세세히 이야기해주며,

茶라도 마시고 가라고 심던 녹두를 밭에 두고 흙을 털며 일어서신다.

인심도 좋다. '새가 녹두랑 이팥이랑 쪼아 먹으면 어떡해요' 했더니, 여기 새는 그리 못되지 않단다.

새도 사람도 인심이 좋은가 보다.

 

푸른기와지붕 아주머니에게서 외숙모님 전화번호를 받아가지고 돌아섰다.

외숙모님은 병원에서 치료마치고 삼척으로 볼 일 보러 가셨다니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다.

떠나는 차를 보며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 준다. 새들도 사람들도 내엄마 고향은 인심들이 좋구나.

 

내엄마랑 함께 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네 고향 바닷가에서 차로 5분도 되지않아 망양정이 있었다.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그 아름다움을 읊었던 망양정望洋亭.

그곳에 올라 엄마의 유년을 생각했다.

엄마의 눈길이 되어, 먼 바다를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흐른다.

 

엄마랑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망양정에서 내려다 보니, 내엄마의 고향이 산허리에 싸여 옹기종기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엄마의 정선아리랑이 저 마을에서 하마나 들려오지 않을까 그 쪽으로 자꾸만 마음을 쏟는다.

 

내엄마랑 함께 와서 고향마을 내려다보며 노랫가락 불러볼 걸.

 

 

 

 

그 옛날 엄마도 이곳에서 먼 바다를 바라봤겠지.

어린 내엄마는 바다를 바라보며 무슨생각들을 했을까.

지혜롭고 재주많고 숨겨둔 풍류와 흥이 많던 내엄마는 내어린날처럼 먼곳을 동경했을까.

여행을 좋아하던 내엄마는 늘 바다 저쪽 수평선너머로 가고 싶어했을 거야.

나는 엄마를 알 수 있지. 딸이니까. 내엄마를 가장 많이 닮은 딸이니까...

 

 

 

 

망양정 난간에 앉아 남동생이 말한다.

"엄마가 말했어. 인생은 길지도 않지만 짧지도 않다고, 그래서 하루하루 공들여 살아야 한다."고

아~ 내엄마가 일러주셨다네. 하루하루 공들여 살아야 한다고. 인생은 그래야 한다고...

 

 

 

 

건강하게 사시다가 자연스럽게 가신 내엄마.

암에도 안걸리고 치매에도 안걸리고 오랜 병도 없이 가신 고마운 내엄마.

서양나이 82세 때, 돌아가시기 1주일 전에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인생이 길어? 80년의 세월이 엄마에게 어떻게 느껴져?"

"돌아보니 금방이야. 언제 어떻게 가버렸는지...금방이야."

"파리에 있는 애들 오라고 할까? 보고 싶지않아?"

"아니~ 난 이제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이제 됐어."

"硏修 마치면 엄마 보러 또 올게, 잘 있어 엄마~"

이것이 마지막으로 나랑 나눈 이야기였다.

어느해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양력 7월 어느날.

 

 

 

 

내가 엄마를 떠난 며칠 후 엄마는 언니에게 물으셨단다. "음력 6월 초하루가 며칠 후니?"

"사흘 후야~ 엄마 왜 6월 초하루에 누구랑 약속해 놨어? " 언니가 말하니, 엄마가 그냥 웃더란다.

6월 초하루 새벽, 엄마는 곁에 있는 언니에게 오빠를 부르라 하시더니, 오빠가 곁에 앉자,

"너희들 이제 곡을 해. 아이고 아이고 울어~" 하셔서, 언니가 "왜 곡을 해, 우리가 왜 울어야 해."했더니

"내가 죽었으니 울어야 해."하시더란다. 그래서 언니랑 오빠랑 농담처럼 장난처럼 '아이고~아이고~'하면서 "이렇게?"말하며

우는 흉내를 냈더니,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더란다. 그 후 언니가 스르르 졸리움이 오는데 엄마 팔이 의자 팔걸이에서 툭!! 떨어져서

깜짝 놀라서 엄마를 보니 엄마가 가시는 길이었단다. 울엄마는 당신이 가시는 날까지 정해서 가셨다.

왜냐하면 그해엔 윤5월이 든 해라서 윤달에 안가시고 6월 초순을 기다리신 거란다.

자식들이 당신 제삿날을 헷갈려 할까봐 그러셨을거야.라고 우린 지금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마음 맑고, 인정 많고, 지혜로웠던 내엄마는 그렇게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가셨다.

 

그런 내엄마가, 내가 살면서 살면서...살아보니 살아보니...그렇게 고맙고 고마울 수가 없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하는데...그렇게 가야하는데....

내엄마를 많이 닮은 내가 마지막 길이라도 엄마를 꼭 닮았으면 좋겠다.

 

 

 

 

수평선너머까지 들리라고, 하늘 끝까지 들리라고, 엄마가 있는 그곳까지 들리라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가 어린날 서 있었을 망양정에서 엄마를 자꾸만 불렀다.

 

하늘엔 하얀 갈매기들이 날갯짓도 멈추고 기류를 타고 고요롭게 날아간다.

내엄마를 닮아, 날아가는 모습도 품위있게 고고하게 날아간다.

엄마~ 부르는 소리에 나를 내려다보고 보내주는 엄마의 대답인양.

.

.

 

平海黃氏 가문의 선비였던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막내딸을

'연못에 피어난 노란 연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내엄마는 이름도 그토록 예뻤다.

 

가을엔 이번에 가보지못한 평해황씨 종택이 있는 월송정 송림과 내아버지 고향엘 가기로 했다.

춘천동생이랑... 그땐 언니도 오빠도 함께 가자해야 겠다.

 

 

 

2012. 5. 8. 어버이날에

내엄마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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