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부석사에서

eunbee~ 2012. 5. 7. 06:45

 

 

 

부석사는 인연이 깊어요. 큰아버지댁이 부석면에 있었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가보게된 절이지요.

어린날, 사촌형부가 들려주던 '浮石', '의상대사의 지팡이' 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신기하고 재미있어 했다우. 은비이모가 법당에서 부처님을 처음 만난 것도 부석사고요.

세살 무렵의 은비이모는 법당분위기가 무서워 오들오들 떨고 앉아있었지요.

 

그렇게 어린날부터 보아왔던 부석사엘 몇년만에 갔더니 증축도 했고

시야도 막혔고, 새길에 시멘트도 씌웠고...

그래서 조금 서글펐어요.

 

큰아버지댁 뿐만이 아니고, 우리아버지, 엄마, 형제들과의 추억이 얽힌

부석사를 잘 찍고 싶었으나 이런 사진이 되어서 그 또한 서글픕니다.

 

 

 

 

봉화, 순흥, 풍기 부근에는 하얀 배꽃이며 사과꽃 그리고 연분홍 복숭아꽃이 눈부시게 폈습니다.

사진은 부석사로 오르는 비탈길 오른쪽에 있는 사과꽃이에요. 절집으로 오르는 양쪽 밭에는 사과꽃이 흐드러졌어요.

 

 

 

 

 

큰아버지, 큰엄마를 마지막 뵌 날, 막내동생이랑 함께 부석사엘 와서 바로 이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우.

知天命에 들어선 막내동생이 대학다닐 때이니 참으로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나무가 섰던 자리는 같으나 나무는 그때의 나무가 아닐지도 몰라요.

 

 

 

 

 

이자리는 안동권씨 종친회 행사에 오셨던 우리아버지께서 사진을 찍으신 석축 위랍니다.

아버지 사진 중에서 그 사진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에요.

양복을 입으시던 아버지가 하얀 두루마기와 갓을 쓰신 모습으로 무량수전을 뒤로하고

풍채좋게 서 계시는 모습의 사진을 어릴 적에 봤는데 늘 잊혀지지 않습니다.

 

 

 

 

벌써 耳順에 들어 세상을 곱게 살고 싶어하는 동생내외랑 함께 떠나온 여행입니다.

엄마고향에 가니, 동네사람이 오빠랑 왔느냐고 묻더군요. 호홋

미술교사였던 올케님은 지금도 소녀같아서, 역으로 마중나오며 풀꽃으로 만든 작은 꽃다발을 내게 건내더니

춘천을 떠나올 때도 역시 풀꽃을 따다가 꽃다발을 만들어 헤어지는 섭섭함을 달래주더이다.

이렇게...형제며 올케님들이 있어 얼마나 일상이 풍요로워지는지요.^*^

 

 

 

 

아미타 부처님은 동쪽을 보고 계십니다. 사진을 찍고나니 촬영금지였어요. ㅎㅎㅎ~

아르카익 미소는 아니었지만, 부처님 뒷 광배가 휘황해 아름다웠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계신 곳은 극락이라지요.

 

 

彌陀一句法中王 (미타일구법중왕)

나무아미타불 하는 염불은 부처님법중에 최고이고,

 雜念紛紛也不妨 (잡념분분야불방) 

잡녑이 분분하게 일어나도 방해받지않으며. 

萬里浮雲遮赫日 (만리부운차혁일) 

 온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져 햇빛을 다 가리어도,

人間處處有餘光 (인간처처유여광) 

 중생이 사는 곳곳에는 구름사이로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비치리.

 

 

彌陀一句無他念 (미타일구무타념)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면 다른 생각이 없고,

萬念俱空見本然 (만념구공견본연)

만가지 생각이 다 공하게 되면 본연의 모습을 보게되네.

便是塵塵成解脫 (편시진진성해탈)

티끌티끌마다 해탈을 이루고 나면,

不須更問祖師禪 (불수경문조사선)

조사선(화두)을 더물어 무엇하겠는가.

 

 

 

고려시대에 지어진 부석사의 주불전.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주심포계 건물로,

지붕 추녀와 기둥 중간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기둥의 조화가 특히 아름답다.

건물 가운데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게 한 안허리곡과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기둥의 안쏠림,

건물 귀부분의 기둥이 가운데보다 높은 귀솟음 수법 등 고도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봉정사 극락전 다음으로 오래된 목조건물로 이름이 높으며,

고대의 불전 형식과 구조 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봉황산 중턱에 위치했으며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道場)이다. ( 검색자료, Daum문화재 )

 

 

 

 

세상을 떠돌던 김삿갓이 안양루에 올라 읊은 시랍니다.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광경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詩 --- 金炳淵 (김삿갓)

 

 

 

 

 

배흘림기둥이라지요?

 

 

전설을 간직한 浮石이고요.

 

 

 

우리가족의 추억이 많이도 서려있는 부석사를 이렇게 다녀왔습니다.

봄날의 절집이 좋기도했지만, 이곳에 잠겨있는 많은 추억들을 꺼내볼 수 있어서 가슴 아릿한 방문이었지요.

최근에 다녀온 때가 7-8년 전쯤 되었는데, 그새 못보던 건물도 들어섰고... 절집마다 옛그대로인 곳이 없습니다그려.

 

우왕좌왕 포스팅이 되었군요. 깃든 이야기가 많아 내 추억도 마냥 우왕좌왕 했답니다.^^

아침 햇살이 눈부십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마음이 되고자합니다.

 

더보기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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