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겨울이랑..여름이랑..

eunbee~ 2011. 8. 23. 19:05

 

안개서린 날의 아슴아슴한 산그림자처럼

내가 살고 있는 요즈음은 그렇게

비몽사몽이다.

 

여기가 거기같고,

그것이 이것 같기도 한것이.

 

떠나 온 것인지.. 돌아 온 것인지..

이제 막 가려는 참인지.. 이미 당도한 것인지.

.

.

 

두물머리 아들네집 거실에서 만난 북한강의 아침 안개

.

.

 

은비도 떠났고, 아드님네도 여행중이다.

나는 아드님네 강아지들을 돌보느라 하루가 가득하다.ㅋ~

아침에 일어나면 강아지 두 녀석이 온 거실 바닥에다 설치미술 작품을...

바스락대며 먹이를 물어다가 주루룩 펼쳐놓은 것이 훌륭한 퍼포먼스다.

 

아침 여덟시 경에는 두 녀석에게 심장병 약을 먹여야 한다. 열두 시간마다 한 번씩.

겨울이는 특수먹이에 비벼서 꿀을 섞어서 주면 자기 혼자 잘 먹는다.

그런데 어제 저녁부터는 자기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손바닥에 조금씩 덜어서 먹여주어야 먹는다.

나랑 며칠만 살면 모두들 왜 이리 버릇이 나빠질까...이상한 일이다.ㅋㅋ

내 손바닥이 꿀보다 맛있나? ㅎㅎ

 

여름이는 약을 먹이려면 걱정부터 앞선다. 저녀석이 또 버둥거리면 어쩌나 해서...

물과 꿀에 갠 분홍색 가루약을 바늘 없는 주사기에 넣어 입에 쏘아줘야한다. 안먹으려고 꾀를 부리는

까다로운 여름이를 다루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매번 성공!!이다. 앗싸~

그래도 먹일 때마다 걱정은 태산이다. 이번에도 성공일까? 하면서... 난 아무래도 너무 소심해.ㅠㅠ

무슨 일 앞에서 걱정부터 앞선다.ㅠ~

 

하루종일 타월이나 자기 이불속에서 나오지도 않던 여름이가

내가 엉덩이만 떼면 쪼르르르 따라 나선다. 자기 전용 과자를 달라고 쫓아다니는 거다.

끝도 없이 물어나른다. 많이도 먹는다. 이런 모습 처음 보는 일이다.

아들네가 여행 떠나기전에 비실대는 여름이가 걱정스러워서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췄다더니

원기 회복에 입맛이 돌아왔나 보다. 잘 된 일이다.

 

그대신 겨울이가 입맛이 없나보다. 약을 먹기위한 먹이를 먹는 것 외에는 먹는 것이 없다.

꿀돼지라는 별명이 붙은 겨울이가 웬일인지 몰라 은근히 걱정이다.

그래서 아침으로 아파트를 두바퀴 산책한다. 입맛 땡기고 생기나라고...물론 비실이 여름이는 제외.ㅋㅋ

 

누워서 티비를 보면, 여름이는 영낙없이 내 배 위로 올라와 앉아 있다. 아예 잠을 자기도 한다.

엎드려 있으면 등 위에 올라 앉는다. 이상한 버릇.ㅋㅋ

저녁이 되면 다시 약을 먹이느라 한바탕 긴장을 하고...

 

어제 낮에 아드님이 문자를 보냈다. 매일 한 번씩 문자 보낸다더니 왜 소식이 없냐구..

아니? 그제 간 애들이 뭔 재촉이래?  저녁에 일기 써야지 오전에 쓰는 일기도 있남?ㅋㅋ

 

자려고 소등을 하면, 먹이를 물어다가 설치미술 작품구상에 열중하는 두 녀석.

나는 이렇게 겨울이랑 여름이랑... 여름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다.

처서라더니,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선선하다.

세월 참 빠르다. 계절은 참으로 정직하다.

 

2011. 8. 23 일기 끝

 

전등을 켜려고 일어섰더니, 여름이가 코~ 자다가 발딱 일어나서 내 곁으로 와서

자리잡고 앉아 몸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누웠다. 얘는 내가 어디로 갈까봐 겁이나나? ㅠㅠ

심장병 앓고 있는 늙은 여름이 겨울이가 오래오래 이렇게라도 함께 살아줬으면 좋겠다.

 

갑자기 오두막 가을이가 생각 난다.

또....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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