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설경이 궁금해서 오랜만에 쏘공원엘 나갔습니다.
바깥 나들이 준비를 단단히 하려고 세탁해 둔 내의를 한겹 껴입었지요.
내가 내의를 입은 것은 작년 겨울부터랍니다.
'지공승'을 아시나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승객 자격을 정부가 허락해준 사람들입니다.
나는 지공승 대접을 자처한 일은 없지만, 내가 내의를 입게 된 해가 바로 지공승 자격증 받은 해입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 쯤 묵은 사람인지 계산이 되지요? 하하핫
내의를 입게 된 연유도 참으로 긴긴 사연이 있습죠.
타향살이 마흔다섯해 만에 고향엘 갔더니, 그것도 나무들이 모두 헐벗는 가을이 저무는 때 였답니다.
청바지 속에 아무것도 안입은-물론 기본은 입었지롱요- 내 벌건 맨다리를 본 언니가 내의 입으라고 성화를 댑니다.
울 엄마 살아 계실 적엔 내 나이 쉰을 갓 넘었을 때인데도, 울엄마는 어찌나 겨울만 되면 내의 타령을 하시던지....
이젠, 내나이에 아홉살 더 보탠 우리 언니가 울엄마처럼 또 그렇게 성화입니다그려.
"내의 입으면 난 가려워서 안된단 말야~"
그러면서 그해 가을, 겨울을 고향에서 보냈습니다. 울언니 걱정거리인 내 멀건 다리는 말짱하니
그 해 겨울을 잘 넘겼습니다. 내 고향은 내륙지방이라 겨울엔 어찌나 추위가 매서운지, 슬슬~ 내의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ㅋㅋ
그 다음 해 겨울이 되었습죠. 내가 지공승 나이가 되었을 때 말입니다.
언니에게 내의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가 보라빛 감도는 분홍 내의를 사다 주면서
" 니가 싫어 할까봐, 아가씨들이 입는 얇고 보드랍고 다리는 길고 소매는 7부인 신식으로 사왔어."
하더라고요. 하하핫! 사다 주는 사람이 얻어 입는 주제에게 눈치 보면서 건내준 내의였습니다요.
그렇게 내의를 입게 되었다우.
내 나이 예순 하고도 다섯 해가 지난 겨울부터....ㅠㅠ
올 겨울에도 언니가 사준 그 보라빛 섞인 분홍 내의를 입고 나들이를 갑니다.
내게 있는 내의라고는 단 한 벌,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고향에 가게 되면, 울언니에게 빨강색 내의 한 벌 사달라고 해야 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울언니는 좋아서 얼른 달려가 톡톡하고 따순 내의를 사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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