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까비 이야기

eunbee~ 2010. 9. 25. 06:54

 

 

빛에 노출되면 빨갛게 변하는 까비의 푸른눈. 요상하게 뜨고 있지요?

내가 컴앞에 앉아있으면 내앞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서 방해를 놔요.

자기랑 놀자고...아니면 맛있는 거 달라고...

어느때는 저 좁은 컴 앞 공간에 눕기까지 합니다.

이집에서 까비에게 제일 만만한게 나예요.ㅠㅠ

 

까비는 은비가 세 살 되던 해, 은비의 세 살 생일 선물로 입양해 온 고양이랍니다.

파리에서 승용차로 1시간쯤 가야하는, 루앙강이 마을을 지나고,

정겨운 시냇물이 흘러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모레 쉬르 루앙Moret sur Loing이라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데리고 왔답니다.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까비의 고향에 머무르며 그림을 그렸다는 매우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이제 까비 나이 아홉살.

그동안 샤똥을 예닐곱 차례 낳았지요.

Chat Sacre de Birmanie라는 순종 까비가, 제 값도 못한다고 은비엄마는 나무랩니다.

 

 

낭군님 고양이를 고를 때, 학벌을 보랬나, 재벌을 보랬나,

그냥 겉모습만 근사한 고양이를 만나라고 그렇게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염불 외건만,

어디서 저렇게 못생긴 까망 잡고양이를 남자친구로 맞이해서

샤똥들은 모두 껌댕이들만 낳았다고....ㅋㅋ

 

 

얘들 아빠고양이는 툭하면 까비네집 창문아래에 와서 야웅야웅 까비를 꼬셔냅니다.

까비가 사랑냄새를 피우기 시작하면, 피임약을 먹이느라 이집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어쩌다가 실패하면, 까망고양이가 꼬시러 오기전에 까비가 먼저 나가서

남자친구랑 사랑을 나눕니다.

 

 

이 애기들을 잉태하던 날은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이었답니다.

은비메메는 하루종일 보이지않는 까비를 찾으러 온 동네방네 샅샅이 뒤지며 다녔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은비도 비를 맞으며 담위에 올라가서 담장너머 남의 집까지 살펴도 까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맞은 새앙쥐가 된 은비는 마침내 승용차 밑에서 못생긴 남자친구랑 함께 있는 까비를 발견했지요.

까비는 은비를 보더니 야웅야웅 하면서 은비에게 안겨서 집으로 왔답니다.

까비의 허니문 여행은 비오는 날의 주차장 승용차 아래였습니다.ㅎㅎ

멀지도 않은 허니문여행길이구먼, 하루종일을 헤매도 찾을 수가 없었으니....ㅋㅋ

 

 

은비가 자기엄마에게 까비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지요.

은비엄마 또 한바탕 끌탕이 쏟아졌습니다.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냐구... 학벌을 보랬니, 재벌을 따지랬니, 꼴새나 보고 친구 삼으랬더니

그 쉬운 '꼴 구별 하기'도 못해서 이동네에서 제일 못생긴 그 꺼멍이하고 맨날 결혼을 해? 했답니다.

그래도 까비는 일편 단심입니다.

엄마 아빠가 정해줘서 결혼한 이후부터는 애완동물센터에 갇혀있는 첫남편은 만날 수도 없고

동네에서 눈맞은 두번째 남자친구랑 일편단심 몇번째의 애기를 낳았습니다.

얼마나 착하고 순결한 까비인지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까비답게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요.ㅎ~

 

 

은비랑 은비메메랑 세 시간에 걸쳐 분만을 도와 까망이 세 녀석과 점백이 한 녀석이 태어났지요.

태어난지 50일이 채 되기도 전에 세 녀석이 입양되었습니다.

귀한 샤똥을 예쁘게 길러서 공짜로 주어서 고맙다며 어떤 사람은 케익선물을 들고 왔고

어떤 이는 바토무슈 승선권을 선물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은비메메는 케익도 먹기싫고, 유람선도 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ㅠ

 

그동안 샤똥 네 녀석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그들이 노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 시름이 다 사라지고, 천국에서 천사들과 노는 것 같았답니다.

아기고양이 네 마리랑 놀아 본 사람은 알거예요. 뭔 소리인지...

 

 

남은 애기는 시월에 데려간다해서, 한시름 놓았더니, 어머나~그저께 데려가 버렸지 뭐예요.ㅠㅠ

내가 서 있으면, 다리로 타고 올라와 어깨 위에 올라 앉아서 장난을 치던 여자애기고양이..

정말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입니다.

 

고양이 입양할 사람이 온다는 시간엔 나는 항상 산책을 나갑니다.

너무 슬플까봐...

 

 

남아 있던 애기고양이 한 마리까지 모두 가 버린 후, 까비는 쓸쓸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야웅야웅 슬픈 소리로 애기들을 찾습니다.

먹새좋던 입맛도 다 달아났나봅니다. 먹지도 않고 밤에도 낮에도 생각이 날때마다 야웅야웅 부릅니다.

 

까비가 좋아하는 참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여줍니다.

까비에게 밥을 떠 먹이는 것은 내버릇이고, 내버릇이 까비버릇을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또 은비가 끌탕을 합니다. 까비 버릇 나빠진다고....

은비를 떠 먹여줄 수 없으니, 까비라도 떠 먹이는 거라며, 한사코 고양이를 젓가락으로 밥 먹입니다.

버릇이 나빠지긴 했습니다. 자기가 안먹고 떠 먹여줄 때를 기다린답니다.ㅎㅎㅎ

맛있는 것 안주면, 다리를 살짝 물기도 하지요. 은비메메는 고양이 밥입니다.

 

까비가 꿈속에서라도 애기고양이들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애기고양이들과 행복하게 숨바꼭질하는 꿈을 꾸며, 오늘 밤에는 야웅야웅 하지말고 포근히 잠들기를 빕니다.

 

내가 너무 오래도록 상심할까봐, 큰딸은 내게 말했지요.

고양이도 어느정도 자라면, 엄마와 새끼들로서가 아니고, 각자의 자기 영역 다툼이 벌어져.

그러니 갈 곳으로 잘 들 간거야~

 

그것이 고양이의 숙명이라면, 나도 체념을 해야겠습니다.

 

 

까비의 고향, 모레 쉬르 루앙 Moret-Sur-Loing    **사진은 빌려 온 것이에욤**

 

 ***

 

 아래 그림은,

 까비의 고향에서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고, 조용하고 쓸쓸히 생을 마쳤다는

인상파 화가 시슬리Alfred Sisley (1839-1899) 의 그림입니다.

'모레Moret의 오월 아침'이란 그림인데, 시슬리는 모네, 피사로에 비견되는 인상파화가랍니다.

그는 일 드 프랑스의 자연속에서 물과 숲의 반짝임을 그린 수작을 많이 남겼답니다.

 

 잠시 보았던 까비의 고향 마을이 내게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까비의 고향 마을이니, 그림을 더 올릴게요.^&^

 

 

Banks of the Loing towards Moret

A February Morning at Moret-sur-L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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