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간지 2주만에 다시 파리로 와야했습니다.
파리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리무진버스에 올라 인천공항으로 갔지요.
월요일에 출발했기 때문에 내혼자 씩씩하고 용감하게 출발부터 도착까지
완벽한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려고 맘을 굳게 먹었습니다.
아들에게도 딸들에게도 아무도 공항에 나오면 안된다고 독립선언문을 띄웠습니다.
인천공항,
언제 어떤 기분상태에서 봐도 정말 멋진 곳.
깔끔하고 쾌적하고 편리하고 친절하고.....
우와~ 내가 이렇게 멋진 공항을 가진 잘사는 나라의 국민이구나 하면서 혼자 뻐겨보는 행복감.^*^
어깨 으쓱거리며 마음은 깃털을 달고 홍~홍~ 콧소리 날리며.....
KAL901편에 탑승
옆자리 윈도우엔 눈치를 보아하니 신혼부부.
달콤한 꿀냄새가 확~풍겨오는 닭살돋고 손가락 오그라드는 허니문 커풀.
나는 언제부턴가 윈도우석을 마다하고 아일aisle을 택합니다.
게을러지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호기심천국 교실에서 낙제생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지요.
그래도 몇 년전까지만해도 창밖을 내려다보며 일곱시간의 긴긴 황혼을 보던 시절도 있었다우.
창밖을 내려다보며 어린왕자를 쓴 생떽쥐베리가 왜 그 책을 썼는지 이해를 할 수 있을 만큼
같은 상상에 몰입된 적도 있었습죠. 헤헤
그런데 이젠 통로쪽에 앉아 그냥 일어나서 나다니기 좋고 편한 자리를 고수하는 거지요.
낭만이 많이 바래고 없어졌어요.ㅠㅠ 많이 타락한거죠. 하하
비행이 끝나갈 무렵 옆자리의 신랑이 말을 걸었습니다.
일본아줌마인줄 알았대요. 차분하고 조용하게 앉아 여행을 해서....ㅎㅎ
한국아줌마 분위기가 전혀 없었대나요?
그럼 혼자 가면서, 떠들거나 노래부르고 갈 수는 없잖아요? 차분하게 앉아있을 수 밖에....
덕분에 영화를 몇편이나 봤는지, 기내에서 보는 영화는 제목을 외울 수가 없어요. 왜그런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죠지 크루니가 비행기를 타고 사업차 하도 많이 돌아다녀서 100만 마일의 적립 마일리지가 쌓이도록
다녔는데, 뭐 그의 인생은 외롭고 허망하다는 스토리도 봤구요. 로버트 드 니로도 봤구 또.....
아무튼 너댓편을 봤지요.
보다가 시시하면 이리저리 바꿔가며....
샤를르 드 골 공항에 내렸습니다.
서울의 한낮 두 시에 떠나, 파리의 저녁 여섯 시에 땅을 밟았습니다.
드 골 공항.
입국검사창구는 열개 쯤 있더구먼, 문열고 손님 맞이하는 창구는 세 군데 뿐.
한 곳은 자기네 나라 사람 맞이하고,
한 곳은 유러피언 패스포트 소지자 맞이하고,
한 곳은 기타등등 나라의 패스포트 소지자들을 맞이하는 곳,
그런데 그 우리가 선 줄은 꼬불꼬불 몇 십미터가 되는 긴~긴 줄.
아니? 저 유러피언 줄이나 자기네 나라 줄이나 뭐 그런데를 함께 이용하게 하던지
아니면 창구를 더 많이 개방해서 맞이하던지.....정말 싫다 싫어 였습니다.
항상 그래요. 걔네들은....
옆에 서 있는 신혼부부에게 말했지요.
프랑스애들은 바본가봐요. 맨날 이래요. 인건비 아끼느라 그렇겠지만.
한참이나 긴 줄 끝에서 저 문을 빠져나가길 기다리다가 드디어 나왔죠. 서울에서 오는 짐은
몇번에서 찾으면 될까요? 드 골 공항 직원에게 물었지요. 저 전광판에 있으니 가서 봐요.
에라이~ 녀석아, 내가 그 전광판에서 찾기 싫어서 너에게 쉽고 빠르려고 물어본거야, 임마!!
내가 또 그 신혼부부에게 말했죠. 프랑스애들은 진짜 바보같아요. 하하하하
인천공항 직원이었다면, 얼마나 친절했을지....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친절할 곳에서만 친절한 것이 탈이지요.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오기 전에 가방에서 유로화를 꺼내 바지주머니에 잘 넣으며.
오늘은 혼자 메트로를 타고 씩씩하게 집으로 가는 거야. 잘 해야 돼. 다짐하면서 용감하게 카트를 밀었습니다.
엄마~~ 환한 웃음과 함께 두 팔을 벌리며 큰따님이 나를 보고 반깁니다.
엄마~~ 이게 얼마만이야, 얼굴도 몰라보겠네. 이 발언은 공항에서 이별한지 2주만에 다시 공항에서 만나는
우리의 짓거리?를 두고하는 죠크성 발언입니다. ㅎㅎㅎ
인디펜던스를 선언하셨다면서요? 하면서 사뭇 비아냥거립니다.
그려~ 아무도 나오지 말랬더니 어인일인감?
아니라우, 난 퇴근길에 메트로를 잘못타서 시내로 못가고 그냥 이리로 왔을 뿐, 이제 다시 올바르게 타고
집으로 갈거니까, 엄마는 인디펜던트하시고 혼자 잘 가시어요. 하하하
그런데 이게 웬일.
공항에서 메트로를 타러 가는 길은 꼬불꼬불 수만리 되시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한번타고, 또 꼬불꼬불 이리저리, 에스커레이터를 두번 타고 다시 꼬불꼬불.
앗뿔사!! 이젠 30여 계단을 막무가내로 그냥 내려가야하는 기막힌 현실.
무려 22Kg의 가방을 들고 그 계단을 내려가라니....이거, 국제 공항 맞어? 어느놈이야, 이렇게 무례한 놈이!!!
인천공항이 그리웠습니다. 그 투명하고 맑은 엘리베이터, 그 깔끔하고 편리한 모든 시설들.
고객의 동선에 맞는 쉬운 길찾기, 비행기에서 내리면, 쪼르르르르~미끄러져 달려와 우리를 낼름 태우고
짐찾는 곳까지 실어다 주는 예쁜 꼬마 기차. 아이구~ 인천공항이 그리워.
그래도 큰딸이 나를 마중나와서 그 기막힌 현실을 즐거운 수다타임으로 메꾸었습니다.
메트로는 제시간에 오지도 않습니다.
뭔 일이 생겼다네요. 파리시내에서 사건이 발생해서 출발역에서 출발을 지연하고 있답니다.
드 골공항이 출발지거든요. 안내 방송이 나오고도 10분을 더 기다리라더니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2분을
기다리니 메트로가 슬슬 기어나왔습니다. 에고메~ 메트로 안은 시내로 갈 수록 냄새가 고약해집니다.
모두들 향수좀 팍팍 뿌리고 오지, 뭔 냄새가 이리도 고약하대?
그 와중에도 있을 건 다 있습니다요. 아코디언을 눌러대며 노래부르는 털북숭이 아저씨의 노랫가락을
한곡조 감상했지요. 큰따님은 에휴~ 저 아저씨 또 시끄럽게 군다.
왜그래, 그래도 이 안에 있는 여행자 승객들은 낭만으로 알고 열심히 경청할텐데.....
모든 건 상대적입니다.
이렇게 파리땅을 밟았습니다.
인천공항에서의 행복한 인상을 파리 샤를르 드 골 공항에서 몽땅 구기고
공항의 엘레지elégie를 끝냈습니다.
작은 따님집에 들어서니, 작은따님의 제 1성, 엄마~ 나 얼굴 살 많이 빠졌지?
에이그~~ 2주일만에 참 많이 수척해졌구나.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고 2주전 그대로였습니다,- 쉿!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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