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08

바람 몰아치는 갑판에서..

eunbee~ 2008. 9. 28. 18:05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는 1시간 40여분 동안 이어진다.

우리가 간 날은 어찌나 바람이 세차게 불던지,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은 바람에 쓸려 나갈 것만 같았다.

선상위의 무드있는 런치타임이라고 해서, 선상 뷔페의 메뉴를 보니, 뭐 그저 그래서 대강 몇개를

접시에 올려와, 창밖을 바라보며 식사를 마치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몇 십분이 지나도 우리 일행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모두 아래 층에서 창을 통해 피요르 감상을

하나보다.

 

한무리의 이른노년들이 왁자하니 신바람나게 올라 온다.

건장하게 생긴 50대 중반의 여인들이 모두 쾌활한 웃음을 얼굴 가득 피워올리고, 데크 언저리에

나란히 선다. 먼나라에서 온 듯, 중무장의 채비를 갖추고, 남자 여자 알맞은 비율로 10여명의 여행객들은

행복에 겨운 기분이 넘쳐흐른다.

보기가 참 좋다.

뱃머리 부분에 서 있는 내 곁으로, 뼈대가 굵은 여인이 다가서며 내게 말을 건낸다.

오래도록 추운 바람속에서  혼자 있는 내게 관심이 쏠렸나보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요."

"오~ 멀리서 왔군요. 아시아에 있는 나라.."

"네, 그러시는 그대는?"

"우리? 우리는 오스트렐리아 브리스베인에서 왔어요."

"브리스베인? 그곳이 어디쯤인가요?"

"퀸스랜드에 있지요."

"퀸스랜드? 내가 어제 그곳에서 자고 왔는데...?  거기는 뉴질랜드 남섬, 이곳에서 가까운 곳이 아닌가요?"

"호호호~ 남섬에 있는 퀸스랜드에서 잤다구요? 그대가 어제밤 묵은 곳은 퀸스타운이고, 우리는 퀸스랜드에서

왔다우. 호호호~"

"오~ 그렇군요. 내가 잔 곳은 퀸스타운이었군요~"  -잠시 내 무식이 탄로 났던 순간-ㅋㅋ

"다음 여행지는 어디예요?"

"우리는 내일 시드니로 가요."

그때 옆에 있는 다른 여인이, 한마디 거든다.

"시드니? 어머~ 난 그곳 싫어. 그곳은 사람이 많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시드니가 사람이 많아서 싫다는걸 보니, 서울에 오면 이 여인은 아마도 기절한채 영영 못 일어날 것같다.

"좋은 여행 되세요."

"당신두요~"

 

바람이 너무나 세차게 불어대는 통에, 뱃전을 꽉 잡지 않으면 날아가 버릴 것같은 갑판위에서,

덩치 큰 오스트렐리아 50대 중반의 여인들과 잠시 수다를 떨다가, 쏟아지는 폭포물을 함빡 뒤집어 쓰고는

깔깔거리며 헤어졌다.

여행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즐거움이 넘친다.

 

크루즈 터미널에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났다.

나에게 즐거운 여행을 당부하며 이름 모를 여인은 자기길을 떠난다.

그들 일행이 사라지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

잠시 아쉬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간다.

여행에서 만나는 '순간의 인연들'에게서 늘 느끼는 그런 야릇한, 사람에 대한 사랑같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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