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6 베르사유 정원에서
내 나이 서른 후반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청주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 옆자리에 홀쭉한 청년이 앉았다.
그는 날카롭고 험악한 인상이지만 어딘가 허술하고 초라해 보였으며, 외로운 그림자가 덮씌워져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잠시 후 그는 바늘쌈에서 굵은 바늘을 꺼내들고는 자기 손을 찌르는 시늉을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굵은 대바늘은 무방비의 내겐 공포였다.
나는 속으로 떨리고 무서웠지만, 무서움을 감추고 말을 건냈다.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지만
가늘게 손을 떨며 자학처럼 하고 있는 그 행동에는 너무도 나약한 안쓰러움도 숨어있어
그것을 느끼게 된 내게는 아지못할 측은지심이 공포보다 더 크게 밀려왔다.
그는 내가 이끌어가는 이야기속으로 들어와 나중에는 웃음까지 띄우며 편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 또한 내게 공포를 주었던 그 굵은 바늘의 섬뜩함에서 어느새 놓여날 수 있었다.
무서움을 감추고 마음을 열어 다정하게 말을 붙이기를 잘했다는 안도감이 나를 편안케해
먼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세상이 지금처럼 험악하지도 않았거니와,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내게 그러한 용기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하하핫
사교적이던 내 성격이 대중적인 것을 기피하는 지금,
나이들수록 외향은 내향으로
다수는 소수로
다양함은 단순함으로...
그것이 좋다.ㅎㅎㅎ
9. 26. 베르사유 그랑 까날
그럴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갓난아기로 돌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던 길 돌아서지 말아야겠지
그동안 떠돈 세월의 조각들
여기저기
빨래처럼 펄럭이누나
詩 - 고은 < 두고 온 시 >중에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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