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취한 배 - Arthur Rimbaud

eunbee~ 2014. 6. 4. 08:01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Arthur Rimbaud 1854-1891

데뷔 1869 시 '고아들의 새해 선물'



파리 6구, Rue Ferou 골목길 담장벽에는 랭보의 시 [취한 배] 전문이 쓰여져 있습니다.

25연을 5연 씩 나누어 긴 벽에 새겨 두었지요. 벽 위의 시를 보자 감동이 솟더라고요.

어이하여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읽어서 느낀 감동도 아니건만.





입맛에 맞는 번역시 찾느라 삼만리 했다우. 번역자에 따라 맛이 다르잖아요.

복사할 수 있는 좋은 시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어요. 내가 검색에 잼병이거든요.

더구나 좋다 싶은 것이 있으면 역자의 이름이 없는 거예요.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거지요.

아래 시(번역)는 어떤가요? 소개합니다.


         


               취한 배


                                아르튀르 랭보

               유유한 강물을 타고 내려올 적에
               이젠 선원들에게 맡겨져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어.
               형형색색 말뚝에 발가벗긴 채 못박아놓고서
               인디언들 요란스레 그들을 공격했었지.

               플라망드르산 밀이나 영국산 목화를 져 나르는
               선원들이야 내 아랑곳하지 않았지.
                나의 선원들과 더불어 그 소동이 끝나자
                강물은 내 마음대로 흐르도록 날 버려두었지.

               격렬한 밀물 요동 속에 밀리며
               어느 겨울 아이들 머리보다도 더 귀멀었던 나,
               나는 헤쳐나갔지. 그리고 출범한 반도들은
               그보다 더 기승하는 소동을 겪은 적이 없었다.

               폭풍우 해상에서 잠깨는 날 축성했고
               콜크마개보다 더 가벼이 떠돌며, 영원한 희생자들의
               흔들 배라고 불리우는 물결 출렁이는 대로 난 춤추었네.
               회한 없이! 열 날 밤을, 초롱불들의 흐리멍텅한 눈!

               초록색 물은 시큼한 사과 속살처럼
               어린애들에게보다 더 부드럽게 내 전나무 선체에 스며들고
               청포도주 얼룩들과 토해낸 찌꺼기들이
               키와 갈고리 닻에 흩어지며 날 씻었네.

               이제 그때부터 초록 창공을 탐식하는, 젖빛의, 별들이 잠긴,
               바다의 시 속에서 난 헤엄쳤네.
               거기엔 해쓱하고 넋 잃은 부유물처럼
               이따금 상념에 잠긴 익사체가 내리흐르고,

               거기엔, 갑자기 푸르스름한 색깔들 물들이며, 태양의 불그스름한
               번득거림 아래에 느릿한 착란과 리듬,
               알콜보다 더 진하게, 우리의 리라보다도 더 드넓게
               사랑의 씁쓸한 바알간 얼룩들 술렁이며 삭아가네!

               난 알고 있다네, 섬광으로 찢어지는 하늘들, 물기둥들,
               격랑들 그리고 해류들을, 난 알고 있다네, 저녁녘,
               비둘기의 무리처럼 비약하는 새벽,
               또 난 가끔 보았다네, 인간이 본다고 믿었던 것을!

               난 보았네, 신비로운 공포 점점이 박힌 나지막한 해,
               머나먼 고대 연극의 배우들 모양의
               길다란 보랏빛 응결체들들 비추는 태양을
               저 멀리 출렁이는 수면을 굴리는 물결들을!

               난 꿈꾸었네, 현란스레 눈 덮힌 푸른 밤,
               서서히 바다 위로 복받쳐 오르는 애무인 양
               놀라운 수액의 순환
               그리고 노릇파릇 깨어나 노래하는 인광들을!

               내 여러 날 쫓아다녔지. 히스테릭한 암소떼처럼
               넘실넘실 암소들을 덮치는 큰 파도들.
               성모 마리아의 빛나는 발이라도
               숨가쁘게 헐떡이는 대양을 억누르진 못했을 거야!

               짐작하다시피 난 부딪쳤네, 엄청난 플로리다주와,
               꽃무리 속에 인간의 피부를 한 표범들 눈초리가 엉켜 있었고
               수레바퀴 테처럼 탱탱한 무지개들,
               수평선 아래 바다의 청록색 양떼들과 어우러지고 있었지!

               난 보았네, 어마어마한 늪들이 통발처럼 삭아가는 것을,
               거기엔 골풀들 안에서 거대한 바다괴물이 통째로 썩어가고!
               바다의 고요 한가운데에서 부서지는 물의 붕괴,
               그리고 심연을 향해 카르릉거리는 원방의 물결들을!

               빙하들, 은빛 태양들, 진주모빛 물결들, 잉걸불처럼 바알간 하늘들!
               갈색 물구비 복판에 꼴사나운 좌초물들,
               거기엔 빈대들이 할퀴어버린 거대한 뱀들
               시커먼 냄새 풍기며 비틀린 나무들처럼 쓰러져가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리, 푸른 물결의 그 만새기들,
               그 황금색 물고기들 노래하는 물고기들을,

               꽃모양 물거품들이 나의 출범을 어르고
               형언할 수 없는 바람들은 시시각각 날개치듯 날 스쳤네.

               이따금 극지와 지대들에 지친 순교자처럼
               바다는 흐느낌으로 내 몸을 부드러이 흔들어대며
               노란 통풍창 뚫린 그늘의 꽃들을 내게로 올려보내고
               난 거기 쪼그리고 있었네, 무릎꿇고 거의 넋 잃은 채.

               섬처럼 내 뱃전 위로 달라붙은 하소연을 뿌리치고,
               금빛눈을 빈정거리는 새들의 똥무더기를 가르며
               나는 떠내려갔네. 어렴풋이 날 스쳐간 혼백들
               다시금 뒷전으로 잠잠히 가라앉더라!

               해서 난, 길 잃은 배되어 머리카락에 휘감기듯
               폭풍에 말려 새도 없는 창공으로 내던져졌지.
               모니토르 군함들도 한스 조합의 범선들도
               물에 취한 내 몸뚱아리 건지지 못했을 나 :

               자유로이 보랏빛 안개를 타고, 피어올라
               불그스름한 하늘을 돌파할 나, 벽을 돌파하듯
               훌륭한 시인들에 바치는 별미의 과일쨈처럼,
               태양의 地衣들이며 창공의 넝마들을 걸친 나,

               반달 전구들 점점이 박혀, 미쳐 날뛰는 판자처럼,
               검은 해마들 호송받으며 달음질치는 나,
               군데군데 타오르는 구덩이 난 군청색 하늘을
               7월들이 몽둥이 삿대질로 무너뜨릴 때,

               50리 밖에서 발정하는 베헤못과 어마어마한 말스트롬 돌풍이
               우는 소리를 느끼며 전율하는 나,
               푸르른 부동으로 영구히 실을 잣는 자, 나는
               고대 흉벽들이 늘어선 유럽을 애석해하노라!

               난 보았네, 항성의 군도들을! 그리고 열광하는 그곳 하늘
               항해자들에게 열려 있는 섬들을,
               -바로 이 끝없이 깊은 밤들 사이에 그대 잠들어 달아나는 건가
               백만의 황금새들, 오 미래의 활력이여?

               하지만, 정말이지, 난 너무나도 흐느껴 울었네! 여명들은 비통하고
               달이 온통 잔혹하고 해는 온통 가혹하고,
               쓰디쓴 사랑은 취기 어린 마비상태로 날 부풀렸네.
               오 나의 용골을 터뜨리라! 오 날 바다로 가도록 하라!

               내가 유럽의 물 갈구한다면 그것은 바로
               검고 차가운 웅덩이, 거기엔 향긋한 황혼을 향해
               슬픔에 겨워 쇠잔한 한 아이 쪼그리고
               가벼운 배 한 척 5월의 나비처럼 떠 있는 곳.

               오 물결들이여, 그대들 무기력함에 휩싸인 나,
               이제는 목화 짐꾼들로부터 그들의 자국 지울 수 없네,
               깃발들과 불길들의 오만함 가로지를 수도 없네,
               이제는 부교들의 험악한 눈들 아래에서 헤엄칠 수도 없네.

               - 번역 : 정경미







뤽상부르 미술관 정문 앞 

길 건너 골목길은 생 쉴피스 성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뤽상부르 정원이나 생 쉴피스 성당을 찾는 분은 랭보의 시 벽을 만나 보세요.

알 수 없는 감동에 젖을 거예요. 장담합니다.ㅎ



골목 끝은 생 쉴피스 성당.

골목길 왼쪽 벽이 랭보의 [취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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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의 알렉상드랭 4행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랭보는 시를 1871년 여름에 고향 샤를빌(Charleville)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랭보의 나이 16세였다. 랭보는 이 시를 파리의 베를렌에게 보냈고 베를렌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이 시를 통해 랭보는 파리의 문단에 성공적으로 입성했지만, 정작 서둘러 출판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취한 배」는 1883년 베를렌이 잡지에 기고한 「저주받은 시인들」이라는 글에 시 전문을 소개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졌다.


작품은 시인의 내면을 향한 항해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모티프가 겹쳐 있다. 그 하나는 매우 분명한 것으로 여행에 관한 것, 혹은 세상으로부터 탈주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액체적인 이미지가 지배한다. 그 첫 번째 형태는 흘러내리는 강이고, 그 다음엔 대양이다. 두 번째 포착하기 좀 더 어려운 모티프는 시인의 시적인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랭보는 그가 이전에 지은 시들을 종합하면서도 보다 높은 시적 단계에 도달하기를 지향하고 있었는데, 이 시는 그 야망을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서는 랭보의 본질적인 주제들인, 자유, 도취, 환멸, 체념 등의 과정이 웅장한 규모로 그려지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시에서 바다를 노래하고 있는 랭보가 정작 그때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랭보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이나 한 번도 보지 못한 바다의 이미지들을 노래했다. 그리고 시 속에서 랭보는 감히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은 것들을 나는 보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 시는 견자(見者, voyant) 시인이라는 신화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의 이미지들이 랭보의 독창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많은 연구들을 통해 지적되어 왔다. 이 시의 원천으로는 랭보가 보았던 그림 잡지, 쥘 베른과 페니모어 쿠퍼 등 소설가들의 작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시에 어린아이의 비유가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랭보는 그가 읽거나 본 이미지들을 독창적으로 종합하여 고유한 시적 이미지로 가공해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풍부하고 신선한 이미지, 탁월한 표현력을 가진 이 시는 다양한 반응을 불러왔다. 베를렌은 랭보의 가장 훌륭한 시로 격찬해 마지않았고 말라르메도 이 시에서 랭보의 천재성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아라공은 여기에서 랭보의 재능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보들레르 등 랭보의 모델이 되는 시인들을 연상시키는 점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폴 발레리도 이 시가 너무 지시적이고 예측가능하다고 여겨서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현대에 들어서도 랭보의 시 세계에서 이 시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취한 배 [Le Bateau ivre]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2013.11, 인문과교양)


랭보

몇 살 적 랭보일까요.


아래 더보기 글들은 긴 글들입니다. 

이참에 내 공부를 위해 옮겨놓은 것이니, 여유로운 분은 참고로 읽으심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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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랭보는 프랑스 북동부의 아르덴 지방에서 육군 대위와 그 지방 농부의 딸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1살 위였고, 여동생은 2명이었다. 1860년 랭보 대위는 아내와 헤어졌고, 아이들은 어머니가 키우게 되었다. 일찍부터 남다른 지적 능력을 보인 아르튀르는 8세 때부터 타고난 글재주를 보였다. 나중에 그는 샤를빌 중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되었다. 그는 특히 라틴어 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1870년 8월에는 경시대회에서 라틴어 시로 1등상을 받았다. 그가 처음 발표한 시는 1870년 1월 〈르뷔 푸르 투스 La Revue pour Tous〉에 실렸다.

1870년 7월에 일어난 프랑스-프로이센전쟁 때문에 그의 정식 교육은 막을 내렸다. 8월에 그는 파리로 달아났지만, 차표 없이 여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며칠 동안 감옥에서 지냈다. 그의 옛날 은사가 벌금을 대신 물어주고 그를 두에로 보냈다. 두에에서 그는 국민군에 들어갔다. 10월에 그는 다시 사라져, 침략군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를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는 다시 두에에 도착하여 2주일 동안 자유와 굶주림과 거친 생활 속에서 쓴 시들을 다듬었다. 삶과 자유 속에서 느끼는 천진난만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들은 그가 처음으로 쓴 완전히 독창적인 작품이다. 어머니의 고발로 그는 다시 경찰에 잡혔지만, 1871년 2월 그는 손목시계를 팔아 다시 파리로 가서 2주일 동안 거의 굶다시피하며 보냈다.

반항과 시적 환상

3월초에 그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전에 쓴 시들을 가짜라고 내팽개치고, 삶에 대한 혐오감과 순진무구한 세계로 달아나고 싶은 욕망, 그리고 선과 악의 투쟁의식을 표현한 거칠고 불경스러운 시를 썼다. 그의 행동도 그가 쓴 시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그는 종교와 도덕 및 온갖 종류의 규율에 대한 의식적인 반항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하루 종일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나날을 보냈다. 동시에 그는 신비주의 철학과 밀교(密敎) 및 마술과 연금술에 대한 책을 읽었고, 2통의 편지(1871. 5. 13, 15)에 표현된 새로운 미학을 형성했다. 특히 2번째 편지는 〈견자(見者)의 편지 Lettres du voyant〉라고 불리는데, 이 제목은 시인이란 무릇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볼 수 있고 개인의 인격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모든 제약과 통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영원한 신의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예언자, 즉 '견자'(voyant)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1871년 8월말 랭보는 샤를빌의 한 문우의 충고에 따라 시인인 폴 베를렌에게 그의 새로운 시를 몇 편 보냈다. 그중에는 각 모음에다 다른 색깔을 부여한 소네트 〈모음 Voyelles〉도 들어 있었다. 베를렌은 이 시들의 탁월함에 깊은 인상을 받고, 랭보에게 여비를 보내어 파리로 초대했다. 갑자기 폭발한 자신감 속에서 랭보는 〈취한 배 Le Bateau ivre〉를 썼다. 이 시는 전통적인 작시법을 따르고 있지만, 깊은 정서적·영적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서 언어구사의 기교가 놀랍고 상징과 은유의 선택이 대담하기 짝이 없다. 이 걸작에서 랭보는 그의 예술의 가장 높은 정점들 중 하나에 도달했다.

1871년 9월 파리에 도착한 랭보는 3개월 동안 베를렌 부부와 함께 지내면서 당대의 유명한 시인들을 거의 다 만났지만, 거만하고 버릇없는 태도와 음탕함으로 베를렌만 제외하고 그들 모두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떠나라는 요구를 받자 술을 퍼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으며, 베를렌과 동성애 관계를 맺어 추문을 일으켰다. 1872년 3월 그는 베를렌이 아내와 화해할 수 있도록 샤를빌로 돌아갔지만, 5월에 다시 베를렌의 부름을 받았다. 베를렌은 이제 그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맹세했다.

이 시기에(1871. 9~1872. 7) 랭보는 운문으로 된 마지막 시를 썼는데, 이 작품은 기법의 자유분방함과 독창성에서 뚜렷한 진보를 보이고 있다. 이때 그는 베를렌이 걸작이라고 격찬한 〈영혼의 사냥 La Chasse spirituelle〉이라는 작품도 썼지만 이 작품의 원고는 베를렌과 랭보가 영국에 갔을 때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부 비평가들은 초월적인 산문시 〈일뤼미나시옹 Illuminations〉도 이 창조적인 시기에 쓴 작품으로 보고 있지만, 랭보 자신은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어떤 시에도 날짜를 적지 않았다.

1872년 7월 베를렌은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런던으로 도망쳐 소호에서 살았다. 랭보는 이곳에서 〈일뤼미나시옹〉의 일부를 썼을지도 모른다. 그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지내러 집으로 돌아갔지만, 1873년 1월 베를렌의 부름을 받았다. 베를렌은 랭보의 동정을 사기 위해 중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연극을 했다. 4월에 랭보는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머물고 있는 샤를빌 근처의 로슈에 있는 농장으로 가서 스스로 "이교도의 책, 또는 흑인의 책"이라고 부른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국 〈지옥에서 보낸 한 철 Une Saison en enfer〉이라는 작품이 되었다. 1개월 뒤, 그 근처에 머물고 있던 베를렌은 랭보를 설득하여 함께 런던으로 갔다. 랭보는 베를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거기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고, 이 죄의식 때문에 베를렌을 가학적일 만큼 잔인하게 다루다가도 금방 그것을 뉘우치고 다정하게 대하곤 했다. 두 사람은 자주 말다툼을 벌였고, 마침내 7월초 베를렌은 랭보와 다툰 뒤 그를 버리고 벨기에로 가버렸다.

그러나 아내와 화해하는 데 실패한 그는 다시 사람을 보내어 랭보를 불러온 다음 함께 런던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했다. 그래도 랭보가 떠나려고 하자 베를렌은 랭보에게 총을 쏘아 손목에 상처를 입히고, 다시 총을 쏘겠다고 위협했다. 베를렌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나중에 재판에서 2년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랭보는 곧 로슈로 돌아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완성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정신이 지옥에 떨어지고 예술과 사랑에서 실패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1873년 가을 벨기에에서 인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파리에서 호평을 받지 못한 데다 인쇄업자에게 돈을 줄 수도 없게 되자, 그는 인쇄된 책을 모두 포기하고 원고와 서류들을 샤를빌에서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이 책을 여러 권 묶은 꾸러미가 1901년에 벨기에의 장서가인 레옹 로소에게 발견되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1915년에야 공표했다.

1874년 2월 랭보는 난폭하고 자유분방한 시인 제르맹 누보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잡역을 하여 번 쥐꼬리만한 돈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랭보는 이때에도 〈일뤼미나시옹〉의 일부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보는 6월에 파리로 돌아갔고, 랭보는 병에 걸렸거나 가난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7월말에 그는 버크셔 주 레딩에 있는 합승마차 매표소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집으로 간 뒤 다시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랭보는 1875년초에 베를렌을 마지막으로 만났고, 이 만남도 역시 격렬한 말다툼으로 끝났다. 랭보가 베를렌에게 〈일뤼미나시옹〉 원고를 준 것은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여행가와 무역상

1875~76년에 랭보는 독일어·아랍어·힌두스타니어·러시아어를 배우고 세상을 구경하러 떠났다. 1879년 6월까지 그는 걸어서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서인도 제도의 네덜란드 식민지 군대에 입대했다가 탈영했고, 독일 서커스단과 함께 스칸디나비아로 갔고, 이집트를 방문했으며, 키프로스 섬에서 노동자로 일했는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매번 병에 걸리거나 다른 어려움을 만나 고통을 겪었다. 1879년 겨울 내내 장티푸스와 싸우고 있을 때 그는 방랑생활을 그만두고 장래계획을 세우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 봄에 키프로스 섬으로 돌아간 그는 건축업자의 현장감독으로 취직했지만, 곧 그 일을 그만두고 다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아덴에서 커피 무역상에게 고용되어 백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에 들어갔다. 이 탐험에 대한 그의 보고서는 프랑스 지리학회 회보(1884. 2)에 실려 약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885년 10월 랭보는 저금을 털어 셰와(에티오피아의 일부)의 왕인 메넬리크 2세에게 무기를 팔기 위한 원정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메넬리크 2세는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인 요한네스 4세와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1888년 중엽에야 겨우 기반을 잡는 데 성공했고, 요한네스 4세가 이듬해 3월에 살해당하고 메넬리크가 황제 자리에 오른 뒤에는 총포 밀수로 얻는 수입이 계속 줄어들었다. 에티오피아에 있는 동안 그는 가장 가난한 원주민만큼 소박하게 살면서, 언젠가는 은퇴하여 느긋하게 살 수 있는 돈을 모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는 인색했지만 남에게는 드러나지 않게 너그러웠고, 그가 원주민 여인과 함께 살던 작은 집은 에티오피아에 사는 유럽인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다.

그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타고난 재주를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에티오피아인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정직성과 성실함으로 추장들의 신뢰까지 얻었으며, 특히 메넬리크의 조카인 하레르 총독은 그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가 이 시기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애정과 지적인 친구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 있다. 1891년 봄 그는 신부감을 찾기 위해 고국에 가서 휴가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해외에서 살고 있던 이 시기에 그는 프랑스에서 시인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베를렌은 〈저주받은 시인들 Les Poètes maudits〉(1884)에서 그에 대해 썼고, 그의 시를 발췌하여 발표했다. 이 시들은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지만 랭보한테서는 소식이 없었다. 랭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에게서 답장도 받지 못한 베를렌은 1886년 상징파의 정기간행물인 〈보그 La Vogue〉에 〈일뤼미나시옹〉이라는 제목의 산문시와 여러 편의 운문시를 '고(故) 아르튀르 랭보'의 작품으로 발표했다. 랭보가 이런 발표에 대해 알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저주받은 시인들〉이 출판된 뒤 자신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1885년 8월에 그는 학교 동창생인 폴 부르드한테서 편지 1통을 받았는데, 부르드는 전위파 시인들 사이에서 그의 시(특히 소네트인 〈모음〉)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1890년 7월에 한 평론지가 보낸 편지(프랑스로 돌아와 새로운 문학운동을 이끌어보라고 권유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가 그의 서류 틈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가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답장을 보내지는 않은 것 같다.

1891년 2월 오른쪽 무릎에 종양이 생겨, 4월초에 하레르를 떠날 때는 해안까지 1주일 걸리는 길을 줄곧 들것에 실려 가야만 했다. 아덴에서 받은 치료는 실패했고 그는 프랑스로 송환되었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직후 그는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거의 위안이 되지 못했고, 그는 여동생 이자벨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좌절감과 절망을 쏟아놓았다. 7월에 로슈로 돌아갔을 때 그를 돌보아준 사람은 이자벨이었다.

그는 여전히 결혼하여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건강은 계속 나빠질 뿐이었다. 1891년 8월 그는 마르세유로 악몽 같은 여행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를 따라간 이자벨은 오빠의 병이 나을 가망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 그러나 랭보는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뎌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이자벨은 그를 설득하여 신부에게 고해를 하게 했다. 신부와 나눈 이 대화는 그에게 새로운 평화를 가져다 주고, 소년 시절의 시적인 상상력을 다시 일깨워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견자'가 되어, 여동생의 말에 따르면 〈일뤼미나시옹〉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보다 훨씬 더 깊이있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근거는 여동생 이자벨의 말일 뿐이고, 이자벨은 여러 가지 점에서 특히 랭보가 에티오피아에서 쓴 편지를 몇 군데 교정했다는 점에서 이미 믿을 수 없는 증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평가

랭보보다 더 열렬한 연구대상이 되거나 근대 시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 시인도 드물다. 그가 독창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작품은 산문시 〈일뤼미나시옹〉인데, 이 시의 형식은 그의 생략법과 난해한 문체를 연구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그는 선배 시인들과는 달리 산문시에서 일화를 이야기하고 서술하는 내용이나 심지어는 묘사적인 내용까지도 모조리 제거해버렸고, 낱말에서 사전적 의미나 논리적 내용을 박탈함으로써 상징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에타 담'(état d'âme:영혼의 상태)이라는 정신상태를 불러일으키는 거의 마술적인 힘을 시에 부여했다. 그는 또한 잠재의식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어린시절의 감각 속에 얼마나 풍부한 시의 재료가 숨어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의 글은 아직도 문명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의 가장 중요한 본질 자체에 대한 오늘날의 반감과 혐오감을 강렬히 표현하고 있다.

En. Starkie 글 | 金碩禧 참조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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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 즉 사회제도, 관습, 종교, 의식 등에 대한 저항과 반항, 나아가 파괴적 열정에 사로잡혀 랭보(1854∼1891)는 자기 주변의 폐쇄적이고 억눌린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절대적인 ‘무’를 선택하려고 한다. 이것은 바로 모든 영역, 특히 시에서 기존의 것에 대한 반항과 파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먼저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은 그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끌어 줄 무한히 넓은 자연으로 눈 돌리게 했다. 자연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현재의 제약과 구속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소위 ‘원초적 세계’의 형성을 접하고 느낄 수 있다고 랭보는 생각하게 된다. 이로 인해, 현재 보고 느끼는 현실의 감각적인 세계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비록 그곳이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파괴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감각적이고 실존적인 나’와 ‘본질적인 나’, ‘나와 세계’ 사이, ‘나와 삶’ 사이의 분리에서 느끼는 부조리는 바로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존재 양식의 ‘우연성’인 것이다. 이 양자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고 그 ‘우연성’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실에 대한 파괴는−주로 관념적인 파괴−랭보에게 ‘초자아’, 즉 나와 세계의 합일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어린 시절에 자기 주위에서 느꼈던 이런 생각은 결국 그의 생 전부, 아니 삶의 목적, 시인으로서의 임무로 변하게 된다. 그는 특히 그의 시 세계에서 새로운 시인상을 정립하며 과감하게 실현을 감행하게 된다.

과연 랭보에게 시인은 누구이며, 그가 생각하는 시인의 임무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일명 <투시자의 편지(lettre du Voyant: 1871년 5월 13일과 15일에 중학교 수사학 선생인 조르주 이장바르와 친구이자 시인인 폴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보듯, 랭보에게 시인이란 바로 ‘투시자’, 즉 진정한 현실성과 접촉할 수 있는 기능들을 머릿속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작가’이며 ‘창조자’인 시인은 자기 ‘영혼’을 인식하는 것에만 만족하면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없다. 즉 투시자가 된다는 것은 시인 자신의 영혼을 제대로 인식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그것을 확인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기괴한 영혼’을 만드는 데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때 기괴한 영혼을 만든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해 모든 대상을 눈에 보이는 현상과는 다르게 관찰할 수 있고, 또 그 현실의 모습 너머에 숨겨진 다른 모습을 투시자로서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 하는 것이며, 의지적 활동의 산물이고, 정확한 의미, 즉 무의식이 우리에게 우연히 전달해 주는 이미지들의 ‘체계적인 발전’ 속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감각의 오래되고 광대하며 추론된 착란’에 의해서 실행된다. 바로 이 ‘해체’라는 시적 방법이 랭보 시 세계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랭보 시학의 중심이 되는 이 해체의 논리는 바로 ‘무질서’의 개념이다. 이미 서구 사회의 관습적이고 틀에 박혀 있으며 편협한 모든 요소들은 인간의 원초적 세계로의 비상을 방해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상징주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랭보에게도, 현실적이고 감지할 수 있는 외관을 지닌 모든 사물들은 단지 본질을 나타내고 투영하는 일부분일 뿐이지, 결코 본질 그 자체이거나 또는 본질을 충분히 투영하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랭보의 시 세계에서 이런 파괴의 양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난다. 현실적인 ‘견고성’을 지니는 사물의 파괴와 해체를 통한 역동성을 추구하고 사회의 모든 규칙을 파괴하며 일상적인 언어의 제약성을 파괴하려고 시도한다. 파괴와 해체를 통해 현실적인 외관을 제거하고, 그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실체’를 ‘재건축’, ‘재창조’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러한 시도 중에서 랭보의 시 세계를 가장 특징짓는 ‘시어’에 관한 개혁을 살펴보자.

따라서 시인은 불의 도둑인 것입니다.
그는 인류를, 심지어 동물들까지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을 느끼게 하고 만지게 하며 듣게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저곳에서 가지고 오는 것이 형체가 있다면 그는 형체를 부여하고, 만약 그것이 형체가 없다면 형체 없는 것을 부여하게 됩니다. 언어를 발견해야지요.
−결국 모든 말들은 사상이기 때문에, 보편적 언어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
그런 언어는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해지며 모든 것, 즉 향기와 소리 그리고 색깔들을 함축하며 생각과 생각을 연결해 주고 끌어내게 될 것입니다.

위의 글에서 보듯 랭보에게 진정한 시인이란 먼저 자기 자신을 깨닫고 정진하는 ‘투시자’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세계를 꿰뚫어 보고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과 영혼이 서로 통하며 모든 감성을 표현할 수 있고, 나아가서 사고가 서로 연결되는 언어, 말하자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언어”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시적 형식과 내용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시 세계의 창조에 도달하기 위해 시인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그 이전의 시어, 즉 시는 ‘발화’, ‘과장’ 그리고 ‘운문으로 된 속세의 설교’였을 뿐이며, 단순히 사물의 외적인 모습을 재현해 주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따라서, 랭보는 그의 대표적인 시 <모음들(Voyelles)>에서, 모든 감각과 사물이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는 조화와 공존에서 제약적인 일상어의 모든 규칙을 파괴함으로써 언어 그 자체가 지니는 본질인 ‘지시’나 ‘재현’의 기능을 뛰어넘어 언어 그 자체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유도하게 된다.

언어란 그 성격상 현실성과 추상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런데 현실 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그 현실성만이 주로 강조되어 언어에 의한 의식의 초월, 현실의 초월과 언어의 추상성, 즉 무의식적 감동의 기능은 간과되었다. 이것은 바로 언어의 지시 기능과 재현 기능만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랭보는 바로 이러한 언어의 제약성을 뛰어넘어, 언어에 색과 리듬을 부여하는 식의 ‘공감각(synesthésie)’적인 방법을 통해 사고와 상상력의 비약을 유도하고, 기존 언어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다양한 언어의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현실과 외관을 넘어서 상상과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 한 것이다.
시집 ≪지옥에서의 한 철(Une Saison en enfer)≫에 있는 <헛소리 2. 언어의 연금술(DéliresⅡ. Alchimie du Verbe)>에서 랭보는 자신의 시 세계에서 시도하는 시어의 개혁과 재창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발명했다!−검은 A, 하얀 E, 붉은 I, 파란 O, 초록의 U−나는 각 자음의 형태와 운동을 조절했고, 본능적인 리듬으로 나는, 언젠가는 온갖 감각에 이를 수 있는 시어(詩語)를 발명하리라 자부했다. 나는 번역을 유보했다.
그것은 먼저 연습이었다. 나는 침묵들, 밤들에 대해서 썼고, 나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적었다. 나는 현기증을 고정했다.

바로 이 시어는 모든 의미와 감각에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서, 상징주의 미학의 한 근간이 되는 ‘공감각’과 ‘상응(correspondance)’의 시학의 근본 출발점이 된다. 여기에서 시인이 ‘번역을 유보했다’는 것은 바로 일반적 언어에서 표현 대상과 그 표현 수단이 지니는 관계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상 언어가 지니는 그 대상과의 지시 밀착성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랭보가 추구하는, 모든 의미에 이를 수 있는 보편적 언어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인은 일반적으로 언어가 지칭하는 그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보류함으로써 다양한 의미의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나아가서 언어와 그 대상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랭보 시 세계에서 일관적인 특징과 시학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시인의 짧은 문학적 삶, 그 기간의 시적 경향의 계속적인 변화와 함께 그의 시 세계의 난해성에도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시 이론의 파악이 어려운 점 자체가 어쩌면 바로 랭보 시 세계의 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랭보의 시 세계는 ‘무질서라는 질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이 특징은 그의 마지막 시집이라 간주되는 ≪일뤼미나시옹(Illuminations)≫에 특히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시집은 동적이고 시ㆍ공간적으로 서로 이질적인 시어들이 공존하면서 마치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시적 요소들이 파괴적이자 동시에 창조적인 이미지들을 구축하면서 아주 낯설고 상상적인 시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들 안에는 현실과 이상 세계가 뒤섞여 있고, 시인은 그것을 나열해 가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또 일상적 의미를 변화시키며, 통상적인 언어 규칙을 깨트리는 등 발레리가 언급한 이른바 ‘조화로운 불(不)통일성’이 보이고, 바로 시어들의 이런 관계에서 랭보 고유의 시적 아름다움이 분출되었다.

형상이나 외부 세계의 체계적인 질서는 너무 관습적이고 판에 박힌 듯한 모습과 그 한계로 인해 우리에게 이른바 ‘영혼의 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과학주의적 논리 전개 속에서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이성에 의한 추론으로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상과 사물의 외관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이란 이런 논리적ㆍ이성적 탐구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으로 다가갈 수 없는 근원적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의 현실적 외관과 체계를 해체하고, 새롭게 획득한 요소들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데, 이때 랭보는 바로 그 해체의 방법으로 ‘무질서’, ‘부조화’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의식과 이성으로 느끼기보다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궁극적 본질을 ‘무의식’과 ‘상상력’에 의해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질서나 무의식에 대한 생각 자체는 한낱 헛된 기도나 형이상학적인 문제, 즉 해결책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 문제로 끝날 수 있다. 이것을 시인으로서의 역할인 미학적 차원으로 이끌어, 비록 완전한 해결책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시 세계에서 해야만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임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랭보는 무질서나 무의식, 상상력 그리고 파괴라는 역동적인 시적 요소들과 이미지들을 통해 그의 독특한 시 세계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취한 배(Le Bateau ivre)>에서 랭보는 닻줄이 풀리고 선원들도 없이 강을 따라 내려와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항해하는 배다. 한편으로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상징 속에서 모든 구속을 거부하고 기존 질서에 대한 경멸을 보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의 ‘이국취미’도 보이면서 <감각>에서처럼 끝없는 자연 속으로 나아가고, <나의 방랑>에 나타나듯이 자연 전체가 그와 어우러져 나와 타인, 즉 주체와 객체가 배타적으로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경계 없는 일원적 합일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취한 배는 랭보이자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들 자신일 수도 있다. 취한 배의 ‘취기’는 시의 세계라는 망망대해에 랭보 자신과 함께 우리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매개체가 되어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항해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취기는 시 <취기의 아침나절(Matiné́e d'ivresse)>에서 보듯, 모든 사물의 활동이 중지된, 또한 모든 사물의 죽음과 새로운 삶의 경계인 새벽 시간에 가장 잘 나타난다. 밤의 어둠으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짐과 동시에 떠오르는 햇빛에 의해 만물이 다시 불사조처럼 소생하는 새벽 시간의 창조적 무한성은, 시인 자신의 취기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바로 이 세계는 현실의 모든 구속력에서 벗어나, 랭보의 시적 상상력이 자유롭게 펼쳐지면서 창조된 세계다. 그리고 이 세계는 모든 시적 요소들이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의 구분이 사라진 일체의 공간이자 조화의 공간이 된다. <콩트(Conte)>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왕자’와 ‘정령’이 결국은 동일 인물인 것처럼, <취한 배>의 ‘나(Je)’는 항해하는 ‘배’이자 ‘투시자’이며 시 세계에 나타나는 모든 시적 요소들이자, 동시에 바로 독자들 자신이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타자다(Je est un Autre)’라는 이 상응의 시학은 랭보의 시 세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그런데 현실에서 벗어나 상응의 세계를 꿈꿀 때, 랭보의 시 세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역동성’이다. 물론 이 역동성은 정체적인 것의 거부, 즉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현실을 무질서와 파괴를 통해 재창조하려는 랭보의 근본적인 반항의 노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이 잘 드러나는 시로 <대홍수 이후(Après le Déluge)>를 들 수 있다.

솟아라, 연못이여; −거품이여, 다리 위로, 숲 너머로 흘러라; −검은 담요들과 오르간들이여, −번갯불과 천둥이여, −올라라, 흘러라 −물과 슬픔이여, 올라라, 대홍수들을 일으켜 세워라.

여기에서는 시의 모든 요소들이 정체되지 않은 채 사물들의 일반적인 속성과 현상을 뛰어넘어 부단하게 움직이는 동적 이미지들을 형성하고 있다. 마치 성경에서 노아의 대홍수 이후에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 것처럼,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기존 세계의 일반적이고 현상적인 외관의 제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현실적인 모습을 사라지게 하고, 그 파괴와 해체를 통해 얻어진 요소들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지옥에서의 한 철≫의 <헛소리 1>에서 주장한 ‘삶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 중 하나로서 현실의 재창조를 위한 랭보 고유의 시적 특징인 것이다.
이때 무질서나 파괴, 또는 해체는 부단히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단지 파괴 자체로만 지속되는 영원한 것은 아니다. 현실의 삶이건 문학의 세계이건 새로움의 창조를 위한, 또 이런 새로움 안에서 모든 구성 요소들의 조화와 일치를 위해 기존의 모든 현상을 파괴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하면서도 일시적인 한 방법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파괴와 동시에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랭보가 <투시자의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해체와 재창조의 과정에서 “만약 그(시인)가 저곳에서 가지고 오는 것이 형체가 있다면 그는 형체를 부여하고, 만약 그것이 형체가 없으면 형체 없는 것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사물들의 속성을 받아들이고 재구성하는 시어, 즉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를 발명’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으로 시인의 주요한 시학인 이 투시자 이론은 랭보 시 세계의 진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된다. ≪지옥에서의 한 철≫ 전편에 걸쳐 나타나는 것처럼 그동안 추구했던 그의 시 세계는 시인 자신에게 하나의 광기로 비친다. “오래전부터 나는 가능한 모든 풍경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나는, 언젠가는 온갖 감각에 이를 수 있는 시어(詩語)를 발명하리라 자부했다”라고 말하지만, 이미 그런 시도는 ‘자신의 광기들 중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한 시 세계는 바로 ‘단순한 환각이자 단어들의 환각’으로,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세계만을 보여 준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추구한 시가 시인 자신에게 오히려 죽음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랭보는 그런 세계에 이별을 고하고(“나는 일종의 로망스들로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게 된다.

랭보는 그동안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환영과 환상의 세계에서만 이뤄진 그의 시 세계를 버리고 현실에 기초한, 현실에서 출발하는 시 세계를 다음 시집인 ≪일뤼미나시옹≫에서 보여 준다. 시 <젊음 4(Jeunesse Ⅳ)>에서 랭보는 예전의 자기 시에 대한 반성적 접근과 함께 새로운 시를 예고하는데, 그것은 바로 조화로운 시의 세계이고 새로운 사랑의 시의 세계로, 현실에서 창조적 상상력과 새로운 언어의 사용으로 이른바 ‘객관적 시’를 보여 주고 있다. 사실 두 시집의 시들 중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시들이 여럿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랭보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시집 ≪일뤼미나시옹≫의 시들은 전체적 경향이 이전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이제 영감이나 신적인 전지전능의 능력으로 초월자적인 자세에서 시를 쓰는 ‘투시자’이기보다는 항상 연구를 하고 시어를 세심하게 골라서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시를 쓰는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미 <투시자의 편지>에서 랭보는, “나는 일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바로 그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지요”라고 자신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일을 한다’는 개념이 후에 문학의 세계를 버리고 현실의 삶에 뛰어든 그의 실존적 삶이건, 시인의 후기 시 세계가 보여 준 시적 태도이건 간에, 그의 시적 세계의 변화는 바로 이 ‘일’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언자, 마술사 그리고 초월적 신의 위치에서의 시인의 모습은 후기 랭보의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시인의 모습과는 대립된다. 왜냐하면 예언자나 마술사로서의 시인은 현실을 떠나 초월적인 예지와 영감으로 나타나 ‘일’의 개념과 동떨어진 시인상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전의 시 세계에서 랭보 자신은 바로 예언자나 마법사로서 너무나 초현실적이고 환영적인 시를 보고 그것이 바로 정신적, 예술적 갈등을 그린 ≪지옥에서의 한 철≫로 나타난 것이다.

≪일뤼미나시옹≫에서는 바로 그러한 경험들조차도 이제는 새로운 시 세계, 즉 <젊음 4>에 나오는 ‘화성적(和聲的)이고 건축적인 모든 가능성들’을 위한 시적 재료가 된다. 이러한 새로운 시적 세계를 위해 랭보는 현실의 모든 것을 파괴 또는 해체하며, 새로운 ‘장소와 방식을 찾기[<방랑자들(Vagabonds)>]’와 ‘장소와 인물들을 변형하기[<퍼레이드(Parade)>]’라는 방법을 통해 “모든 모습들 사이에서 온갖 특성을 지니는 존재들과 함께 여러 감정적 집단의 강렬하면서도 신속한 꿈꾸기”로 그의 시 세계를 창조하게 된다. 시 <어느 이성(理性)에게(A une Raison)>에서 보듯이 그것은 바로 ‘새로운 조화’이고 ‘새로운 사랑’의 세계인 것이다.

결국 ‘투시자 이론’은 그때까지 추구한 자신의 시 세계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보여 주는 시집 ≪지옥에서의 한 철≫에서 다시 새로운 시적 세계를 보여 주는 시집 ≪일뤼미나시옹≫을 거치면서 초월과 영감을 지니는 예언자나 신의 모습으로서의 ‘오르페우스적 시인’으로부터, 먼저 시인 자신의 철저한 인식 아래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의 해체와 재창조를 통해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하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시인’으로의 변화상을 보여 주며 현대적 시인상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또다시 이러한 시인의 모습을 이제는 문학과 완전히 단절된 현실의 세계에서 보여 주게 된다. 특히 ≪일뤼미나시옹≫의 많은 시들은 랭보가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다른 것을 찾아 떠나려는 경향을 보여 주는데, 예를 들면 시 <민주주의(Démocratie)>에서 “이곳은 안녕, …그것은 진정한 행군이다. 앞으로 전진!”이라 외치면서, 이번에는 영원히 문학의 세계를 떠나 현실적, 실존적 삶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문학에서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해체하고 현실에서 일상인으로서의 랭보를 재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록 랭보가 후에 문학 세계와 완전히 결별했지만, 그의 전체 삶은 결국 문학과 삶의 단절이라기보다는 문학에서 현실 삶으로의 진행이며, 시인 자신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것에 대한 끝없는 파괴, 해체 그리고 재창조의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목표는 바로 ‘미지’에 도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현실이라는 외관상의 본질의 부분적 투영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 규칙에 얽매여 있는 현실이라는 허구의 본질을 제거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랭보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파괴’였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전혀 다르고 동떨어진 세계를 순수하게 그리기보다는, 그 새로운 세계의 출발이 되는 현실 세계를 분해하고 해체해 자신이 의도하는 새로운 시 세계의 구성 요소를 찾아내고, 바로 이렇게 얻어진 시적 요소들을 가지고 시인 특유의 새로운 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법은 완전한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로의 출발과 그 재구성, 재배치를 통해 시인이 벗어나려는 현실 외관 너머의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의도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랭보의 초기 시부터 시인이 유일하게 출판한 시집 ≪지옥에서의 한 철≫, 그리고 마지막 시집이라 일컫는−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일뤼미나시옹≫의 시들은 바로 이러한 랭보의 시 세계의 특징이 구체적으로 어떤 시적 의미와 이미지들을 통해 형성되었는가를 보여 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랭보 시선 [Les Poèmes choisis de Rimbaud] (고전해설ZIP, 2009.5.10, 지만지)

해설자 : 곽민석(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강사


*다른 분의 번역본을 올립니다. 

내 입에 이것이 좀더 부드럽기는 한데, 역자를 알 수 없어 아래로 보냈답니다.ㅎ



취한 배Le Bateau Ivre


          - 아르뛰르 랭보

 

유유한 강물을 타고 내려올 적에,

더 이상 수부들에게 이끌리는 느낌은 아니었어

홍피족들 요란스레 그들을 공격했었지.

색색의 기둥에 발가벗겨 묶어 놓고서


플랑드르 밀과 영국 솜을 져 나르는

선원들이야 내 알 바 아니었어.

배를 끄는 수부들과 함께 그 북새통이 끝났을 때

나 가고 싶은 데로 물살에 실려 내려왔으니.


격하게 출렁이는 조수에 휘말린 지난 겨울,

난, 농아보다 더 먹먹한 골을 싸잡고

헤쳐 나갔지! 떠내려간 이베리아 반도도

그처럼 의기양양한 혼돈을 겪지는 못했을 거야.


격랑은 내가 항행에 눈뜬 것을 축복해 주었어.

코르크 마개보다 더 가벼이 나는 춤추었지,

끊임없이 제물을 말아먹는다는 물결 위에서,

열흘 밤을, 뱃초롱의 흐리멍덩한 눈빛을 그리지도 않으며!


아이들이 가진 사과의 상큼한,

초록빛 물이 내 전나무 선체로 스며들어와

푸른 포도주 얼룩과 토사물로부터

나를 씻기우고, 키와 닻을 훑어 내렸지


그래 그때부터, 나는 <바다의 시>속에 멱감았어라.

별들이 젖빛으로 녹아든 곳,

초록빛 하늘을 들이마시고 있는 그곳에, 꿈에 잠긴 익사자 하나

창백하고 황홀하게 떠돌다, 때로 가라앉으니


그 곳에, 푸르름을 일시에 물들이듯, 환멸과

율동이 번쩍이는 달빛 아래 서서히 배어들어,

알코올보다 강하게, 리라보다 값없이,

사랑의 쓰라린 다갈색 어루러기 피워올리니!


환하게 부서져 내리는 하늘과 솟구치는 물기둥을,

해랑과 해류를, 내 알지: 저녁을,

무수한 비둘기 떼처럼 황홀한 새벽을 내 알지.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것을 내가 때로 보았지!


나지막이 신비스런 공포로 얼룩진 태양이

기다랗게 엉긴 보라빛 덩이들 비추는 것을 내 보았지,

고색창연한 고대극 배우들 같았어.

파도는 파르르 떨며 아스라히 밀리고 있었고!


내 꿈꾸었지, 현란스레 눈 덮힌 푸른 밤,

서서히 바다 위로 북받쳐 오르는 애무인 양,

형형히 퍼지는 희한한 향기를,

노릇파릇 깨어나 번뜩이는 인광들을!


내 여러 달 쫓아다녔지, 히스테릭한 암소떼처럼

넘실넘실 암초들을 덮치는 큰 파도를.

성모 마리아의 빛나는 발이라도

숨가쁘게 헐떡이는 대양을 억누르진 못했을 거야!


난 맞닥뜨렸지, 아시겠어? 엄청난 플로리다와.

꽃무리 속에 인간의 피부를 가진 표범들 눈초리 엉켜 있었고

수레바퀴 테처럼 탱탱한 무지개들,

수평선 아래 바다의 청록색 양떼들과 어우러지고 있었지!


부글거리는 거대한 늪을 나는 보았어, 그 그물 속에서

<바다 괴물>은 골풀 더미에 싸여 고스란히 문드러지고!

뿜어나던 물보라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로 무너져 내리더니,

아득히 소용돌이치며 심연으로 빨려들더라!


빙하, 은빛 태양, 진주모빛 파도, 이글거리는 하늘들이여!

거무스름한 물굽이 한가운데로 끔찍스레 좌초되고 말았어라.

악취에 찌들린 거대한 배암들,

검은 향료로 뒤틀린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 그 곳에!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더랬는데,

그 푸른 물결의 만새기들을, 그 금빛 고기들을, 그 노래하는 고기들을

-꽃핀 거품들 나의 항정을 축복하였고

기막힌 바람 때때로 나에게 날개를 붙여 주었지.


간간이, 지축과 지대에 시달리다 지친 순교자들,

바다는 흐느끼듯 부드럽게 흔들어대며

노란 흡반 딸린 어둠의 꽃들을 올려보내 주었지.

나는 그대로 있었다, 무릎 꿇은 여인 마냥......


섬처럼, 나의 뱃전 위로 달라붙는 하소연을 뿌리치고

금빛 눈으로 빈정거리는 새들의 똥무더기를 가르며,

나는 떠내려갔다. 어렴풋이 날 스쳐간 혼백들.

다시금 뒷전으로 잠잠히 가라앉더라!


해서 난, 길 잃은 배 되어 머리카락에 휘감기듯,

폭풍에 말려 새도 없는 창공으로 내던져졌지.

미군 함정들이나 한자동맹의 범선들이라도

물에 취한 내 몸뚱이를 건져내진 못했을 게야.


자유로이, 보라빛 안개를 타고, 피어올라,

불그스름한 하늘을 파들어갔지, 벽을 뚫듯.

그 잘난 시인들이 과일잼인 양 즐기는 하늘은,

해 버짐병과 청천 부패병으로 잔뜩 굳어 있었거든.


휘황한 위성들에 휩싸인 채,

검은 해마들의 호위를 받으며, 미친 널빤지처럼 치달았지.

하해천공(夏海天空)은 <칠월기둥>의 몽둥이질로

여기저기 움푹 패여 이글이글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


나는 떨었다, 오십 리 밖에서 무성한 소용돌이 우짖고

마귀의 암내 진동하고 있었으니.

푸른 망망대해에 실 잣듯 한없이 미끄러지며

고성흉벽의 유럽을 그리워 헀었지!


나는 보았네, 항성 군도를! 섬들 위로

천공은 항해자에게 황홀하게 열려 있었다:

-그대, 이 밑도 없는 밤의 오궁 속에 숨어 잠들고 있는가,

무수한 황금 새들, 오 미래의 정령이여?-


그런데 난, 참으로, 너무 울었어! 새벽이면 애통스러워,

달은 참 끔찍하고 해는 참 지독하이:

그 쓰라린 사랑이 허허로운 열광으로 날 잔뜩 부풀려 놓았구나.

오 나의 용골, 찬연히 일어서라! 오, 나 바다에 흐르리라!


내 하나 탐하는 유럽의 물 있다면, 그건 웅덩이야,

검고 차가운, 향기로운 황혼을 향하여,

웅크린 한 아이가, 슬픔에 가득차서,

5월의 나비처럼 연약한 배를 띄워 보내는 곳.


오 파도여, 그대의 나른함에 젖어, 나 이제 더 이상

솜 나르는 짐꾼들에게서 그들의 항적을 훑어낼 수도.

펄럭이는 군단 깃발과 불꽃을 가로지를 수도,

배다리의 무시무시한 시선 아래 노 저을 수도 없구나.


***


감각Sensation


상쾌한 여름 저녁, 보리이삭에 찔리우며

풀밭을 밟고 오솔길을 가리라.

꿈꾸듯 내딛는 발걸음, 발자국 자국마다 신선함을 느끼며

모자도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서!


말은 하지 않으리.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은 솟아오르네.

어디든 멀리 떠나가리라. 방랑자처럼

자연과 더불어, 연인과 함께 가듯 가슴 벅차게.


***


방랑Ma Bohéme


구멍난 주머니에 두 손을 지르고 나는 걸었지.

헤진 외투를 걸치고 하늘 아래를 떠돌았다네.

시의 여신이여, 나는 그대의 종복.

오! 랄라, 내 꿈꾸어오던 찬란한 사람들아.


단벌 바지엔 커다란 구멍이 났고,

어린 몽상가 나는 길에다 시의 운율을 뿌렸지.

내 잠자리는 큰곰자리.

내 별은 하늘에서 다정하게 소리내고 있었지.


구월의 멋진 저녁, 길가에 앉아 별의 소리 들었지.

취하게 하는 술처럼 이마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느끼며.


환상의 그림자들 운율을 맞추면서

한 발을 올리고서

나는 리라 치듯, 헤진 구두끈을 잡아 당기네.


* 이 시는 다른 번역도 있던데, 동우님 방에서 읽은 '방랑'이 가장 좋았어요.

그래서 이 시는 동우님 방에서 가져왔지요. 내겐 '취한 배'보다 더 좋으네요.



***


모음들Voyelles


A 까만색, E 백색, I 빨강색, U 초록색, O 파랑색, 모음들이여,

내 언젠가 너희들의 은밀한 탄생을 말하리:

A, 코를 찌르는 악취 주변에서 윙윙거리는

빛나는 파리떼의 가는 털에 덮인 시커먼 콜셋,


어두운 검은 만 E, 아지랑이와 천막의 눈부신 백색,

자랑스럽구나 빙하의 창, 백발의 왕, 산형화의 떨림,

I, 주홍빛 옷감.. 내뿜은 피, 참회의 황홀함

혹은 분노를 머금은 아름다운 입술의 미소,


U, 파도, 청록색 바다의 신성한 전율,

가축들로 뒤덮인 목장의 평온함, 넓고 학구적인 이마에

신비한 힘이 새겨놓은 주름살의 평화,


O, 이상하게도 가슴을 후비는 듯한 숭고한 나팔소리

온 세상과 천군천사가 지나간 뒤의 정적

- 오오, 오메가,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보라빛 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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