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물랭루즈가 있는 몽마르트르

eunbee~ 2013. 6. 18. 20:13


나는 왠지 '물랭루즈'하고 발음하면 멜랑꼴리한 기분에 사로잡혀요.

물랭 루즈, 물랭 루즈.. 그렇지 않나요?


나른한 일요일, 은비엄마는 누워 지나간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은비는 책상 앞에 앉아 미술사를 열공하기에 

쏘족인 나는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맘을 돌렸습니다.

멜랑꼴리한 발음의 물랭루즈를 찾아서...



여기는 메트로 블랑쉬 역인가요?

나는 피갈역에서 내려 물랭루즈 쪽으로 갔어요.

몽마르뜨르 언덕 부근에는 항상 사람들로 활기로워요.

몽마르뜨르를 찾아온 온 세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지요.



언덕을 오르기 전 큰 길에는 이렇게 산책로가 있고 그옆으로는 자전거 도로, 그리고 그옆으로 찻길.

산책로에는 양쪽 벤치에 갖가지 피부색의 사람들이 도열하고 앉아서 내가 지나갈 때 마치 사열식을 하는 듯했어요.ㅋㅋ

이 산책로가 무척 길거든요. 때로는 어색하기도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우. 

그들은 자유롭게 앉아 떠들고 웃는데, 괜시리 내가 무서워하는 거예요.ㅠㅠ



찻길에는 투어버스가...

자전거 길에는 자전거 아저씨가...ㅎ



물랭루즈 앞이네요.

1889년 이래 지금껏 이렇게 붉은풍차로 서 있다죠.

저 붉은 풍차는 장식가 레옹 아돌트 빌레트라는 사람이 목재를 사용해서 장식했다네요.


불구였던 로트렉은 물랭루즈를 발견한 후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지요.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쇼를 관람하는 사람들이나 쇼에 출연하는 사람들, 

특히 무희 라 굴뤼, 발랑탱 도로세 등을 자주 그렸다고 해요.


로트레크의 인생은 몽마르뜨르를 발견하면서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이 유별난 소우주를 그리는 데

쏟아 부었다. 몽마르트르는 비천한 것과 귀족적인 것이 흥미롭게 뒤섞인 세계였다. 로트레크는 물랭 루즈, 물랭 드 라 갈레트,

그리고 미를리통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이 구역의 일원인 동시에 날카로운 관찰자였다.'틀루즈 로트레크'(시공사 2006년 출판) 



로트레크는 샤를 지들러(물랭루즈를 세운 기업가-은비가 사족^^)에게 다음 포스터의(윗 사진 오른쪽-은비사족^^)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로트레크는 핵심을 찔렀다. 발랭탱 드 데조세로 알려진 에티엔 르노탱이라는 

기묘한 인물과 함께 춤을 추는 라 굴뤼를 그렸다.

변호사의 아들인 르노댕은 새 같은 옆 모습과 호두까기 같은 턱의 소유자로, 

춤에 열정적이었으며 항상 반질반질 윤이 나는 중산모를 쓰고 있었다. 

곧 파리 전역에 퍼진 로트레크의 포스터는 인상적인 색채와 날카로운 실루엣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판화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이 작품을 통해 로트레크는 대중의 눈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는 최초의 현대적인 포스터이자 진정한 예술작품이었다. '틀루즈 로트레크'(시공사 2006년 출판) 


'앙리 마리 레이몽 드 툴루즈 로트레크 몽파'라는 긴 이름의, 다리골절상으로 인해

더 이상 다리가 자라지 않는 불구였던 로트렉은 1864년 11월 24일 보스크성에서 태어났답니다.

'물랭 루즈'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로트렉.ㅎㅎ


즐거운 물랭 루즈를 내가 우울한 분위기로 발음하는 건 로트렉의 불구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은 사라진 아름다운 시절 벨 에뽀끄의 향수 때문일까. 파리를 사랑하는 나만의 그 어떤 향수~^^


 


3프랑 들고 물랭 루즈를 향하던 그시절의 귀족, 부르주아들 표정이 눈에 어른거려요.

포스터의 맨 아래를 잘 보면 '입장료 3프랑' 요렇게 써 있어요.

그 시절 3프랑이면 얼마마한 가치의 금액이었을까요.


3프랑... 3프랑... 그러고 보니, 애들 유학초기엔 '프랑'이란 화폐단위로 송금을 했었는데.

그 시절도 그립네요. '프랑'이라고 발음하던 그 세월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욤~ㅠㅠ

'유로'가 '프랑'의 시절을 전생으로 보내 버렸네요.

난 왜 이럴까요. 흐흑~


 

 


물랭루즈에는 많은 가수들의 연주장이기도 했다지요.

이브 몽탕, 에디뜨 삐아프, 장 가뱅. 그리고 프랭크 시나트라 등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던 곳이랍니다.



물랭 루즈는 1889년 10월 5일에 개장했는데, 이날은 파리의 벨에포크(황금기)중 가장 중요한 날의 하나로 기록된다.

흥행주이자 기업가인 샤를 지들러가 소박한 대중 무도장인 렌 블랑슈 자리에 거대한 종합 유흥지를 건설한 것이다.

장식가인 레옹 아돌트 빌레트가 이 건물 위에 올려놓은 우아한 목제 풍차는 그 붉은 날개로 클리시가의 하늘을 선회하였다.

 

틀루즈 로트레크'(시공사 2006년 출판) 



오랜만에 만난 몽마르뜨르 거리는 그 언제보다도 더 흥청거렸습니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넘치고, 카페마다 사람들로 북적였지요.

그 중 한가한 비스트로의 빨강 네온사인에 마음이 꽂혔습니다.

러시아 병사들의 '빨리 빨리~ 비스트로, 비스트로~'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그 많은 비스트로.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도둑과 소매치기도 많고...

그 중에서 몽마르트르를 가장 어지럽게 하는 요소는, 온갖 잡동사니 물건을 내다 놓은 잡화 가게들. 

그리고 온세상에서 몰려온 사람들..ㅋㅋ


 


아맘도 있구요.



거리에 주욱~ 늘어선 섹스 샵들은 호기심을 발동시키구요.ㅋㅋ



그리고... 언덕을 오르며 어슬렁 거리던 나는 마침내 영화 '아멜리'에 등장하는 카페도 만날 수 있었다우.

그 영화 또 보고 싶당~ 사랑스런 아멜리!!



있잖아요~ 블친님들,

우리는 아멜리에 라고 읽는 저 포스터의 이름은 아멜리 라고 해야해요. 

마리marie처럼 이곳은 여자 이름 뒷자리에 e를 붙이고 그냥 마리, 아멜리,eunbie은비~라고 불러요.

그런데 방심했던 은비네 부모는 은비 이름 스펠링 뒷자리에 e를 붙여주는 걸 까먹어서(은비엄마는 알고 보니

여러가지로 정말 허당!!이네요.ㅎㅎㅎ) 사람들이 eunbi가 남자인줄 안대요.ㅋㅋ

e자 붙이려고 했더니 복잡하다네요. 법원에 가야하는 일인가 보래요.ㅋㅋㅋ. (이렇게 잠시 삼천포 다녀왔어욤~)



몽마르뜨르 언덕을 슬슬 계속 오르는 참이에요.

걸어 오르다보면 이런 집도 만난다우. 

캉캉~

지금도 캉캉을 추고 있을까요? 그 유명한 리도쇼에서도 캉캉이 사라져버렸다고 하던데요.ㅠㅠ

이 '캉캉'이란 상호의 집은 늦은 저녁에나 문을 여나봐요.

저녁 7시를 넘긴 시각인데도 잠잠 하네요.

이상한 것은 몽마르뜨르의 거리는 복작대는 곳은 정신이 없을만큼 난리인데,

이렇게 조용한 뒷골목은 마치 유령의 거리 같아요.

차암~ 이상해요.ㅋㅋㅋ



언덕을 반쯤 오르다가 그 이름도 유명한 '물랭 드 라 갈레트'를 만났어요.

그 시절, 춤추고 술마시고 노래부르고 사교의 장이던 이곳이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답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14개의 풍차가 있었다죠?

포도밭과 농가가 있던 이 언덕은 1800년 대 후반에 대대적으로 시행됐던 

'오스망남작의 파리 도시재건축'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은 곳으로

포도밭과 농가가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 포도밭에서 수확된 포도는 파리시내로 팔려 나갔답니다.



로트렉은 물론, 반 고흐, 르누아르, 쇠라, 모네,피사로, 드가 등 많은 화가들은 오스망남작이 파헤치는 파리 시내를 빠져나와

아직도 낭만으로 뒤덮인 몽마르뜨르 언덕으로 몰려들어 그림을 그렸다지요.


반 고흐가 많이 마셨다는 노란술 압셍뜨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화판 앞에 혹은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그들을

나는 이 거리에서 마음으로 그립니다. 고결한 예술혼으로 넘치던 낭만스런 파리의 벨에뽀끄!! 그 아름다운 시절을....


 


지금은 화가들의 그림 속에서처럼 나무가 우거지지도 않고, 정원도 그리 크지가 않네요.

들어가 볼까?하다가 나중으로 미뤘어요.

아직 문도 열지 않았나 봐요.


파리에서는 끼니를 찾아 먹는 것도 어려워요.

저녁은 일러야 7시, 7시 반을 넘겨서 레스토랑 문을 열고, 

일반 가정에서도 대개 8시쯤에 저녁식사를 시작한다우.

이집은 조금 후에 문을 열겠군요.ㅎ



누구를 꼬셔서 늦은 밤에 여길 와 보나?

아무래도 그 상대는 작은사위가 될 것 같애~~ㅎㅎㅎ



반 고흐가 1887년에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 예요.

그러고보면 물랭 드 라 갈레트가 물랭 루즈보다 먼저 생겨난 집이지요?


사진 속 그림들은 몽마르뜨르 언덕 꼭대기 테르트르 광장에 있는 어느 가게 앞에 진열해 놓은 복사사진들을 찍어왔더니

흐릿흐릿해요. 저 그림은 피츠버그의 카네기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네요.


 


이 그림도 물랭 드 라 갈레트 분위기 같죠? 전혀 아닐 수도 있어요. 

화가들이 이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엔 14개의 풍차가 있었다니....

누가 그렸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림 아래 라몽 카사스라 쓰여졌는데, 검색해보니

바르셀로나 출신인 이 화가가 파리에서 활동을 했다네요. 그런데 그림제목은 뭘까요.


내가 올리는 정보라는 것이 정확한 거란 거의 없는 수준.ㅠㅠ

독학생이거든요. 딸들..손녀. 다 뭐에 쓰냐구요?

그들을 귀찮게 하지않기 위해 나는 내 혼자 읽고, 해석하고, 짐작하고, 찾고...

그리고 엉터리거나 말거나 이야기하고..그래요.

그럴거라고 진작에 눈치챈 블로그 친구들도 많지요?

'남에게 의지하려하지 않는다' 라는 덕목이 늙은이가 잘 사는 길의 첫번째라네요.

여간해서는 애들에게 의지하지 않아요. 프랑스어나 이곳의 정보에 대해서 말예요.ㅎㅎ

그러니 내가 써놓는 정보나 이야기의 정확도에 대해서는 아예 기대를 마시고 

그냥 수다!!로 읽으셔야 합니다. 또 삼천포!!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1876년에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예요.

너무나도 흔히 보아오던 그림이지요? ㅎㅎ

이 그림은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있다네요.


갈레트는 밀가루나 호밀가루로 만든 부침개같은 납작한 것으로, 이것 위에 쇼콜라나 해물 고기 온갖 과일잼 등등을

얹어 돌돌말아 굽는 것이 크레프지요. 부르타뉴 지방의 특색음식입니다. 내가 무척 좋아해요.

우리가 크레페라고 발음하는 것 또한 잘못, 크렙 또는 크레프crepe가 맞아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유래는 

이곳의 소유주였던 사람이 팔던 빵이름이 '갈레트-호밀빵-'였고, 우유와 호밀빵을 팔던 주인은

그빵과 함께 뮈스카 포도주를 팔기 시작하며, 이곳이 카바레로 선술집으로 무도회장으로 바뀌어갔다네요.

세월이 흘러, 1979년에 새로 단장하고... 

유서깊은 이곳은 레스토랑이 되었답니다.


아, 그리운 옛시절이여. 파리의 벨에뽀끄여. 

황홀한 그 시절은 다 어드메로 사라지고 천박한 상혼만 넘쳐 흐르느뇨. 라고 eunbee는 한탄한다죠.ㅠㅠ


지난 일요일 오후, 몽마르뜨르에서 여섯시간 여를 보냈어요.

그곳을 산책하며 거기에 있는 유서 깊은 카페와 물랭루즈, 라팽 아질 같은 카바레, 바 등을 만났지요.

겉보기만이라도 말예요.

다음에도 그 언덕에서 만난 풍경들을 포스팅할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ㅎㅎㅎ